'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성공을 주장하는 북한
북한은 지금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2021~2025)' 마무리에 한창이다. 2025년에 마무리되는 5개년 계획은, 이전(2016~2020) 5개년 전략 실패를 인정한 후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발표된 계획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5개년 계획의 평가는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있겠지만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연설에서 답은 이미 정해졌지만, 각 기관들은 전원회의 전까지 계획된 목표 수치를 맞추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2016년 개최된 노동당 7차 대회에서 '경제발전 5개년 전략' 추진을 밝히고 구체적으로 6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첫째 전력 문제의 해결, 둘째 석탄·금속·철도·운수 부문의 획기적인 발전, 셋째 기계·화학·건설·건재공업 부분의 발전, 넷째 농업·수산업·경공업 부문의 발전, 다섯째 대외무역·합영합작·경제개발구 등 대외경제 관계의 확대 발전, 여섯째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의 실효성 제고 등이었다.
북한은 2020년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성공을 다그쳤지만,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등의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정책 실패'를 자인하며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북한은 정책 실패 요인을 외부 환경 변화보다 내부적 무능력으로 돌렸지만, 근본적인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실패한 데서 비롯됐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 위원장은 같은 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미 관계 개선에 너무 조급했다"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바 있다. 이는 당시 '5개년 전략'이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다섯 번째 목표였던 대외무역·합영합작·경제개발구 개발 등을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새로운 5개년 계획의 중심 과업으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금속·화학 등의 기간 공업 부문에 투자를 집중하여 경제 전반의 생산 정상화를 실현하며, 농업 부문에서 물질·기술적 기반을 마련하고, 경공업 부문에서는 원자재의 국산화·재자원화를 통해 인민소비품 생산을 늘릴 것임을 강조하였다.
한편, 대외경제 관계는 대내 자립경제 잠재력을 보완하고 보강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김 위원장이 "대미 관계 개선은 장기적 과제이며, 그 이전까지 자력갱생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것과 연계되어 있다. 종합해 보면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대외경제 관계 확대 발전이 가능해지기 전까지 중앙의 통제력 강화를 통해 내부 경제 역량을 강화하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이었다.
내부 역량 강화를 위해 북한은 12개 중요 고지를 설정했다. 2022년 12월에 개최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12개 경제 분야(① 알곡, ② 전력, ③ 석탄, ④ 압연강재, ⑤ 유색 금속, ⑥ 질소비료, ⑦ 시멘트, ⑧ 통나무, ⑨ 천, ⑩ 수산물, ⑪ 살림집, ⑫ 철도 화물수송)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해 점령해야 할 중요 고지로 제시했다.
북한은 매년 각 분야에 대한 실적을 발표해 왔는데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5개년 계획은 성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외부에 발표한 것은 12개 중요 고지를 점령했고 이에 더해 지방발전 20X10 정책까지 대부분 성과를 거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북한은 김정일 시절에 비해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정책 실패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는 경향을 보였다. 북한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2025년 12월 말 개최되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것이며, 2026년 초 당대회에서는 새로운 정책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당국의 주장과는 다른 현장 목소리
반면 현장의 목소리는 북한 당국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더 어렵다', '노력 동원이 많아져서 시장에서 장사할 시간이 줄어 들었다', '당에서 내놓으라는 것이 많아서 살기 어렵다' 등등 경제가 좋아졌다는 소식은 거의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하고 있는 경제 제재는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외부 자본의 유입은 거의 없었다. 북한 경제의 내부 자원이 고갈됐기 때문에 외부 자본 유입 없이는 경제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런 대내외의 비공식 정보를 종합해 보면 5개년 계획은 출발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2021~2025)'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 북한이 이 계획을 추진하기 전의 시점과 계획을 추진한 이후의 시점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2016년 시작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명칭에 '발전'이라는 단어와 '전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내부적으로 북한식의 시장개혁과 개방을 추진해 왔으며, 이를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추진했는데 실패를 자인한 것이다. 그리고 나온 것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인데, 그 이름에 '개발'과 '계획'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개발은 정비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전 시기에 대외 의존도가 높아진 북한 경제를 다시 대외 의존도를 낮춘 경제로 체질을 바꾼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국경을 폐쇄한 것에 기인하지만,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의 대외무역은 중단됐고, 외부와의 거래를 통해 활성화됐던 북한 시장은 침체일로를 걸었다. 더욱이 북한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거부했다. 아마도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2023년부터 중국과의 무역이 일부 재개되기 시작했지만 외부 지원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과거 사회주의권 붕괴 이전 북한의 대외무역은 경제 운영의 보조적 역할에 그쳤던 점을 미루어볼 때, 지난 5년간 북한의 대외무역은 과거 기능으로 회귀한 듯하다.
한편, 북한 당국이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시장을 억제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오히려 2019년 4월 개정된 헌법에서 북한 경제 운영 원리를 '대안의 사업체계'에서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로 전환한 이후 기업들의 책임은 더 강화되는 분위기다. 시장경제 방식과 관련된 각종 법안들이 도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식량 공급의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12개 중요 고지 가운데 첫 번째로 알곡 생산을 강조했다. 그 결과 북한은 2025년에 목표량을 107% 초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에는 필요한 일일 알곡량이 최소 1만 톤이라는 공식이 있다. 자체적으로 365만 톤을 공급할 수 있으면 최소 수준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3년 기준으로 482만 톤을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추정량은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400만 톤은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에는 기후가 양호했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는 평균 이상을 생산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외부의 지원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생산량을 확보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 내부 소식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말보다는 장사가 안되고 살기 어렵다는 말이 더 많다. 최근에 북한 당국이 식량판매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배급소의 개념이 아니라 시장과 거의 동일하게 식량을 판매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시장 곡물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가격을 낮춰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달러 표시 쌀 1kg의 시장가격은 0.5~1달러 범위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사회주의 기업책임제 방식에서 식량 공급은 기업의 의무가 됐다. 각 기관들은 소속원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사업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여 일종의 월급 개념으로 소속원들에게 나눠준다. 이렇듯 북한은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외부의 지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 즉 자력갱생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다시 '발전 전략'을 채택하고 자력갱생을 넘어서야 한다
북한은 2025년 12월 말 개최될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을 평가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것이다. 그리고 2026년 1월로 예상되는 당대회(5년에 한 번씩 개최)에서 새로운 개발계획을 발표할 것이다. 이번과 같이 내부 기반을 다지고 외부 위협을 억제하는 '수세적 계획'이 될지 아니면 공세적 계획이 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최근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북한은 무리하게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지 않아도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하며 경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개발계획은 미국이나 한국을 고려하지 않고 2016년에 추진했던 '국가경제 발전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이 원하는 수준으로 협력을 강화할지는 불확실하다. 양국 모두 현 정세에서 북한을 이용하는 것이지 북한과 협력한다는 생각은 없는 듯하다. 군 인력이 필요한 러시아는 북한의 요구조건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러시아 입장에서 전후 가장 좋은 협력 파트너는 한국이라는 인식이 강하기도 하지만 전쟁 이후에도 북한과 협력할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인 듯하다.
중국 역시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 기념일을 전후해서 주요 인사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공동 행사 개최도 비교적 활발해졌다. 그러나 경제교류는 실질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산업이 고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와 같이 중국이 북한의 자원개발을 겨냥한다든가 북한 시장에 중국산 제품을 판매하는 등의 매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중국 내 인건비 상승과 중국 농민공들의 귀향 등으로 북한 인력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 역시 한시적이며 인력수출에 대한 경제 제재가 여전하기 때문에 연수생, 불법 취업 등의 방식으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북한은 딜레마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도 고민 중일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야 장기 개발계획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희 외무상과 경제관료들이 바쁘게 양국을 오가는 것도 이것 때문일 수 있다.
다만 북한이 자력갱생을 넘어 글로벌 가치사슬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북한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는 변함이 없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를 받아들인 사례에서 보듯이 미·중 대결 국면에서 한국의 중요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에 대화 재개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이 이 기회를 놓친다면 새로운 발전 전략을 추진하더라도 여전히 수세적일 것이며, 이는 그럭저럭 버티는 지난 40여 년 시간의 연장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은 밖으로 나와야 하고 한국, 미국과 교류 협력해야 정상국가로 들어설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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