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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문화산업 부흥, 인문학이 고사한 10년 뒤에도 지속될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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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문화산업 부흥, 인문학이 고사한 10년 뒤에도 지속될수 있나

[대학문제연구소 논평] 인문사회학술 생태계 고사(枯死)를 막는 ‘최저선’

이 달에 정부가 발표한 2026년 R&D예산안은 작년보다 19.3%나 증가하여 35.3조원이 되었다. 보도자료에서 "역대 최대 규모"라고 자평할 정도다. 교육부의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예산도 5.8%(9000억)나 증액되었다. 이쯤 되면 인문사회과학도 소위 낙수 효과를 얻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비율을 따지니 오히려 1%선이 무너졌다. 전체 R&D에서 인문사회 계열이 차지하는 비율이 1.2%(2025년)에서 0.93%(2026년)로 오히려 축소된 것이다. 물론 금액 자체는 2025년 2996억 원에서 2026년 3286억 원으로 289억 원(9.7%) 늘었다. 금액은 조금 증가했으나 비중은 준 셈이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가? 늘어난 예산을 'AI'를 비롯한 기술공학 분야에 집중 투입한 결과인데, AI 시대에 인문사회학의 비중이 이처럼 축소되어도 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평가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시대, 여기저기서 인문사회과학에는 단순히 경제적 효익뿐 아니라 사회적 효용성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정부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윤석열 전대통령은 2021년 9월 안동대학교를 방문하여 "인문학이라는 건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아무리 윤석열의 발언이지만 일말의 사회적 상식을 반영하는 면이 없지 않다. 더 거슬러 가보자. 지난 20여년 동안 '악' 소리도 못 내고 많은 인문사회 학과들이 폐과되어왔다. 수도권 대학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악 소리를 낸 가장 최근 사례는 지방 대형 사립대인 대구대학교 사회학과였다. 그나마 학과 장례식이라는 퍼포먼스를 했기 때문에 주목받았을 뿐, 문송해가는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미 인문사회 학과들은 전국 사립대, 특히 지방대에서는 조정이 될만큼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AI패러다임을 축으로 대학과 학과재편이 시도되면서 또 다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종의 '2차 구조조정'이라고 할까? 이 때 윤석열의 저 발언대로 '인문학을 굳이 학과 단위로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논리가 동원된다. 이 문제에 봉착한 대학이 안동의 경국대학교다. 인문학 특성화를 가지고 글로컬사업에 선정되었으나, 막상 글로컬대학이 되자 인문학 학과들을 '통폐합'하려 하고 있다. 교수사회를 비롯한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인문학을 특성화 한다면서 왜 학과를 없애느냐는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학과라는 행정적 단위만을 고집하는 것을 철밥통 지키기로 보는 경우가 많다(학과가 사라지면 교수들로서는 이 학과 저 학과로 소속변경을 하다가 결국은 해직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융합' - 예를 들어 HUSS사업(Humanities Utmost Sharing System,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사업)- 을 빌미로 마이너(minor) 학과들은 사라지곤 했다. 그러니 융합인지 흡수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융합은 어느 정도 각각의 학문이 독자성과 자율성을 유지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선호하는 표현은 학제간(inter-disciplinary) 협업 정도다. 백번 양보해보자. 학과까지는 아니더라도 '학문장'이라도 유지되어야, 학문의 명맥이라도 유지되어야, 제대로 된 융합 학문이 가능한 것 아닌가?

ⓒ게티이미뱅크

학문장이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학과가 무너져도 학문장이 존속된다면 그래도 학문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하는 사람이 존속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학과도 학문장도 다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문사회학술생태계'가 고사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 학과가 점점 사라지면서 지난 20여년 간 수많은 인문사회 박사들이 주로 '교양대학'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비정년트랙(non-tenure track) 전임교원으로 일자리를 마련했다. 글쓰기, 토론, 고전읽기, 독서 과목들뿐 아니라 각종 백화점식 인문사회 과목들을 이들은 가르친다. 구조조정 때문에 전공과목으로서의 인문사회 학문이 점차 사라지다보니 교양으로라도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과학이 학과로 존속되지 못하더라도, 교양은 그래도 중요하다는 컨센서스가 한동안 유지되었던 것 같다. 이처럼 학과 단위가 아닌 '교양대학' 단위로 인문사회과학을 배우는 추세가 강해지면서 인문사회과학이 학문이 아닌 '교양'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도래 하였다. 유튜브에도 그럴듯한 인문사회과학=교양 동영상이 넘치고 있다. 그리하여 인문사회과학은 '교양지식'이 되고 말았다. 전락인가? 시대의 대세인가?

물론 교양대학에서 인문사회과학이 잘 생존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방금 이야기했다시피 교양대학에 소속된 기간제 강사(?)들이 훌륭한 연구자로 인문사회학술생태계를 유지하기에는 여러모로 쉽지 않다. 최저임금에서 생활임금 사이의 급여를 받으면서 충분한 연구를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이들은 교수지만, 세컨드잡, 써드잡을 잡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많은 연구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다시 말해 '헝그리 정신'으로 열심히 연구하긴 하지만,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인문사회 연구자의 '미래'가 불투명해기 때문에, 학문후속세대의 학문하는 '동기'를 꺾어 버린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연구자들이 돈을 바라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돈을 바랬으면 왜 기초학문을 연구하는가. 이들이 능력이 없어서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이들이 바라는 것은 공부를 '지속'하는 것이다. 생계유지와 최소한의 연구여건을 원하는 것이다.

인문사회학술 생태계 유지를 위한 '최저선'

비단 이들 비정년트랙 교수들만이 아니라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각 대학의 집단연구소 연구교수들과 박사전임연구원들은 이들보다 더 불안정하다. 연구기간이 끝나면 한 대학에 계속 연구비를 주기를 꺼리는 행정 편의주의 때문에, 연구성과 축적의 잇점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구단이 과제신청에서 떨어져 문을 닫으면, 연구단의 연구자들은 해직자가 되고 만다. 2026년 예산안에 따르면, 국립대에 인문사회 기초연구소 3곳을 만들어 총120억(아마 한 대학에 40억?)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이것 가지고 인문사회 학술생태계가 발전은커녕 유지라도 가능할까?

인문사회 분야 학과들은 존속되어야 한다. 최소한 국립대학이라도 인문사회 분야 학과들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사립에서도 특성화 지원을 통해 인문사회 분야 전공들을 살리고 유지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안동의 경국대학교 사례에서 보듯이 “인문학을 학과 전공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에, 아무리 R&D 예산을 증액해도 인문사회 분야 학과들은 융합과 흡수라는 형식으로 소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는가? 필자는 적어도 분과학문의 명맥이라도 유지하는 '최저선'으로 연구재단이 수년간 다듬어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B' 사업의 확대를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 11월 13일, 비정규교수노조는 2026년 예산안에 윤석열 정부가 도입했던 '전략연구사업비 5000억'이 여전히 편성돼 있다며 전액 삭제를 요구하고, 그 예산으로 인문사회 분야 비정규교수들의 최소한의 연구 안전망인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B유형'을 대폭 확대하라고 주문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국가박사제로 향후 발전시킬 수 있으며, 개인베이스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공에 전념할 수 있고, 행정적 업무보다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인문학자들과 기초학문 연구자들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제도다.

2025년에는 연 4000만 원의 A유형과 연 2000만 원의 B유형 합친 금액이 1년에 950억 정도였다. 올해 약 3000명이 지원을 받고 있다. 차라리 이 사업을 연4000만 원 하나로 통일하되, 장기/중기/단기 계획으로 기간별로 –지금의 신진/중견연구자 사업이 1년, 2년, 3년 단위로 선택하여 신청하듯이- 신청하도록 하고, 비수도권 지역 정주자들에게는 추가적인 인센티브(지역대학과 협조하여 '1인 연구실' 제공, 정주기간 증가에 따른 연봉 인상, 주택구매시 가점 등)를 제공하여 기초학문 연구자들의 지역으로의 이동을 촉진하면 좋겠다. 이는 연구생태계의 지역균형을 고려한 것이다. 필자가 추산하기로는 만일 총 1만5000명 정도(약 5000억~6000억)까지 지원받는다면 국가박사제에 가까워져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안정적 재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연구재단은 대학 강사가 아니더라도 논문과 학위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구비 신청이 가능하게 해놓았다. 이 사업은 이미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예산만 증액한다면 가장 적은 예산으로도 가장 효율적으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를 고사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후속세대들이 최소한의 안전판은 있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토대가 되어야만, 한국의 AI강국, 문화강국의 비전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이 고사한다면 현재의 문화산업의 부흥이 과연 10년 뒤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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