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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정리된 다음 살아가는 세대는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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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정리된 다음 살아가는 세대는 얼마나 행복할까?

[안치용의 노벨문학상의 문장] 모옌 <개구리>

"고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고모 잘못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요즘 고모는 자기 손에 피를 묻혔다고 자주 참회해요. 하지만 그건 역사였어요. 역사는 결과를 중시할 뿐, 수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마치 사람들이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위대한 건축물을 볼 때 건축 이면에 자리한 수많은 백골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요."

-<개구리>(모옌, 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일한 중국 작가로 본명은 관모예(管謨業)다. 모옌(莫言)은 필명으로, (글로 쓰지)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오싱젠(2000년 수상)이 모옌에 앞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한 후에 수상했기에 국적이 프랑스였다. 중국어권 작가로 하면 두 번째 수상자다.

공장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76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군 생활 중에 문학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이후 베이징사범대학 등에서 공부했다. 1987년 <홍까오량 가족(红高粱家族)>이 성공하며 작가로 입지를 굳힌다. 이 소설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붉은 수수밭'이란 영화로 만들어졌고, 영화가 1988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덩달아 소설이 유명해졌다.

현재 중국에서 최고 작가로 꼽혀 종종 중국의 포크너라고 불리는가 하면 더러 중국의 카프카로도 불린다. 환상적 리얼리즘 등 그의 작품세계가 포크너와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한때 모옌은 일부 반체제 망명 중국인 사이에서 친정부 어용작가로 비난을 받았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2년 전인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와 비교되어, 그가 중국 정부 지원을 받는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을 맡은 것을 두고 나온 얘기다. 요즘은 극렬 인터넷 애국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모옌이 작품을 통해 "영웅 열사들을 모욕했다"고 비난하는 정반대 상황이 빚어지고 있으니 세상의 인심이라는 게 요상하다.

화자인 커더우가 중국의 계획생육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의 고모 완신을 중심으로 작중 문학 스승 스기타니 요시토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만든 소설이다. 굳이 앞에 명시한 스기타니 요시토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소설의 이름 커더우는 필명이고, 실제 이름은 고모가 지어준 완쭈이이다.

계획생육 시대 중국의 사회상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회상의 구조를 취한 편지글은 고모의 활약상을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1937년생인 고모는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라서 중앙 정치 무대에서 출세할 수 있었으나, 군의관이었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자 위생학교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1954년 4월 4일 처음 아이를 받은 후 의사를 그만둘 때까지 모두 1만 명의 아이를 받아냈다. 커더우의 탄생도 고모가 지켰다.

고모가 산부인과 첫 아이를 받을 무렵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출산을 장려했다. 당시는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며 실업, 주택, 의료 등 여러 사회문제가 예상되자 비공식적인 산아제한으로 정책을 바꾸었고 나중에는 대대적이고 강력한 계획생육, 즉 산아제한을 밀어붙였다.

고모의 남자친구는 공군 조종사였다. 어느 날 비행기를 몰고 해협을 넘어 타이완의 장제스 정권에 귀순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 내에서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되자, 계획생육 정책에 더 헌신함으로써 애국심을 증명한다.

소설은 고모의 상반된 역할, 즉 아이를 태어나게 하거나 태어나지 못 하게 하는 상반된 두 일을 보여주다가, 커더우에 이르러 소설 전개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건을 일으킨다. 딸을 낳은 데 이어 새로 아이를 갖게 된 커더우 부부는 어떻게든 둘째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만, 고모는 당과 국가의 정책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며 낙태를 고집한다. 결국 아내는 낙태 수술을 받던 중에 숨진다.

아내 사망 후 커더우는 고모의 조수인 샤오스쯔와 재혼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선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나이가 든 데다 아이가 갖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던 샤오스쯔는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기로 한다. 커더우는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진 대리모의 임신과 출산에 반대하지만 결국 샤오스쯔의 뜻을 받아들인다. 대리모의 임신 기간에 자신도 임신한 것으로 하여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대리모가 출산한 아들을 부부의 아이로 하여 고향의 가족에 데리고 간다. 고모는 의사에서 퇴직한 후 늦게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자신이 낙태한 아이들의 모습을 점토 인형으로 만들면서 노년을 보낸다. 샤오스쯔의 거짓 임신을 의사로서 당연히 알지만 모른 척하며 축복한다.

핏물이 강을 이룰지라도 초과 출산은 허락할 수 없다

중국의 산아제한정책인 '계획생육'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이 소설은 회상으로 출발한다. 화자가 회상한 고모는 고향에서 50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아이를 받은 전설적인 산부인과 의사이다. 혁명 열사의 딸이라는 탁월한 출신 성분에 신식 의학을 배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지만, 약혼자의 타이완 망명 이후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계획생육 정책을 정부에서 폭압적으로 시행하면서 고모는 생명의 탄생을 지키는 성스럽고 보람 있는 일 대신 임신 중절 수술을 하게 되면서 '살아 있는 염라대왕'으로 불린다.

<개구리>는 현대 중국의 '뜨거운 감자'인 인구 문제를 일선의 산부인과 의사를 통해 풀어낸 작품이다. 인구가 1949년 5억4100만 명에서 1969년 8억 명을 넘어서자 당황한 중국 정부는 "핏물이 강을 이룰지라도 초과 출산은 허락할 수 없다"면서 강력하게 산아제한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생명 윤리 위배 등 강제 집행에 따른 부작용이 사회 전반에서 속출했다. 많은 아이가 호적에 오르지 못한 채 '어둠의 자식'으로 남아야 했다.

모옌은 등단 이후 줄곧 고향인 산둥성 가오미현을 주요 무대로 소설을 썼기에 향토 소설가 또는 심근(尋根·뿌리를 찾는다는 뜻) 소설가로 분류되었으며 서구 모더니즘도 받아들인 선봉문학(先鋒文學, 전위파) 작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중국 민간 문화를 바탕으로 '환각 리얼리즘'을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의 하나인 <개구리> 역시 편지글과 소설, 마지막에 덧붙인 희곡이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에 사회문제를 이야기꾼의 문체로 재미있게 담아내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개구리>는 커더우가 화자인 일인칭 소설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고모이고, 분명 소설 형식이지만 커더우가 수신자인 스기타니 요시토에게 보내는 다섯 통의 긴 편지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다섯 번째 편지가 9막짜리 희곡이다.

개구리를 뜻하는 중국어 '와(蛙)'는 아기란 뜻의 '와(娃)'와 음이 비슷하다. 제목의 '개구리'가 한국어로는 와닿지 않지만, 중국어로는 계획생육 정책에 관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역사는 결과를 중시할 뿐, 수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진술은, 소설로는 개연성을 확보한다. '고모'가 퇴직 후에 점토 인형을 만들며 말년을 참회하며 보내는 모습도 소설로 납득할 만한 마무리이다.

다만 과정에 속해 '수단'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에선 더 일반적인 모습이긴 하다. 소설에도 과정이 나오긴 한다. 작가가 영리하게 과정을 통과하는 역사의 수단에 관해 성찰하지만, 수단과 과정을 정색하며 다루진 않는다. 모든 게 정리된 다음에 살아갈 수 있는 세대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정리라는 게 언제나 상대적 개념인지라, 어느 세대나 누구나 스스로를 과정에 속한다고 할 법하기에 행복은 요원하지 싶다. 2012년 수상.

▲Frog playing guitar in a marsh (1906-1918), René Ackermann (German, 19th/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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