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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극우가 온다"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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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극우가 온다"는 경고

[기고] 다큐 한 편이 던진 불편한 질문

최근 <뉴스타파>의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소년극우가 온다"를 보며 한동안 화면을 끄지 못했다. 극단적 혐오와 배제의 언어, 권위주의적 질서에 대한 동경이 더 이상 일부 청년층의 문제가 아니라 중·고등학생 세대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현실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주고 있는가?

'청년극우'라는 말이 등장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 연령대가 더 내려간 '소년극우' 현상이 공론장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아이들이 보수화됐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현상을 지나치게 평면화하는 일이다. 소년극우는 갑작스러운 사상적 변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조와 미디어 환경이 빚어낸 복합적 결과에 가깝다.

무엇보다 분노의 형성 시기가 빨라졌다. 청소년들은 입시 경쟁, 부모 세대의 계층 불안, 취업난 담론 속에서 일찍부터 미래의 벽을 체감한다. 그러나 그 불안은 구조적 이해로 이어지기보다 '누군가 특혜를 받았다'는 식의 단순한 공정성 분노로 소비된다. 극단적 담론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극우세력은 복잡한 설명 대신 분명한 적을 제시하고, 분노의 방향을 정렬해준다.

디지털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청소년의 정치 인식은 교과서보다 플랫폼에서 형성된다. 쇼츠와 같은 짧은 영상과 자극적 편집, 조롱 섞인 화법은 현실을 흑백 구도로 단순화한다. 알고리즘은 분노와 혐오가 담긴 콘텐츠를 더 널리 확산시키고, 정치는 숙고의 대상이 아니라 '재미있는 소비물'이 된다. 오락화된 정치 공간에서 극단적 메시지는 언제나 더 강한 주목을 받는다.

공동체 경험의 약화도 배경이다. 그간 지역사회 활동, 학교 자치, 시민교육의 장은 축소됐고, 청소년들은 온라인의 동질적 집단 속에서 세계를 인식한다. 타인의 삶을 이해할 기회가 줄어들수록 배타적 세계관은 강화된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강한 질서'에 기대고 싶은 심리 역시 커진다. 다양성과 타협의 언어보다 단호한 힘의 언어가 더 쉽게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통제와 검열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필요한 것은 사상의 억압이 아니라 환경의 재구성이다. 민주주의를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배우게 해야 한다. 토론 수업과 모의의회, 지역사회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다른 의견이 공존하는 과정'을 체득하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역시 필수다. 정보의 진위를 가리고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때 혐오 콘텐츠의 무비판적 수용은 줄어든다.

공정성 담론의 재정립도 중요하다. 경쟁의 규칙만이 아니라 출발선의 조건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빈약할수록 단순한 분노의 정치가 힘을 얻는다. 동시에 청소년의 제도권 정치 참여 통로를 넓혀야 한다. 배제된 세대는 급진화되기 쉽지만, 발언의 공간이 있을 때 극단성은 완화된다.

'소년극우' 현상은 한 세대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켜 올린 경고등이다. 불안한 미래, 단절된 공동체, 오락화된 정치, 방치된 혐오가 결합될 때 극단주의는 가장 어린 세대의 언어가 된다. 청소년은 사회의 거울이다. 거울 속 모습이 낯설다면, 얼굴이 아니라 환경을 바꿔야 한다.

"윤어게인"을 외치며 극우집회를 따라가는 우리 아이들에 비친 절망, 이를 직시하고 이제 우리 기성세대가 그 환경을 바꾸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나선 이들이 과열된 후보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바로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소년 극우가 온다> 포스터.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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