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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계엄으로 갈라진 한국에서, 김민기를 기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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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계엄으로 갈라진 한국에서, 김민기를 기억하는 법

[최재천의 책갈피] <김민기> 김창남 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김민기 선생의 <늙은 군인의 노래>다. 선생의 군대시절, 정년퇴직하는 탄약계 선임하사의 술자리 푸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작곡해 선물했다는. 노래는 음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에 수록되었으나 곧 방송 금지됐다. 1980년 이후 이 노래 속의 '군인' 대신 부르는 사람에 따라 '투사' 혹은 '교사', '농민', '노동자'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불렸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광주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맞았다. 고등학교 2학년 금남로에서 5·18을 겪었다. 그때쯤부터 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늙은 군인'이 아니었다. "투사"의 노래였다.

거의 두 달이 되어간다. 거의 환자처럼 김민기 선생의 삶에 빠져 산다. 그냥 슬프다. 선생을 생각하면 그저 슬프다. 그리고는 고맙다. 한없이 고맙다.

선생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떤 몸짓으로 시대의 슬픔과 고통과 정의와 민주를 노래했을까. 선생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계엄과 폭력과 독재와 광기의 70년대, 80년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두 권의 책 혹은 자료가 있다. 하나는 2004년에 초판을 찍고, 2024년에 3쇄를 발행한 김창남 선생의 <김민기>.

악보가 대부분이지만 글로 된 원사료가 충분하다. 둘은 최근 술자리에서 선생 이야기를 꺼내들었더니 어느 교수가 보내온 <김민기 - 김민기 1971 [복각 LP 패키지]>. 내게는 LP판이 아니라 연보이자 자료집이다. 이 둘로 오늘을 변주한다. 윤석열의 계엄으로 여전히 둘로 갈라진 한국사회를.

선생의 회상과 철학이다.

"(1971년 고문을 당할 때)비록 내 몸은 의식을 잃었지만 내 마음은 더욱 뚜렷해졌다. 일종의 환각 상태에 접어들면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입에 거품을 물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악의 화신처럼 보였다. 내 마음은 평화롭게 가라앉았지만 나 때문에 악을 행해야만 하는 그 사람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노래엔 음악 내면의 고유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극단적인 이념 틀로 몰아가고자 하는 것은 파국밖에는 기다리는 것이 없다. 나의 눈엔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작게는 노랫말 하나를 다루는 자세, 즉 낱말 하나하나마다 정서의 빛깔이 다른 것인데 그런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것, 크게는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태도, 가령 일상적인 소재는 나른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들이 그렇다. 얼마나 공허한가."

▲<김민기> 김창남 글 ⓒ한울
ⓒ김민기 - 김민기 1971 [180G LP 패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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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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