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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 사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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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 사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고] 회복적 사법, 정의로운 돌봄,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 안전을 향해

최근 한 배우가 과거 저지른 절도 및 성범죄로 인해 소년원 처분을 받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의 은퇴 선언을 둘러싸고 거센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미 처벌을 받은 사건이라는데, 언제까지 과거의 죄가 따라다녀야 하느냐"고 문제제기한다. 다른 이들은 "그의 지속적인 등장은 피해자에게 끝없는 2차 피해를 반복하게 한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두 의견 모두 강한 논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가해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핵심은 한국 사회가 성범죄를 여전히 '처벌의 문제'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회복과 사회 전체의 안전 구조에 대한 논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범죄와 폭력을 오직 사법 시스템과 형벌 강화로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성범죄는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깊이 뿌리내린 가부장제, 젠더 불평등, 권력의 비대칭, 여성혐오 문화, 돌봄 체계의 붕괴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이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시민들이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강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사회적 매장, 사적 처벌)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사회 제도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개인의 분노와 사적 복수 정서로 떠넘기는 위험한 흐름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적 복수 서사가 폭발적 인기를 얻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동체와 제도가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는 신뢰가 약한 사회에서, 폭력 문제는 자연스럽게 '감정적 처벌'로 치우친다.

▲조진웅 배우 ⓒ 연합뉴스

우리는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 사회는 '치안 중심'의 안전관만을 발전시켜 왔다. N번방·박사방·딥페이크 사건이 계속 터져도, 처벌 강화 법안은 만들어지지만 공교육 내 성교육·성평등교육은 강화되지 않는다. 성평등 인식 향상을 위한 캠페인이나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사회적 프로젝트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 발생 후 피해자의 몸·마음·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지원 체계 역시 미비하다.

범죄가 발생하면 국가는 경찰력과 처벌로 대응하고, 시민은 언론과 SNS 공론화를 통해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추방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사회 안전(social safety)을 만들 수 없다. 안전은 처벌의 크기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조건'에서 형성된다. 즉, 성평등 의식·태도·관계를 사회 전반에 촘촘하게 확산시켜, 누구나 안전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 안전이 구축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예방적 안전 구조를 거의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공교육의 성교육과 성평등교육은 여전히 취약하고, 피해자 심리·법률·의료지원 체계는 충분하지 않다. 장기 회복 프로그램과 경제적·정서적 지원은 사실상 부재하며, 2차 피해 방지 장치는 유명무실하다. 학교·직장은 물론, 경찰·사법기관조차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전문성이 매우 부족하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제도권에서 거의 시도되지 않았고, 시민들이 함께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논의할 공론장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가해자가 평생 고통받아야 한다'거나 '가해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가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할 구조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해자의 고통을 통해서라도 그 공백을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피해자를 치유하지도,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처벌은 필요하지만, 처벌만으로는 위험·범죄·폭력을 줄일 수 없다.

▲젠더 교육 중인 백양초교 학생들. ⓒ연합뉴스

우리는 이제 회복적 사법, 정의로운 돌봄,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라는 세 가지 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다. 회복적 사법은 가해자를 가볍게 처벌하자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 중심의 회복과 공동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체계다. 회복적 사법은 가해자에게 "너에게 어떤 형을 줄까?"를 묻지 않는다. 대신 "너의 행위는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가? 그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그리고 그 회복에 공동체는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를 묻는다.

피해자의 마음·몸·관계·일상을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것, 가해자가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변화하여 스스로 온전한 책임을 지는 것, 공동체가 회복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 이것이 회복적 사법의 핵심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가해자의 미래'가 아니라, '피해 생존자의 오늘'이다.

둘째, 정의로운 돌봄(Justice Care)이다. 돌봄은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원리다. 돌봄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돌봄이 고루 분배되는 사회(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 누구도 소외되거나 고립되지 않는 사회, 누구도 착취나 폭력의 위험에 내몰리지 않는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지지할 수 있는 사회는 자연스럽게 안전해진다. 폭력은 돌봄이 부재한 틈에서 자란다. 따라서 돌봄은 곧 폭력 예방의 가장 강력한 사회적 기반이다.

셋째,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Inclusive Society)다. 포함(Inclusion)은 소수자를 배려하는 친절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권력 격차로 인해 주변화·배제를 경험하는 집단이 많을수록 폭력은 증가하고, 평등과 존엄이 보장될수록 폭력은 감소한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어린이·청소년·노인·비정규직·빈곤층 등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누구나 환대·존중·인정을 받으며 존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포함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사회 안전(Social Safety)이 확보되고 확장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모델이다. 정의로운 돌봄이 기반을 만들고, 모두의 포함이 안전의 조건을 만들며, 회복적 사법이 공동체의 책임과 회복을 완성한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새롭게 구성해야 할 사회 안전의 방향이다. 즉,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를 사회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공교육 안팎에서 성평등 교육을 촘촘히 실행하고, 사건 발생 후에는 공정하고 전문적인 젠더에 기반한 수사 체계에 의해 판단하고,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육체적/경제적 보호·회복·지원을 강화하며, 2차 피해를 막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고, 가해자는 철저히(온전히) 재사회화 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도 필요하다. 이러한 회복적 사법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강한 처벌'이 아니라, '강한 사회 안전'을 기반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미 시민들의 사회·국가에 대한 신뢰는 많이 무너져 있다. 그러나 아직 너무 늦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계속해서 '가해자 응징'과 '사적 복수'의 정서 속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돌봄과 포함 사회 구축을 통해 폭력 자체를 줄여가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돌봄·포함·회복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모두가 안전하고 모두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다. 그 사회에서는 단 한 사람의 고통도 "개인의 문제(사적인 문제)"로 여겨지거나 방치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많은 연대의 현장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제 그 말을 구호에 멈추게 두지 말자. 공동체가, 사회가, 국가가 정말로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기대고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강한 공동체의 안전(사회 안전)을 향해 지금 여기에서부터 함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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