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일명 "화장실 법안(Bathroom bill)"으로 알려진 'House Bill 2'를 통과시켜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공공 화장실의 사용을 금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취임 첫날인 2025년 1월 20일, "젠더 이데올로기 극단주의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연방정부에 생물학적 진실을 회복하기"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연방정부의 모든 정책과 문서에서 "젠더"를 "성별(sex)"로 대체하고, "성별"을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개인의 불변하는 생물학적 분류"로 규정하도록 지시했다. 나아가 트럼프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생물학적 성별과 분리된 광범위한 젠더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포함한다며 이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여파는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2025년 9월 텍사스의 한 공립대학교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수업을 가르치던 영문학과 교수는 이 행정명령에 기반해 젠더 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그 이후 해당 대학에서는 총장의 사전 승인 없이 인종, 젠더 이데올로기,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 관련 주제를 옹호하는 수업이 금지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오클라호마의 한 공립대학교 심리학과 수업의 젠더 관련 에세이 과제가 논란이 되었다. 한 학생이 기독교적 믿음에 근거해 '다양한 젠더 정체성은 거짓이고 악마적'이라고 작성하여 과제를 제출했다.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과제가 제시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은 이 학생의 과제는 0점을 받았고, 학생은 종교 차별을 이유로 학교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해당 강사는 휴직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공화당 정치인들과 언론에 의해 젠더 이데올로기, 종교, 그리고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전국적 문화 전쟁(culture war)으로 확대되었다.
시스섹시즘(Cissexism)은 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과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만을 정상/규범으로 전제하고, 트랜스젠더를 비정상/일탈로 간주하여 배제하는 사회 시스템을 말한다. 트랜스젠더는 한 사회에서 개인적 그리고 구조적 수준의 시스섹시즘을 경험한다. 우선 개인적 수준에서는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괴롭힘, 거절과 같은 적극적 차별, 트랜스젠더가 본인의 젠더 정체성에 대해서 가지는 내재화된 낙인, 그리고 본인의 안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정체성을 숨기는 것 등이 있다. 구조적 수준의 시스섹시즘은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법률, 정책, 사회적 태도, 그리고 문화적 규범을 포괄한다. 특히 호르몬 요법이나 성확정 수술과 같은 젠더확정치료를 금지하는 법안처럼 명백하게 트랜스젠더에게 차별적인 법률 및 정책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관련 의료서비스를 보장하지 않는 건강보험과 같은 제도적 장벽도 구조적 시스섹시즘에 해당한다.
미국 공중보건학술지에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미국 트랜스젠더 청소년 5658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거주하는 주(state)의 구조적 시스섹시즘이 이들의 정신 건강 및 의료 접근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관련논문 바로가기: 미국의 젠더 다양성 청소년들의 구조적 시스섹시즘, 정신건강 그리고 미충족 의료서비스). 연구팀은 각 주의 트랜스젠더 관련 법률과 정책, 그리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태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조적 시스섹시즘을 측정했다.
연구 결과 미국의 50개 주와 워싱턴 DC 중 구조적 시스섹시즘이 가장 높은 곳은 앨라배마, 사우스다코다, 아칸소, 테네시, 미시시피 순이었다. 이에 반해 구조적 시스섹시즘이 가장 낮은 곳은 오리건, 캘리포니아, 워싱턴 DC, 버몬트, 콜로라도 순이었다. 더 나아가 구조적 시스섹시즘 수준이 높은 주에 사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낮은 주에 사는 청소년들에 비해 우울과 불안 증상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에게 가장 억압적인 법·제도 및 사회적 태도를 가진 앨라배마주와 가장 포용적인 오리건주를 비교하면, 앨라배마에 사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우울·불안증상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더 주목할 점은 정신 건강 관련 의료서비스 접근성이다. 구조적 시스섹시즘 수준이 높은 주에 사는 청소년들은 '정신건강 관련 치료나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한 비율이 훨씬 높았다. 실제로 트랜스젠더를 차별하는 법률이 많은 주일수록,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신건강 전문가의 수 자체가 적다는 선행연구(☞관련연구 바로가기)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경제력 문제라고 할 수 없다. 트랜스젠더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법·제도 및 사회적 태도가 의료 인프라까지 좌우하는 것이다.
연구팀이 특히 강조한 것은 청소년기라는 특수성이다. 청소년기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발달이 급격히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다. 이때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둘러싼 차별적인 법과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그 영향은 단순히 지금의 우울감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태사회이론(ecosocial theory)에 따르면, 이러한 구조적 억압은 개인의 몸에 체화(embodiment)되어 장기적인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조적 시스섹시즘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법적 성별 정정의 높은 문턱,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부재,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지우고 배제하는 법·제도 및 사회적 관행과 규범들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개인의 편견을 바꾸는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할 사회적 문제로 여기지 않는 한,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이들의 삶을 짓누르는 무게를 덜어내기는 어렵다. 이것이 이 연구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서지 정보
Lee, H., Sullivan, T. R., Abramson, J. R., McCauley, P. S., Watson, R. J., & Mereish, E. H. (2025). Structural Cissexism, Mental Health, and Unmet Health Care Needs Among Gender-Diverse Adolescents in the United States.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0), e1-e11. https://ajph.aphapublications.org/doi/epdf/10.2105/AJPH.2025.308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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