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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극보수주의의 승리, 세계 민주주의의 최후를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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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극보수주의의 승리, 세계 민주주의의 최후를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인가?

[기고]

지난해 칠레 대선에서 극우주의자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가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 지형을 지녔던 칠레도 극우의 물결에 휩쓸리게 됐다.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정리한 기고를 싣는다. 본문을 읽으면 알겠지만, 칠레 정치의 극우화 과정은 한국 정치의 변화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비슷한 면이 있다. 편집자.

이 글의 저자인 세르히오 에릭 카니우케오 우이르카판(Sergio Erick Caniuqueo Huircapan)은 마푸체(칠레 최대 선주민족 집단) 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로 본인도 마푸체 원주민이다. 프론테라 대학교(Universidad de la Frontera)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우이르카판은 역사, 지리, 시민교육 교사며 교차문화 보건 학사(diploma en salud intercutural), 교차문화 및 원주민 연구소 보조 연구자, 칠레 가톨릭 대학교 비야리카 캠퍼스 강사로 활동 중이다. 또 발전, 역사, 원주민법, 교육 및 교차보건 관련 상담사로 활동한다.

우이르카판은 여러 매체(칠레 중요 일간지 La Tercera 포함)에 사설을 기고하고 있으며 2016년에 아라우카니아 지역 문화 예술 위원회로부터 지역 역사 기억에 대한 공헌을 인정 받았다. 그의 대표 저작은 <Escucha, winka!>(2006)로 이 책의 네 저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은 마푸체 선주민족(원주민) 신진 학자들의 입장에서 본 칠레의 선주민을 상대로 한 식민주의 정책과 침략을 다룬 저서로서 발간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책의 제목은 찰스 라이트 밀스의 <들어라 양키들아>를 오마주한 것이다. "윙카(winka)"는 마푸체 선주민족이 마푸체 영토에 대한 침략자 백인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우이르카판은 이후로도 "독재와 마푸체족 1973-1978. 칠레 식민주의의 재구성(Dictadura y pueblo mapuche 1973-1978)", "국가, 마푸체족, 다민족: 자율권을 위한 투쟁. 피노체트 독재에서 현재까지(2022)"와 같은 매우 다양한 저작을 남기며 독재, 원주민, 칠레 사회의 식민주의성 면에서 폭넓게 인용되는 학자이다. (*역자: 조성훈)

칠레는 최근 몇 년 동안 선거 면에서 가장 복잡한 정치무대 중 하나였다. 지난해 12월 4일에 치른 가장 최근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념이 정반대인 두 진영이 맞붙었다. 한쪽은 공산당의 후보였고 다른 한쪽은 극우의 대표였다. 그 결과 개표 99.9% 단계에서 58.16%를 얻은 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가 41.84%를 얻은 야네트 하라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본질상 이 승리는 최근 1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 및 정치 투쟁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투쟁에서 브라질에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승리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엘살바도르에서는 나이브 부켈레가, 에콰도르에서는 다니엘 노보아가, 볼리비아에서는 로드리고 파스 페레이라가, 파라과이에서는 산티아고 페냐가, 파나마에서는 호세 라울 물리노가, 온두라스에서는 나스리 아스푸라가 그 뒤를 이었다. 이들 모두 극보수 우익을 대표하며 민주주의적 합의와 인권을 하찮게 여긴다. 이들은 사회의 요구를 억누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여성주의자, 환경주의자, 원주민과 이민자 집단을 상대로 매우 난폭한 말을 내뱉는다. 특히 이민자에게는 국민의 일자리와 사회권을 빼앗는 이들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거기다 가치관 문제, 오순절교회계의 전략 투표 문제도 덧붙었다. 천주교회 쪽에서는 보수성이 가장 강한 집단이 극우 세력에 가세했다. 그렇게 해서 낙태, 안락사, 동성 결혼 및 입양과 같은 주제의 법안들이 입법 단계에서 거부되었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극보수와 진보주의라는 양극이 유지되고 있는데 진보주의는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와 같은 핵심 국가들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만들어 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관세 전쟁의 경우에서처럼 외교 관계도 이 갈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 유럽과 미국 보수주의의 메아리로 라틴아메리카에서 태어난 흐름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더 존중하는 우익을 제거했다. 우리가 칠레의 일을 통해 여러 나라 내외부의 공존을 위협하는 세계 규모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칠레는 쿠데타가 적고 내전도 한 번밖에 치르지 않은 역사 덕분에 모범적인 민주주의 모델로 인정받았다. 이웃 나라들과 정말 다른 것처럼 보였다. 국제 사회에서 칠레는 정부가 잘 돌아가는 나라이자 광업(정련된 구리, 최근의 리튬 생산)과 농업(과일과 포도주), 임업(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식물 섬유소) 면에서 주요국의 원자재 수출 교역 상대로 두각을 보였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전략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또한 칠레는 첨단기술 제품(핸드폰, 마이크로프로세서, 컴퓨터 따위의 예를 들 수 있다) 수입국이자 기계 설비와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업 생산국이다.

▲지난해 칠레 대선에서 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우)가 야네트 하라(좌)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AFP=연합뉴스

새로운 진보 운동이 어떻게 정치 극우화로 이어졌나

칠레에서는 2010년부터 새 세대의 진보주의 운동 세대가 나타나 최근 10년 동안 의회에 그 대표를 보내 왔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형성되어 더 전통에 기반한 정치관을 지닌 정치인들로 대표되는 이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이 집단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젊은이들이 구성한 새 정당들은 성문제, 환경문제, 동물보호, 선주민족과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권리를 의제에 포함했고 칠레를 향한 초기 이민 물결에 대해서도 더 인본주의에 기초한 시선을 보였다. 여성주의 의제도 2018년 5월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학교부터 정당까지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던 은폐된 부당 행위에 대한 고발과 시위가 줄을 이었다. 이 분야에서 신세대와 이전 세대 사이 첫 문화 충돌이 일어났다.

연금 기금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민영화된 칠레 연금 제도에서는 AFP(연금관리회사)가 연금 생활자들에게 주는 연금이 낮게는 150달러고 대개 250달러였는데 이 금액이 당시 최저 임금 300달러보다 더 낮다는 게 문제였다. 이에 현재 유엔 사무총장 후보이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미첼 바첼렛의 정부는 AFP 가입자들에게 200달러 이상 300달러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연대의 기둥(Pilar solidario, 정부가 연금을 보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민영 연금 제도 중단을 외치는 운동은 이렇게 해서 동조자를 얻었으며 현재 연금 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 체계를 만들 것을 요구하였다. 길게 보아 2010년 학생 운동은 소득 기준 하위 40%의 가장 가난한 가계가 기술 교육기관과 대학에서 전액 장학 혜택을 받도록 하는 데도 같은 식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2019년 10월, 세바스티안 피녜라(우파 대통령) 정부 시기에 독재 시대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행진했다. 폭력을 시위 수단으로 이용하는 집단들도 있었다. 시위에 맞선 경찰 폭력으로 독재 이후 전례가 없었을 정도로 큰 인권 침해 상황이 조성되었다. 시위자 수백 명이 시위 진압용 총 때문에 눈알을 잃었다. 체포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된 폭력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도 많았다. 유엔(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칠레 미션 보고서(Informe de la Misión a Chile), 국제사면위원회의 칠레를 보는 눈(Ojo sobre Chile) 보고서, 국제인권감시기구의 경찰개혁에 대한 긴급한 호소 보고서, 미주인권위원회의 칠레 인권 상황 보고서(2020) 같은 칠레 인권 침해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정치를 이끄는 이들 중 가장 젊은 계층은 2019년의 이 상황을 여러 다른 정당들과 폭넓게 합의하여 국민투표를 치르도록 하는 데 활용하였다. 피노체트 독재가 남긴 1981년 헌법을 바꿀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였다. 헌법을 바꾸는 데 반대한 극우 진영은 그 당시에는 소수파였다. 새 헌법을 만들자는 의견이 승리한 뒤 극우 진영이 서서히 부상했다. 극우는 가짜 뉴스를 급속도로 퍼뜨렸다. 그렇게 진보 진영의 정당성을 거칠게 부정하며 차츰 대중의 지지를 얻어갔다. 대중은 이 현상을 비판 없이 진실로 받아들였다. 진실이 왜곡되고 가짜 정보가 퍼져갔다. 이 정보 상당 부분이 사회관계망을 통해 자유롭게 퍼져나갔다.

헌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두 차례 있었다. 이 두 시도 역시 앞서 언급한 두 진영이 이끌었다. 첫 시도는 대중 투표로 선정된 진보 진영(여당의 현 정당들은 참여하지 않은 독자 출마)이 주도하여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이들이 내놓은 헌법안은 그해 9월에 거부되고 말았다. 바로 이 시기에 우파가 퍼뜨리는 가짜 뉴스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극보수 진영의 거친 언어 사용도 일상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진보 진영은 시민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의지에서 멀어졌다. 이민과 치안 위기가 그런 것이었다.

국내 문제도 있었다. 사법 체계의 위기, 일반 범죄, 월말까지 생활비를 내는 데서 겪는 어려움, 과도한 가계 부채 등은 헌법 문제는 아니고 단기성이었지만 시민에게는 중요했다. 극우는 이 모든 의제를 이용하여 제헌의원들과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헌법 초안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국민투표를 앞에 두고 새 헌법을 긍정하는 세력과 거부하는 세력으로 두 진영이 형성되었다. 새 헌법 옹호파(좌파와 중도 좌파)는 매일매일의 삶에 중요한 의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시민들과 연대하는 데 실패했다. 헌법 개정 반대파(극우)는 당시 상황을 이용한 선전전을 펼쳐 제헌 과정, 나아가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60% 이상의 표를 얻었다.

이는 진보 정부에는 이중의 패배를 뜻했다. 첫째, 이념 진영에서 졌다. 사람들이 좀 더 보수적인 모습을 보였다. 둘째는 2010년 학생운동의 대변자이자 현재 대통령 당선자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를 2021년 선거에서 꺾어 칠레 역사상 가장 젊은 당선자가 되었던 진보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가 내건 정강의 패배였다. 보리치 대통령의 공공 정책은 새 진보 헌법의 승리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새 헌법을 제정하는 데 실패하자 보리치의 선거 공약과 제안들이 흔들렸다. 거기다 첫 내각에서 국정 운영 경험 부족이 드러나며 보리치는 중도의 옛 사민주의자들과 그보다 더 보수인 세력과 협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통령 정책 지지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두 번째 개헌 과정은 극우가 이끌었다. 극우 멤버들이 제헌의원으로 뽑혀 2023년 내내 헌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헌법안 또한 거부되었다. 이 헌법은 극보수주의 가치관을 의제로 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새 헌법안 작성에 참여하지 않은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지도자로 떠올랐다. 극우 진영의 계획 역시 시민들이 바라는 것과 거리가 있었다. 시민들은 당시 문제가 되는 것들이 해결되기를 바랐다. 더 거센 이민 물결이 찾아오고 있었다. 범죄가 늘어났다. 납치, 청부 살인, 더 강력한 화약 무기를 지니고 지역 정계에 촉수를 뻗치기 시작한 범죄 조직과 같이 이전 칠레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범죄 문제가 나타났다. 정부는 범죄 문제에서 성공했고 조직 범죄를 다루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청부 살인을 비롯한 살인과 납치 같은 폭력 범죄가 줄어들었는데도 사람들은 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정부 이미지에도 바뀐 것이 없었다.

경제적 좌절이 우익 문화의 범람으로 이어지다

누구나 칠레 같은 나라는 정치, 사회, 경제 불안정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일어난 일은 정반대다. 칠레는 2025년 세계 경쟁력 순위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된 나라 중 하나다. 이 순위는 경제 성적, 정부 효율, 기업 효율, 사회기반 시설을 지표로 사용하며 여기서 칠레는 44위로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1위다. 게다가 칠레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의 일원으로 여러 전략 동맹을 맺었으며 그중에서도 특별한 나라가 한국과 중국이다. 이 기간에 사회 불만이 폭발하는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진보 정부를 뽑았던 칠레인들이 어쩌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독재정부 중 하나를 좋게 평가하는 극우 정부를 뽑게 된 것일까? 2024년에 쿠데타 시도로 민주주의가 무너질 뻔했던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 상황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1973-1989)를 옹호하고 그 시절로부터 물려받은 극우 사상을 지닌 집단이 권력을 얻은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이들은 권위주의자다. 그 특징을 몇 가지만 들어보자면 사회와 인본주의의 문제인 이민과 범죄에 대해 폭력을 해결책으로 본다. 거기다 민주주의를 경시한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념을 극한으로 지지한다. 얼마 없는 공기업을 개인들에게 팔아 국가를 최소화하고 공공 지출도 크게 줄이려 한다. 경제성장만이 발전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교조주의를 통해 인기를 얻는다. 수입 차이에 따른 사회불평등, 개인과 가계의 부채 증대, 낮은 연금 같은 구조 문제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없다. 거기다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해 환경 보호도 해제하고 싶어 한다. 사회와 환경에 끼칠 영향은 계산하지 않는다. 규제와 노동권을 없애는 것으로 고용을 늘린다고도 한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 중 하나는 근무 연수 제거다. 근무 연수 제도에 따르면 회사는 노동자를 해고할 시 근무 한 해마다 한 달치 월급을 줘야 하며 근무 연수 최대치는 11년이다. 카스트는 이 제도를 고용주와 노동자가 저축을 위한 은행 계좌 하나에 돈을 넣는 계약으로 바꾸려 한다. 이렇게 하면 독재 이후 성취된 여러 노동권, 건강권, 교육권, 연금권 등이 침해당하게 된다.

한국과 칠레는 2004년부터 정식 자유 무역 협정 관계다. 이는 한국이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맺은 것으로는 최초다. 이 관계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경제협력개발기구, 유엔과 같은 국제 무대에서 그 관계를 심화했다. 두 나라는 그 무대에서 민주주의, 자유무역, 지역 안정과 같은 가치를 공유할 것으로 보였다.

칠레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른 나라들처럼 내부 합의 부문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갈등은 사회 불평등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보수주의자들은 국내 총생산과 생산성 증대, 국가의 재정 소비 축소를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국가 개입을 통한 사회권과 건강, 교육, 연금의 개선을 추구한다. 진보주의가 경제성장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성장이 사회와 환경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반대한다. 다른 한편으로 보리치 정부에서는 국가 기구 규모는 줄고, 성장은 유지되었으며 생산성도 변하지 않았다. 물가 상승은 억제되었고 재정 지출만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어느 진영도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문화계에서 일어난 변화 속에서도 극보수주의가 두드러졌다. 칠레 여론 조사 기관 CADEM의 조사 결과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전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우파 정당 연합의 지도자)와 함께 10% 득표율로 역사 속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 2위에 올랐다. 피노체트 독재는 인권 침해로 얼룩진 것이었다. 확인된 사망자만 해도 살해된 정치인, 체포된 뒤 실종된 이들까지 해서 3천 명이 넘는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오늘날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다. 정치 때문에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도 있었다. 직장에서 쫓겨난 뒤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을 못하게 된 이들이다. 국외 유배된 정치인도 있었다. 거기다 야간 통행 금지, 시위자에 대한 폭력과 살인을 동반하는 17년에 걸친 폭력 탄압, 언론 자유 통제도 빼놓을 수 없다. 몇몇 언론은 사라지거나 그 당시의 법 테두리 가장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칠레가 국가 차원에서 작성한 1990년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 보고서, 2003년의 정치범 및 고문에 대한 보고서에 담겼다.

극보수 우익의 승리는 정권을 쥔 정당 연합의 교체가 아니다.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문화관이다. 좌익 인사들에 대한 언어 및 상징 폭력은 우익의 특징이다. 다른 한편으로 페이크 뉴스, 즉 가짜 뉴스는 국가 사회경제 상황에 대한 거짓 정보에 힘을 보탰으며 다른 후보들의 측근 및 개인사와 관련한 스캔들을 만들어 냈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의 추종자와 주변 사람들이 이 일에 관련된 것이 드러났지만 카스트는 자신의 관여를 부정했다. 거기다 이 행위는 칠레에서 범죄를 구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벌도 받지 않았다. 카스트는 현재 정부와 국가 상황에 대해 거짓과 진실을 적절히 제시했다. 칠레에서 사람들이 학교를 다닌 년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대학 졸업장이 있는 사람 숫자도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게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극우는 칠레인의 정치 문맹을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이용하는 데 매우 능숙했다.

현재 칠레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낀다. 세상에 대한 반감과 이민과 범죄에 대한 공포도 존재한다. 좌절감과 반감은 너무 많은 빚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이다. 금융시장 위원회가 2024년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칠레인들 개개인의 빚은 1인당 1800달러 이상이며 이것도 정식 빚만 추산한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500달러 남짓하는 최저임금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덧붙여야 하겠다. 인구 16%가 빚 이자를 갚는 데만 자기 수익의 50% 이상을 사용한다. 거기다 빚의 85%만 정식 빚으로 존재하고 이 조사에는 포함되지 않은 빚도 존재한다. 2024년의 가장 최근 재무 상황 설문과 중앙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가구 51%가 빚을 지고 산다. 그 수치는 2021년에는 57.4%였는데 이는 칠레인들이 빚을 갚아나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현재는 칠레인 각 가정이 진 빚이 60에서 70%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다른 기관인 칠레데우다(Chiledeuda)는 인구 45%가 비공식 빚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한다. 가족이나 대부업자나 공식 체계 안에 없는 어떤 기관에서 빌린 돈이다. 이 45% 중 60%가 빚을 유지 중이다. 채무 시스템은 독재 시기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금융을 통해서, 그 뒤에는 신용카드를 통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도 소비 능력을 누릴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채무 시스템은 담보 대출, 자동차 할부, 은행 시스템을 통한 소비로 확대되었다. 곧 시스템은 상사(商社)들로 확장되어 거대해지고 다양화하였다.

칠레 경제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추정하는) 2.5%와 (중앙은행이 계산한) 2.75% 사이가 될 것이다. 물가 상승률은 대체로 낮아지는 중이라 2026년에는 4%에서 3.1%로 줄 것이고 8.5%의 실업률은 8.3%로 살짝 떨어질 수 있다. 칠레는 2024년에 견줘 올해 17% 더 많은 외자를 유치했다. 그렇다 해도 칠레는 거의 모든 면에서 경제적으로 종속된 국가다; 칠레는 오랜 옛날부터 기계와 기술 면에서, 거기다 식량 면에서도 의존해 왔다. 그래서 세계 경제에서 일어난 변동으로 가격 변화가 일어난다. 즉 제품 가격에 대한 통제가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달러 가격의 상승 또는 하락 역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끼친다. 칠레 시민들은 분명 이전보다 학교 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보 조사를 즐기는 문화도, 나라의 구조 문제를 알아볼 수 있게 해 줄 비판적 사고 문화도 없다 그래서 예를 들어 경제 정보는 정치와 사업계의 엘리트만 소비하는 것이다.

칠레 사람들의 경제 상황을 분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칠레 전국통계청에 따르면 인구의 69%가 월 500달러 미만을 벌어들인다. 이 사람들이 가난하고 취약한 중하위 계층이다. 새 최저 임금이 적용되면 이 수치가 바뀌었어야 한다. 하지만 2024년 평균치로 보자면 여전히 10명 중 7명은 월수입 800달러 정도로 평균보다 더 낮은 수입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평균이 나오는 이유는 월수입이 1만 달러를 넘는 계층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즉 국내 총생산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1.8%를 구성하며 수출과 수입을 하는 상위층이다. 그리고 시장의 역동성으로 투기를 하는 이들도 상위층이다. 경제성장에 대해 확실한 정보를 지니고 그 득을 보는 이들 역시 이 집단이다.

▲칠레의 새로운 대통령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AP=연합뉴스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는 극소수의 프로파간다가 칠레 민중을 사로잡다

이 정보를 아는 여당 측과 대선 후보 야네트 하라와 그 팀에게 "칠레가 산산조각나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극우 후보와 그 추종자들이 심은 그 말을 모든 언론 매체에서 반복했다. 모든 지표 중에서 고용만을 이용하여 내놓은 주장이었다. 월급만으로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하는 보통 칠레 사람들에게 그 말은 자신을 대변해 주는 말이었다. 이들은 가격 통제가 되지 않고 있다고, 물가가 자신들의 빚 만큼이나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느낀다. 이들이 보기에 진보주의는 발전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무 체계를 비롯한 칠레의 구조 자체가 1.8% 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집단에게 혜택을 주도록 짜여 있다는 것이다.

칠레 인구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 및 북부 지역 칠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또 다른 주제는 바로 이민과 범죄다. 칠레 언론이 부추긴 치안 부재 분위기가 선거 기간에 더욱 확대되었다. 거기다 봇과 가짜 계정이 나서서 사회관계망에 거짓 수치와 정보를 게시했다. 범죄와 범죄 조직에 대한 정책은 좋은 결과를 냈다. 하지만 이 언론 전략의 결과 사람들은 그 모든 정책을 나쁘게 평가하게 되었다. 급진성이 더 강한 집단은 보수적인 종교집단의 표를 얻기 위해 보수 윤리관을 의제로 내걸었다. 그리고 진보주의를 전통 가족과 사유재산과 조국의 적으로 선전했다.

칠레 선거 체계는 결선투표를 허용한다. 제일 많은 표를 받은 두 후보가 2차 투표를 치를 수 있다. 거기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승리한다. 1차 투표에는 후보 여덟 명이 출마했다. 프랑코 파리시는 자유주의 우파를 대표하며 우파와 좌파의 정치 연합을 부정하는 연설을 하지만 파리시의 제안은 그 방향을 항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인기영합주의 성향을 보이며 대중당(Partido de la gente)의 지지를 받았다. 공산당의 야네트 하라는 여권의 사민주의와 중도좌파 성형의 광범위한 정당 집단을 대표한다. 마르코 엔리케 오미나미는 좌파와 중도 일부를 대표하나 현재 여권이 자신을 대변한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요한네스 카이세르는 칠레에서 가장 극보수성향인 집단의 후보로서 자유지상주의 국민당(Partido nacional libertario) 소속으로 가치의 문제를 대선 출마 의제로 삼았다. 칠레로 이주한 나치 당원의 자식이자 역시 극우인 카스트는 실업과 범죄 문제를 부각하며 정부를 비판했고 공화당의 대표로서 기독사회당의 지지를 받는다. 아옌데주의 좌파의 후보 에두아르도 아르테스는 사회 문제에 더 주력하며 현재의 칠레 경제 체제를 비판한다. 19세기 말에 칠레에 온 독일인 식민자들의 후손이자 피노체트 독재 시기 군사 위원회의 일원의 딸인 에벨린 마테이는 중도우파 정당들의 모임을 대표하며 보수 성향이지만 여권과 합의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주의 및 실용주의 우파 성향을 지닌 독립 후보 해롤드 마이니 니콜스가 있다.

보다시피 우파 후보가 다섯, 중도에 가까운 후보가 셋, 극우 후보가 둘이었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는 이미 두 차례 후보로 나온 바 있었고 16년 동안 공화당의 하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미 경험이 많은 후보였던 것이다. 에벨린 마테이도 경험이 많았다. 마테이는 지역 정부의 수장 일을 해 보았으며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부의 장관이기도 했다. 이 둘이 대선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강한 후보였다. 야네트 하라도 자기 진영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나 시민의 지지는 그 정도로 크지 않았다. 거기다 자기 진영에서조차 경선을 거친 뒤에야 저당 연합의 대표가 될 수 있었다. 선거 운동에서는 금세 보수주의가 우세를 보였고 마테이의 인기는 급속히 떨어졌다. 카스트와 카이세르가 더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파리시도 어느 정도 떠올랐다. 반면 다른 후보들은 여론 조사 대부분에서 최소 지지도만 기록하며 변두리에 머물렀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의 계획과 행동은 우파를 분열시켰다. 사업가들이 에벨린 마테이를 지지하자 자기 진영 경선에 나서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한 카스트는 요한네스 카이세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걸 반겼다. 카이세르가 이념 의제를 밀어붙이도록 놔두고 자신은 이와 거리를 두는 것으로 자기를 중도로 보이게 만들었다. 균열은 우파 의원 목록을 두 개 가져가는 것에서 다시 한 번 보였다. 대통령 선거가 의원 선거와 함께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상황은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소 득표 또는 최소 의원수를 확보하지 못한 몇몇 작은 정당이 법에 따라 해산되어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 선거는 문화 전쟁이었고 보수주의와 몇몇 자유주의 이념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 정부에 대해 극심한 언어 폭력을 동원한 비판이 들어갔으나 공식 정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짜뉴스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게 어려웠다. 손질된 이미지와 악의를 품은 헛소문으로 극우는 더 많은 지지자를 얻을 수 있었다. 야네트 하라 지지층도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야네트의 득표는 30%를 넘지 못했고 결선에서는 40%가 되지 못했다. 카스트도 1차 투표에서 30% 이하이긴 했지만 결선에서는 쉽게 50%를 넘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야네트 하라는 26.85%로 결선투표로로 향했고 카스트는 23.93%였다. 반공 프로파간다는 처음부터 사용된 것이었지만 결선에 가서 더 극렬해졌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서와 달리 칠레에서 공산당은 늘 민주주의 제도를 존중했으며 독재 기간 동안 최후의 순간에만 무장투쟁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 거기다 칠레 공산당은 독재가 무너지기 전에 이미 봉기의 길을 버렸고 민주주의 귀환 기간 동안 모습을 일신하여 중도좌파 내지는 사민주의 정당이 되었다.

카스트는 우파 진영 거의 전부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고 그 덕분에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카스트의 약속을 실현할 뚜렷한 방안이 없다는 것을 대중은 중요시하지 않았다. 약속 그 자체만이 중요했다. 카스트는 비정규 이민자를 나라에서 추방하고 형량을 늘려서 감옥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범죄를 공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민을 막기 위해 벽을 세우고 깊은 해자를 파겠다거나 30만 명을 추방하겠다는 것 같은 현실성 없는 약속도 있었다.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팀이 정치 운동원으로 분류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을 해고하고 여러 부서를 폐지 또는 통합하겠다고 했다. 경제 면에서는 미국과 맺는 관계에 집중하고 공공 지출액을 6억 달러 넘게 줄이겠다고 하여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복지정책을 건드리거나 나아가 상당 부분 폐지하지 않고는 18개월 만에 그 액수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카스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세계적 보수의 약진, 그 끝은 대중의 기대를 배신할 것이다

현재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는 여러 공약을 취소하고 있다. 봉급 삭감, 이민자 추방, 재정 축소 공약을 취소했다. 범죄에 대한 약속 역시 취소 중이다. 선거 도중 썼던 위협조의 말투를 누그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우파가 전체 의석에서 절반이 조금 넘는 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우파 의원 모두 카스트 지지자는 아니다. 나아가 많은 수가 카스트가 우파를 분열시키고 진영 내 주도권을 쥔 것의 책임을 묻는다. 한편 대통령 당선자는 의회에서 이들의 표를 얻을 필요가 있다. 중도 좌파가 단결되어 있고 영향력도 강력해서 카스트의 정책 여럿을 좌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각 구성도 확실하지 않다. 카스트는 해외 방문으로 먼저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의 우파 대통령들을 찾아갔다. 부패, 범죄 등으로 경제가 손상된 나라들이다. 그 활동을 할 때 카스트는 더 조심스런 자세로 언론을 피했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는 지성이 뛰어난 지도자는 아니다. 의회 활동도 조용했다. 중요한 법안을 낸 것도 아니고 돋보일만한 연설도 하지 않았다. 카스트가 잘 단결된 인맥망을 쌓으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다. 대중의 두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카스트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카스트의 공약 역시 연금, 주택, 보건 분야에서 상당한 공공지출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현재 여러 다른 우파 정당들이 다음 정부 참여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카스트는 의회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모든 이를 다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카스트는 경제 상황이 매우 좋고 성장이 예견되는 나라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공약을 최소한도 이행하지 못하면 극보수주의는 의문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민 사회는 진보주의 대통령을 지지했다가 그 대통령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다른 진영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바로 그 상황이 4년 뒤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가장 큰 문제는 빚이다. 수많은 이들이 직업을 한 개 이상 갖고 있다. 하나는 공식 직업이고 다른 것은 비공식 직장이다. 수많은 이들이 빚 때문에 숨막히는 삶을 산다. 칠레는 지구의 다른 여러 곳에서처럼 소비주의가 강한 문화를 만들어낸 곳이다. 소비는 사회 속 가상의 신분 상승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사업가들은 빚을 돈을 버는 방법으로, 더 많은 이윤을 추출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이 모델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업가들은 그냥 소비될 제품을 수입하기만 하면 된다. 칠레 브랜드에는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없다. 모든 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보낸다. 은행과 상사와 자동차회사에 진 빚은 늘어난다. 하지만 정보가 분산되어 있고 깊이도 없으니 현재로서는 계산할 방법이 없다. 오늘날 각 가정의 상태에 대한 설문 조사 방법 개정이 진행 중이다. 이 조사 방법에 빚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으니 칠레의 빈민 수가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다. 빚을 잴 방법에도 세무를 감시할 방법에도 빈틈이 있으니 칠레는 구조 문제를 처리할 수가 없다.

카스트 정부는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다. 주로 청년들, 특히 전문화 교육을 받았으나 현재는 직장이 없거나 낮은 임금으로 하도급 상태에 처했으며 빚까지 진 이들의 기대가 크다. 이들은 칠레가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가 되는 걸 꿈꾼다. 이 꿈은 실현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보수주의가 희망에 찬 새로운 질서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꿈이 악몽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문화 다양성과 성과 환경 문제를 부정하는 보수, 봉급을 늘리지도, 고용을 확대하지도 않는 보수, 외부와 내부에 적을 만들고 통치의 유일한 방법으로 공포만을 사용하는 보수가 세계 곳곳에서 약진하고 있다. 칠레도 그 중 한 예다. 점점 더 많은 공포와 불안과 좌절을 낳는 이 세계에서 비판적 사고, 시민 문화 육성, 민주정에 대한 존중, 정치 지도층의 부패와 부도덕에 맞선 싸움, 공존을 위한 분위기 조성, 사람을 재화 소비가 아닌 됨됨이로 평가하는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시급해지고 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이번의 가장 큰 패배자들은 칠레 사민주의 정당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행정부에 남은 공무원들을 통해 국가 권력 일부를 유지하고있기 때문이다. 현장 관리부터 수장급에까지 권력 형태도 다양하다. 예전 정치 무대에서 믿을 만했던 사람이 고위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공개 선발로 뽑히게 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사민주의자들은 의회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남은 중도 우익과 협상할 수 있다. 셈법은 복잡하지만 분명한 저항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 카스트는 그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대화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난 바 있다. 또한 사법 시스템도 대개 우익과 극우 쪽에서 나오는 부패와 권력 남용 고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사민주의자들은 위헌 소송을 통한 해임으로 우파를 흔들 수 있다. 극우의 담론은 극복하기 힘든 심연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디오 빨갱이"인종주의가 약자를 특권층으로 선전하다

그렇다면 이 선거에서 패배한 이들은 누구인가? 권리를 지닌 집단으로서 가장 크게 패배한 이들은 선주민족들이다. 카스트는 선주민족 문제를 테러리즘 문제로만 보며 거기서 가장 중요한 표적이 되는 이들이 마푸체다. 2025년 카스트의 공약 중에 테러에 맞서겠다는 것, 농촌 지역 폭력의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겠다는 것이 있다. 그 희생자들은 대개 지주 계층 사람들이다. 선주민족 마푸체의 세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두 국가 및 그 두 국가의 시민 사회와 갈등에 찬 관계를 맺어왔다. 마푸체 영토는 침략당했고 토지와 자원을 빼앗겨 마푸체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구조적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직업에서도 인종 차별을 당했다. 마푸체인들은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최악의 노동 조건 속에서 일했다. 오랜 세월 쌓인 긴장 속에 폭력의 강도도 올라갔으나 그게 테러리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다국적 임업회사들의 사업과 유럽 혈통 식민자들 몇 명과 칠레인 소지주 몇 명의 농장 일을 방해하는 일 정도다.

그럼에도 칠레는 2000년부터 마푸체인들이 사회에 대해 하는 요구를 국가 차원에서 범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국내안보법(Ley de seguridad interior del Estado)과 대테러법(ley Antiterrorista)이 이용되었다. 마푸체인들 사이에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식민주의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집단으로서 빼앗긴 권리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사회 운동이 존재한다. 그 요구는 유엔과 미주기구의 선주민족 권리 선언, 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69호(선주민과 부족민에 관한 협약) 같은 국제 법령을 진흥하는 것부터 자치정부를 이뤄 자결권을 행사하게 해 달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여기서 알려야 할 것이 있다. 스페인 제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마푸체의 자유로운 영토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마푸체인들은 자치권을 누렸고 소와 그 관련 제품은 물론 직물까지 수출하여 그 생산물이 칠레와 그 너머 라틴아메리카 여러 지역에 도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19세기가 흘러가며 스페인 왕정에 맞서 생겨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모든 선주민족들을 국가 식민주의에 종속시켰다. 유럽 제국들은 다른 나라들을 점령하고 그 영토에서 자원을 착취하였다. 이른바 1세계의 부(富)는 이렇게 쌓였다. 라틴아메리카의 신생 공화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선주민족을 적대하는 인종주의를 더 강화하고 체계화했다. 라틴아메리카와 세계의 수많은 선주민족들이 이 국가들에 의해 분리되었다. 원주민 또는 "인디오"를 대상으로 한 식민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원주민 보호를 위한 국가 기구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기구들은 선주민족의 재산을 계속해서 빼앗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다.

20세기 말에는 식민주의 현상인 인종주의를 줄이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주의 법령과 국가의 폭력 사용은 여전했다. 칠레 선주민족 운동으로 식민성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다. 1993년 선주민족 법으로 선주민족 언어와 문화의 재활성화가 시도되었으며 선주민족 토지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게 되었고 땅과 물을 사기 위한 기금도 생겼다. 작게나마 거둔 성취였다. 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69번이 2008년에 칠레에서 비준되며 어떤 사업을 할 때는 선주민족에게 상담하는 절차가 도입되어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상담은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첫째 갈래는 정부가 선주민족을 상대로 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법과 규칙과 공공정책을 실행할 때 선주민족의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환경 문제에서도 선주민족 영토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계획은 먼저 선주민족 공동체의 상담을 받아야 했다. 실제 상담이 실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는 상담이라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상담자에게 결정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2019년에는 마푸체 공동체들이 상담 절차에 반대하며 여러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 상황 속에서 극보수주의자들은 선주민족, 특히 마푸체 민족을 국가의 적으로 인식하였다. 2021년에 첫 개헌 시도가 있었을 때 우파는 19세기부터 전해져 오는 인종주의를 재구성하여 마푸체 민족을 분리주의 위협으로 정의하였다. 20세기 동안도 이런 말을 하는 세력이 있었으나 그때 이들은 소수파였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칠레 정치의 한 부분에 합의가 생겼다. 그 합의는 국제법과 국제법을 대표하는 기구들을 국가 주권의 적으로 본다. 선주민족들이 칠레인들은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선전이 사용되었다. 국가와 국제 차원에서 선주민의 권리에 대한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뒤트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2021년 정책 프로그램에 담은 이가 바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였다. 국제법과 선주민은 위협이었다. 인종주의가 더 강렬한 힘으로 돌아왔다. 마푸체인은 테러리스트라는 생각은 2000년대에도 존재했다. 이제 그 생각이 널리 퍼져갔다. 다민족국가, 곧 각 민족이 집단으로서 누리는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에 대한 이상을 왜곡하여 칠레 민족과 국가를 조각내려는 일로 선전했다. 마푸체 운동에는 훨씬 더 큰 낙인이 찍혔고 이 운동의 목표에 대한 거짓 정보와 잘못된 인식이 뒤를 이었다. 이 목적으로 가짜뉴스, 증오를 담은 언어를 사용하여 맞서 싸워야 할 내부의 적을 만들어 냈다.

최근 들어 극우는 선주민족의 권리에 대한 공격을 훨씬 더 진전시켰다. 선주민족을 위한 모든 국내법과 국제법의 적용을 폐지할 것을 대놓고 주장했다. 거기다 단기적으로는 선주민족개발국(Corporación de Desarrollo Indígena)과 같은 선주민족 기구의 예산을 없애자고 했다. 이전 우파 정부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나 그때는 늘 티나지 않게 진행했던 일이다. "인디오 빨갱이(indio comunista)"라는 말이 혐오 표현으로 퍼지고 있다. 진보주의의 정당성을 부정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마푸체 영토를 지금보다 더 군사작전 지역화(Militarización)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거의 10년 전부터 마푸체 영토에는 예외 상황이 선포된 상태다. 그래서 선주민족 공동체 주변에는 군인들이 순찰을 다닌다. 테러리즘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카스트는 군사력을 동원해 선주민족 공동체들을 다루겠다고 했다. 모든 공동체가 테러리스트거나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같은 일반화이다. 확실한 것은 몇몇 공동체들만이 무력을 사용했고 그 무력 사용도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카스트의 주장은 마푸체 영토 안 법치주의를 무효화하자는 것이다. 칠레인, 나아가 마푸체 주민의 승인까지 받아 마음껏 억압을 자행하겠다는 것이다.

극우 담론이 약자마저 집어삼키다

여기서 역설은 극보수주의 사상이 선주민족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극보수주의가 선주민족들 자신들에게도 일부 존재하는 질서의 이념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현재 선주민족 공동체들은 보수성이 짙은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라우카니아, 즉 마푸체의 역사적 영토 소 인구의 3할에 지나지 않는다. 영토가 줄어들며 마푸체인들은 자기 땅을 떠나 대개 칠레 북부, 특히 수도인 산티아고로 이주했다. 그곳이 마푸체 인구 대부분이 사는 곳이다. 이산(離散) 상황이라 하겠다. 또한 최근 40년 동안 마푸체들이 이끌리고 있는 오순절교회 역시 보수주의 문화를 지녔다.

아라우카니아 인구 70%는 칠레인들과 유럽에서 이주한 식민 정착민들의 후손이다. 이 사람들 역시 삶을 극보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칠레 식민주의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카스트는 대통령 선거 운동 막판에 아라우카니아를 순회했다. 수 세기 전에는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펼쳐져 있던 마푸체 영토의 일부였던 곳이자 현재의 칠레 식민주의 요람이 된 곳이다. 이제 앞으로 일어날 일은 식민주의 체제의 심화이자 마푸체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땅을 빼앗는 일이다. 선주민족이 집단으로서 지닌 모든 권리를 금지하고 이들을 가난에 빠뜨리고 사회와 정치면에서 선주민족을 완전히 분열시키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 큰 패배자는 일반 칠레인들이다. 동성애혐오, 가난한 자에 대한 혐오, 외국인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분위기가 여성, 동성애자, 여러 다른 성정체성을 지닌 이들, 가장 가난한 자들, 이민자들에 대한 학대로 이어질 것이다. 칠레는 관용이 없는 국가가 될 것이다. 수많은 법이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폭력이 언어를 넘어 신체 단계로 넘어가고 사회 내에서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실행될 가능성이 있다. 카스트가 가져오리라던 그 자유는 이렇게 무자비, 폭력, 종속의 새 사회로 가는 입구가 될 것이다. 결국 칠레는 실현되지 않은 약속, 착취와 빚에 짓눌린 삶에 대한 고뇌, 착함과 사람다움의 모든 흔적의 상실로 좌절한 세상이 될 것이다. 현재의 칠레를 갉아먹고 있는 사회 불안을 달래기 위한 일이라고는 마녀 사냥 밖에 생각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카스트의 당선은 그냥 비극이 아니다. 카스트는 통치력이 매우 약하다. 하지만 평화를 진흥하는 공존의 세계를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문화 속 악마들의 잠은 깨우고 있다. 이쯤에서 마지막으로 할 질문은 이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가 경험한 모든 자유를 제거하는 독재의 참상 속이라고 치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나라가 극보수주의가 자유이자 평화라고 할 것인가? (끝)

▲전통의상을 입은 마푸체족. 위키미디어(커먼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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