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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개발이 '조건 맞춰 지으라'면 대만은 '웬만하면 그냥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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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의 재개발이 '조건 맞춰 지으라'면 대만은 '웬만하면 그냥 살아라'

[이웃 나라 타이완] 허름하거나 고풍스럽거나 - 대만의 주거 문화

대만을 처음 방문한 한국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있다. 중국보다는 일본 느낌이 많이 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도시가 낡은 느낌이다. 그 느낌이 그리 틀리지 않다는 것을 대만에 살면서 확인하고 있다. 대만은 한국보다 거리가 깨끗하고 조용하다. 체감할 수 있는 시민들의 질서 의식도 살짝 더 높다. 정량화해서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일본, 대만, 한국, 중국 순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런 것들은 역사적으로 산업화의 순서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낡아 보이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실제로 오래된 건물이 많다. 또 기후적인 요인으로 이끼나 곰팡이가 쉽게 생긴다. 오래된 건물 외벽을 마감한 타일 사이사이에 때가 찌들어 있는 좁은 골목들. 창문을 둘러싼 방범창과 옥상 위로 보이는 가건물도 오래된 도시 느낌을 준다. 오래된 건물들이지만 대만 집값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리보다 낮은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이웃끼리 정을 느낄 수 있는 대만의 주거 문화를 살펴보자.

대만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는 '공위(公寓, 공동주택)'다. 한국식에서 연립주택이나 빌라라고 부르는 주거 형태와 비슷하다. 공위는 대체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나 5층이다. 공동현관을 기준으로 양쪽에 집이 있으니 대략 여덟에서 열 개 세대가 산다. 1층 세대는 따로 출입구를 만든 경우가 많고, 상권이 형성된 곳에서는 점포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만에선 디지털 도어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공위는 관리실도 없다. 그래서 택배나 우편물이 오면 누군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공동현관문을 열어줘야 한다. 집에 사람이 없어도 현관문 앞에서 택배를 받을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릴 수 없다. 대만의 높은 치안 수준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대만 전체 가구의 절반 가까이가 이런 형태의 공위에서 산다. 다만 대도시를 기준으로 보면 공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공위 다음으로 많은 '터우티엔춰(透天厝)'는 단독주택 개념인데, 주로 중남부의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위는 오래된 건물이다. 내가 살아본 공위는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뼈대는 튼튼하지만, 방음이나 단열 상태는 썩 좋지 않다. 오래된 수도 배관이나 전기 배선도 좀 걱정스럽다. 가뜩이나 비가 많고 습한 기후라 가끔 누수도 있다. 환기를 잘하고 세심하게 신경쓰지 않으면 곰팡이 피해가 생긴다. 같은 건물이지만 내부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배관, 배선, 창문 등을 모두 손보고 주방과 욕실도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집이 있는가 하면, 열악한 상태인 집도 있다. 같은 위치라도 내부 상태에 따라 임대료 차이가 크다. 집집마다 발코니가 있어서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넌다. 이 발코니에는 거창하게 방범창을 두른 경우가 많다. 대만에 놀러 온 친구가 함께 거리를 걷다가 “대만에 도둑이 많냐?”고 물은 적이 있다. 방범 목적도 있지만, 태풍으로 물건을 날아다니는 것을 막는 등의 용도도 있다. 연중 따뜻한 기후라 발코니에 각양각색의 화분을 꾸며둔 집들이 많다. 여하튼 이런 철창들 때문에 대만 거리가 더 고풍스럽게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 대만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공위(公寓)'의 모습. 오래된 건물, 철창을 두른 발코니, 초록초록한 화분들이 고풍스럽거나 조금은 낡은 느낌을 준다. ⓒ필자

대만 집에는 기본적으로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다. 단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내부 리모델링이 오래된 집은 찬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새로 고친 집은 이중창으로 마감해서 단열이나 방음이 훨씬 잘 되지만, 한겨울 추위가 매서운 한국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얼마 전에 대만에 강추위(?)가 닥쳐서 최저기온이 영상 10도까지 떨어진 날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넘어갔을 텐데 아기가 자는 방이 걱정돼서 새벽에 온도계를 살펴봤다. 아기방의 최저온도는 영상 19도를 살짝 넘었다. 이러다 보니 작정하고 단열과 난방에 신경쓰기엔 좀 애매하다. 공위의 5층은 4층 위에 증축을 한 경우가 많다. 5층은 대부분 4층 집주인 소유여서 복층으로 사용하거나 따로 세를 주기도 한다. 한국의 옥탑방 식으로 가건물만 지어놓고 세를 주는 경우도 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으니 가건물 옆으로 세운 지붕 아래 냉장고과 싱크대, 세탁기를 놓고 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낡은 도시 느낌을 준다.

대도시에 공위가 많이 지어진 이유는 대만의 건축제도 때문이다. 6층을 넘기면 엘리베이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소방 등 건축 법규도 훨씬 더 까다롭게 적용된다. 주택 수요가 폭발하던 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도시에서는 좁은 땅에 최대한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공위들이 지어졌다. 그것들이 여전히 내부를 수리해가면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은 한국에 비해 어렵다. 우리나라에도 재개발, 재건축에 대한 규제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건을 맞춰서 새로 지으라'는 취지가 강하다. 이에 비해 대만은 '웬만하면 그냥 살아라.'라는 취지에 가깝다.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주민 동의를 얻어야 하고, 세금 문제도 있다. 대만은 자가에 거주하는 비중이 8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높다. 또, 건물의 외관보다는 내부 실용성을 중시하는 문화도 있어서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하지 않다. 50년 넘은 공위도 타이베이 시내 좋은 위치에 있으면 수십억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처럼 낡은 건물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내부는 잘 고쳐진 고급주택인 경우다.

대만에서 집을 구하는 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 앱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보고 집주인이나 부동산중개사에게 연락한다. 한국처럼 교통이나 교육환경을 중요하게 본다. 편의점이나 마트, 전통시장이나 공원 같은 주거 환경도 중요하다.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이 가깝고, 대형 슈퍼마켓이나 전통시장이 멀지 않으면 좋은 입지다. 아무래도 지하철역이 가까우면 편의점, 슈퍼마켓, 식당 같은 상권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에어컨은 방마다 기본으로 설치돼 있다. 침대, 소파, 주방, 식탁, 옷장, 냉장고, 세탁기 등을 갖춘 경우도 많다. 벽은 페인트로 마감돼 있고, 바닥을 타일이 기본이다. 월세로 집을 빌리면 두 달 치 월세를 집주인에게 '야징(押金, 보증금)'으로 낸다. 집을 잘 쓰고 파손된 부분을 수리해서 반납하는 경우엔 전부 돌려받지만, 자잘한 파손이 있거나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않는 경우 집주인과 협의하여 야징의 일부만 돌려받기도 한다.

타이베이는 집값이 비싸다. 게다가 보증금이 없다 보니 월세는 타이베이에 제법 괜찮은 직장을 구해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부모님 집에 살고 있거나 부모님이 집을 구해줄 상황이 아니라면, 급여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내야 한다. 한국보다 결혼율, 출산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다. 결혼해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경우도 있고,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한 사람 월급 대부분을 월세로 내기도 많다. 빠듯한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다양한 출산, 육아 지원 정책을 펼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주거비용이 높다 보니 결혼하지 않은 개인이나 커플들이 선택하는 주거방식이 '쉐어하우스(Share house)'다. 한 집의 거실과 주방, 화장실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주거 형태다. 예를 들어 방 세 개짜리 공위가 있다고 치자. 위치는 좋은데 4층이라 나이 많은 집주인이 거주하긴 불편하고 공간도 너무 넓다. 이런 공위를 임대해서 리모델링을 한다. 넓은 거실에 칸막이를 쳐서 방을 늘리기도 하고, 방마다 이층침대와 간단한 책상을 둔다. 이렇게 고친 집에 열 명 정도의 입주자들이 함께 살면 일인당 월세 비용이 확 줄어든다. 주방과 화장실 등을 공유하지만 최소한의 개인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대도시 특히 대학가나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역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고시원과 흡사한 주거 문화라 볼 수 있겠다.

공위라는 일반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주거로는 '화샤(華廈)'나 '따루(大樓)'가 있다. 화샤와 따루의 공통점은 고층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점, 그리고 관리실이 있어서 쓰레기와 재활용품 수거를 대신해주고 택배도 대신 받아준다는 점이다. 화샤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고급 주상복합 형태다. 단독 건물인 경우가 더 많지만 가끔은 몇 개 동으로 이뤄진 복합단지도 있다. 대체로 새로 지어진 건물이고, 저층에는 상가가 지하에는 주차장을 갖춘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커뮤니티센터에 체육시설, 문화시설을 갖춰 입주자에게 제공한다. 따루는 우리말로 빌딩이다. 빌딩에는 사무실이 많지만 주거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바닥 난방이 없기 때문에 화장실과 주방을 어떻게 인테리어 하느냐에 따라 주거로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월세 외에 관리비를 내야 하긴 하지만 대만의 독특한 쓰레기 수거 제도 때문에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24시간 내놓을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다.

▲ 대만의 고급 주상복합 '화샤(華廈)'이 전형적인 모습. 1층 외부에 공동 정원이 있고, 내부 로비엔 공동 거실이 있어서 학생들이 과외수업을 받거나 주민들이 손님을 맞기도 한다. ⓒ필자

대만에서는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야 한다. 거기에 플라스틱, 종이, 비닐, 유리 등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것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대만에서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내놓지 않는다. 대신 일정한 시간에 지나가는 쓰레기차에 직접 실어야 한다. 이사 가면 먼저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지나가는 쓰레기차 운행 일정을 확인한다. 쓰레기차가 지나갈 때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음악을 크게 틀어서 알린다. 이에 맞춰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들고 나가는 것은 공위에 사는 대부분 시민들에게 중요한 일상이다. 시간을 맞춰 나간다는 게 번거로운 일이긴 하다. 대신에 거리가 훨씬 더 깨끗하다. 대만이 연중 덥고 습한 기후라는 것을 생각하면 잘 만들어진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규격에 맞지 않거나 잘못 분류된 재활용품은 쓰레기차와 재활용차에 탑승한 담당자에게 즉각 거절당하는 것도 장점이고, 일주일에 몇 번이지만 이웃 사람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 쓰레기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 나온 타이베이 시민들. 대체로 쓰레기 차량과 재활용 수거 차량이 짝을 지어 정해진 경로로 함께 다닌다. 음악 소리가 가끔 귀에 거슬릴 때도 있지만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시스템이다. ⓒ필자

우리 가족은 작년에 지금 살고 있는 공위로 이사했다. 바로 근처이긴 하지만 어린이집에 가깝고, 2층이라 아이를 데리고 오르내리는 것도 수월하다. 한 골목에 있는 열댓 개의 공위에서 관리인을 한 명 고용했다. 덕분에 공동현관 입구에 있는 통에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언제든 내놓을 수 있다. 비 오는 날 아이를 보다가 갑자기 들리는 음악 소리에 뛰어나갈 필요가 없어서 좋다. 아이가 뛰어놀아서 아랫집 이웃이 몇 번 올라오긴 했지만,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집을 나서다가 이웃들을 만나면, 아이가 귀엽다고 웃으며 인사해주는 이웃들이 정겹다. 이웃끼리 서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가끔 음식을 나누기도 하는 걸 보면 오래전 한국 어느 동네의 골목길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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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글쓰는 일을 하며 대전, 무주, 광양, 제주 등 전국을 떠돌았다. 제주도에서 바람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6년 첫 타이완 여행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2024년부터 타이완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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