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무력 점령 배제 및 유럽 관세 위협 철회를 밝히고 "협상틀"이 마련됐다고 공표하며 관련 긴장이 크게 완화됐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린란드 주권 이전이 포함돼 있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돌연한 태도 변화 배경엔 강경책에 반대한 핵심 참모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유럽은 반색하면서도 섣부른 희망은 금물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이하 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그린란드 획득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과도한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결정하지 않는 한 우린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아무도 우릴 막을 수 없을 거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겠다"며 "난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무력 사용을 원하지 않는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전날까지 군사 개입 선택지를 명시적으로 배제하지 않은 것에서 물러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회담 뒤 그린란드 파병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 계획도 철회했다. 그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뤼터 사무총장과의 회담이 "매우 생산적"이었고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 전체에 대한 미래 협상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합의에 기반해 2월1일부터 발효 예정이었던 (유럽 8개국)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소유권 주장도 완화…나토 사무총장 "주권 이전 논의 없었다"
그린란드 소유권 주장도 완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보스포럼 연설에선 미국의 그린란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거길 방어하려면 소유권이 필요하다. 임대로는 방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이에 찬성하면 "감사"할 것이지만 반대하면 "기억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미국이 돕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독일어와 약간의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며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승리에 대한 미국의 공헌을 강조하고 유럽을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선 그린란드 소유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 대한 새 협상틀에 미국의 그린란드 소유권이 포함돼 있냐는 CNN 질문을 받고 "이는 장기적 합의"고 "안보, 광물 등 모든 면에서 모두에게 매우 좋은 상황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만 했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합의틀에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의 주권 존중 원칙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뤼터 사무총장의 제안에 대해 잘 아는 두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제안엔 그린란드 주권을 덴마크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넘기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고 전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21일 미 폭스뉴스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그린란드가 덴마크에 남을지 여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합의틀, 골든돔·광물권 등 안보·경제에 초점 맞춘 듯
그린란드 합의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합의틀에 따라 유럽 동맹국들이 "골든돔(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어 체계) 및 광물권에 참여할 예정"이고 이 합의는 "영원히" 지속된다고 밝혔다.
독일 도이체벨레(DW)를 보면 앨리슨 하트 나토 대변인은 뤼터 사무총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생산적" 회담을 가졌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틀"에 관해 나토 동맹국들이 "북극 안보 보장에 초점"을 맞춰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덴마크, 그린란드, 미국 간 협상은 러시아와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그린란드에 발판 마련을 못하도록 보장하는 걸 목표로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의틀과 관련해 미 매체 <악시오스>는 뤼터 사무총장 제안에 미국이 그린란드에 군사 기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한 미국과 덴마크 간 1951년 그린란드방위협정 개정, 트럼프 정부가 구상 중인 미사일 방어 체계 '골든돔'의 그린란드 배치,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대응, 그린란드 안보 강화 및 북극 지역에서 나토 활동 강화, 자원 협력 등이 포함돼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당국자들을 인용해 미국이 그린란드 광물 자원 투자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갖는 것도 주요 내용 중 하나라고 전했다. 러시아와 중국보다 자원을 선점하겠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나토 관계자들이 그린란드 일부 지역에 미국이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해당 지역 주권을 갖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사안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키프로스에 있는 영국 군사기지와 유사한 구상이라는 설명이다. 키프로스는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일부 군사기지는 영국령으로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합의틀에 이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돌연 마음 바꾼 트럼프, 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완화엔 참모진 반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21일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소식통 2명을 인용해 대통령의 몇몇 핵심 참모들이 군사력을 사용해 덴마크 영토를 점령하는 일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부 참모들이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덴마크와의 협상 타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우려를 사적으로 품어 왔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최근 행정부 당국자들은 그린란드 광물과 군사 기지 부지 확보 방안에 대한 타협안을 모색해 왔다. 그린란드 위협이 고조되며 주가가 급락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외부 측근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유럽 정상들이 강한 반발과 더불어 끊임 없이 트럼프 대통령에 접촉을 시도한 것도 상황 완화 요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면 21일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은 "오늘 하루는 시작보다 훨씬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리아 말메르 스테네르가드 스웨덴 외무장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세 위협 철회를 환영하고 "동맹과 함께 협력한 것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이번 완화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그린란드 및 유럽에 대한 공격적 수사는 유럽과 미국 간 "심각한 파열"을 명확히 보여줬고 상황이 "치유되려면 멀었다"고 지적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1일 "국제 질서 변화가 엄청날 뿐 아니라 영구적임이 확인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이체벨레를 보면 라르스 클링바일 독일 재무장관은 섣부른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독일 ZDF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나토가 대화에 나선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우린 좀 더 기다려야 하고 너무 이른 희망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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