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을 국가 비전으로 공식화하며 이를 차세대 경제성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이 구상은 대선 과정에서 이미 공약 1호로 제시되었고 100조 원 규모의 재정 투입 계획도 함께였다.
집권 이후 정부는 반도체, 데이터센터, 초거대 AI 모델, AI 인재 양성 등을 중심으로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2026년도 예산안에는 AI 관련 항목에만 약 10조 원이 반영됐다. 전임 정부 말기부터 AI가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핵심 영역으로 부상했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서면서 AI 강국 프로젝트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더욱 명시적이고 공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AI 강국 지향에서 빠져 있는 근본 질문
이 정책의 기본 구조는 비교적 명확하다. 첫째, 첨단 AI 인프라와 핵심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 둘째,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조성. 셋째, 대학을 통한 AI·첨단산업 인력의 집중 양성. 넷째, '모든 국민을 위한 AI 교육'을 통해 AI 활용을 일상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실용주의적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첨단산업 육성이 국가의 생존 전략이라는 논리 역시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처럼 AI 강국을 향한 정책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함께 제기되어야 할 근본문제가 뒤로 밀려나 있다. 그것은 "AI 강국이 실현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라는 물음이다. AI가 국민의 일상과 행정, 노동, 교육, 국방에까지 깊숙이 스며든 사회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인가. 그 사회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기계와 알고리즘이 인간을 관리·감시하는 디스토피아일까. 이 질문은 기술 발전에 대한 철학적 사변만이 아니라 이제 현실 정치가 답해야 할 정책적 과제가 되고 있다.
기술공학의 발전과 인간성의 대립이라는 문제는 근대 이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과 판단을 대체하거나 모방하는 AI 기술은 이전의 기술들과 질적으로 다른 충격과 전환을 내포하고 있다. AI는 단순한 생산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권력 배분 방식 자체를 재편할 가능성을 지닌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AI 강국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한다는 것은 경제 성장 전략을 넘어선다. 우리 사회의 존속 방식과 민주주의의 조건,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함께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국가 정책,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AI 강국 프로젝트는 마치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것처럼 속도와 성과에 집중되어 있을 뿐, 그 호랑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충분히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비유가 적절한 이유는 분명하다. AI라는 첨단기술은 막대한 효율과 경쟁력을 제공하지만, 일단 국가 전략으로 채택되는 순간 그 방향을 되돌리거나 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AI 강국이라는 목표가 추구될수록 행정, 노동, 교육, 복지, 국방 등 사회 전 영역은 그 논리에 맞추어 재편될 것이며, 기술 발전의 속도는 민주적 통제력의 작동을 앞지를 가능성이 크다.
AI 강국 전략의 성공에 비례하여 오히려 근본문제는 더 선명하게 부각할 것이 예상된다. AI가 사회 운영의 핵심 인프라가 되는 상황에서는 알고리즘에 의한 감시와 통제, 노동시장의 양극화, 데이터 접근 권력의 집중, 인간 판단의 주변화 같은 문제가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니라 이미 지금도 그 전조가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는 현상이다. AI 강국의 유토피아적 약속 뒤에는 언제든 디스토피아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는 것이다.
기술을 파괴하자는 러다이트주의(Luddism)가 유효하지 않다면 길은 하나다. AI 시대를 지향하는 동시에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AI 리터러시'다. 그러나 현재 정책 담론에서 말하는 AI 리터러시는 대체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진정한 AI 리터러시는 최소한 세 가지 차원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 둘째,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와 편향을 이해하는 시스템적 인식. 셋째, AI가 사회와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민적·윤리적 역량이다. 지금 정부가 강조하는 '모든 국민을 위한 AI 교육'은 주로 첫 번째 차원에 집중되어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차원에 대한 언질이 없지는 않지만, 교육정책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다.
AI 시대, 대학의 기능과 인문학의 의미
이 지점에서 대학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대학은 단순히 전문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라, 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성을 길러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정책은 이 역할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방향을 취해 왔다. 첨단산업과 연계된 학과 신설과 정원 증원에는 재정지원이 집중되는 반면, 인문사회과학과 기초학문은 구조조정과 통폐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학 재정지원사업과 평가 기준은 산업 연계성과 취업 지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교양교육이나 시민적 소양을 평가하는 지표는 사실상 부재하다. 인문학은 '융합'이라는 이름 아래 공학을 보조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달리 '모든 국민을 위한 AI', '격차를 줄이는 기술', '공정과 윤리' 같은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교육부 역시 민주시민 교육과 인문교육 강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적 변화가 정책 구조 자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예산의 배분 구조, 대학정책의 기본 틀, 산업 중심의 성장전략은 큰 틀에서 전임 정부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다. 인문교육과 시민적 통제 역량을 키우는 대학의 역할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형식적이거나 미약하다.
AI의 등장은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혁명적 변화다. 이 변화 앞에서 국가의 책무는 가속 페달만 밟는 것이 아니라 제동장치와 방향타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칸트가 말한 대학의 근본 기능, 즉 전문지식의 생산과 아울러 그 지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이성의 기능이 동시에 회복되어야 할 시점이다. AI 강국은 인문 강국, 시민 강국의 전망과 결합할 때만 진정으로 구현된다. 달리는 호랑이를 멈출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그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지혜와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한다면, AI 강국의 꿈은 기술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가 성장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한 국가의 대도약을 시작하는 원년이 될 것임을 선포했다. 이 대전환은 AI 3대 강국이라는 국가목표에도 적용돼야 한다. AI 시대의 영광만이 아니라 그 위험까지 제어할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교육 및 대학정책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인문적 인식은 AI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필수요건, 인간과 사회의 생존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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