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상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바친 큰 별이 졌다.
1972년 10월 유신 당시 서울대생 신분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애도하는 동지들의 목소리가 한 곳으로 모였다.
민청학련동지회(상임대표 강창일, 공동대표 최철, 임상우)는 26일 추도사를 통해 "이해찬 동지의 영면"을 기원했다.
고(故) 이 전 총리는 지난 25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이다.
고인은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고향 청양을 떠나 학생 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1년을 복역한 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2년 6개월 간 수감생활을 하다 풀려났다. 1987년 6월 항쟁을 진두지휘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상황실장을 맡아 직선제 개헌 쟁취에 기여했다.
[추도사 전문]
"이해찬 동지, 이제 편히 쉬시오"
민청학련동지회 회원 일동은 베트남에서 들려온 이해찬 동지의 비보를 듣고 무엇이라고 할 말도 나오지 않는 황망한 심정에 빠졌습니다. 이동지는 사실상 공무 수행 중에 과로사한 것입니다. 동지를 지치지 않고 꺾이지 않는 불사조라고 믿고 있었던 우리의 타성을 통렬하게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동지는 언제나 부지런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몸 사리지 않고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내는 선봉장이었습니다.
1974년 4월 3일, 이미 사복 경찰이 서울대 문리대 교정을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단신으로 선언문을 살포하며 유신 타도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던 동지의 자기희생적 실천을 민청학련 동지회 회원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1975년 2월 15일에 석방된 다음에도 동지는 밤낮 없는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감시에도 위축되지 않고 번역, 서점, 출판 등의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여 유신정권 붕괴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동지 본인은 1980년 5월에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광주항쟁과 관련된 내란 혐의로 다시 구속됐습니다. 1982년 연말에 석방된 동지는 청년 민주인사들과 같이 민통련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1987년 6월의 시민항쟁을 이끌어 내고 군부 정권을 퇴진시키는 과업을 선도했습니다.
정치를 통한 민주화의 길을 선택한 동지는 현재까지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난제를 피하지 않고 해법을 찾아내는 지사적 정치인의 전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현실 정치의 기준으로 보아도 동지는 당대의 죄고의 책사이자, 탁월하고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습니다.
특히 7선 의원, 국무총리, 교육부장관, 서울시 부시장, 민주평통 부의장 등의 요직을 지내며 동지는 청렴하고 능력 있는 공직자의 상을 제시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윤리의식과 실행 능력을 갖추고 민주화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전념한 동지의 삶은 그 자체가 민주화운동사이며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민청학련동지회는 1972년 10월 17일, 유신이 선포된 이래 지금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심신을 바쳐 조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동지에게 "이제 편히 쉬시오"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남은 동지들과 후진을 믿고 진짜 평안하게 휴식하시기 바랍니다.
2026년 1월 26일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강창일
공동대표 최철, 임상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