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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상사가 싫은 자들을 위한 피가 튀는 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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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상사가 싫은 자들을 위한 피가 튀는 광시곡

[이동윤의 무비언박싱] <직장상사 길들이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직장상사 길들이기>!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먼저 딴지 걸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던 건 '과연 직장상사가 길들여질 수 있는 대상인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사上司'의 단어 뜻에 담겨있는 계급의 상하 관계는 그리 쉽게 해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 상사를 길들이려 하고, 그 직분의 위계를 넘어서려 한다면 그것은 해당 인물에 대한 도전을 넘어서서 조직, 더 나아가 시스템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격언이 부패한 절을 개혁하려는 승려의 혼잣말에서 유래했음을 짚어본다면 부조리한 환경을 개선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농으로 던진 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겠다. 진지충이라는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시대에 농담을 농담으로 받는 것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처세일지 모르겠으나 한 번쯤 부조리한 조직과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바꾸지 못하면 탈출이라도 하고 싶다 상상해본 자들에게 이 제목은 지극히 자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필자가 '직장상사를 길들인다'는 생각에 담긴 유머를 가볍게 넘기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샘 레이미 감독은 이런 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듯 사회적 통념을 가볍게 웃어 넘긴다. 만약 직장상사를 길들일 수 없다면 판을 바꿔서라도 한 번쯤 길들여볼 순 없을까? 감독은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고층 건물에 위치한 사무실이라는 정글을 외딴 무인도의 실재적 정글로 뒤집는다. 그리고 업무 능력은 뛰어나지만 사교성은 제로인 린다(레이첼 맥아담스)를 앞세워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사교성과 야생에서의 생존 능력을 대비시킨다. 현실 사회를 일종의 정글로 비유해왔던 메타포를 실재적 사태로 치환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관객이 목도할 수 있는 것은 관계의 전복, 권력의 이양이다. 판이 바뀐 사태 속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처세술과 사교성이 아닌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존 기술 뿐이다.

▲생존한 린다가 브래들리를 살리려 노력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돌이켜보면 샘 레이미의 어법은 이미 디스토피아 영화들 속에서 수없이 반복된 것들이다. 기후 위기와 외계인의 침략으로 지구가 멸망하고, 또는 좀비의 출현으로 온 인류가 소멸된 이후, 살아 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과연 생존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워킹 데드> 시리즈(2010~2021)는 이 질문의 대한 대답으로 생존을 위해 동물보다 더 잔혹해질 수 있는 인간의 폭력성을 전면화했다. <미스트>(2008)는 패닉 상태의 인간 정신에 파시즘적 종교가 어떻게 집단을 폭력화하는지 폭로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는 인간성을 가늠할 수 있는 도덕적 기준이 파국 이후 어떻게 몰락할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냈으며, <28일 후> 시리즈(2003~2026)는 파괴된 문명이 원시 사회로 환원되는 과정을 문명과 비문명의 대립이란 구도 속에서 흥미롭게 질문했다. 이 작품들이 보다 진지한 자세로 파국 이후의 삶을 성찰하려 했다면 샘 레이미는 좀 더 가벼운 태도로 파국을 유희한다. 이를 위해 공포 영화의 하부 장르인 '고어gore'를 전면에 내세우며 파국이 만들어내는 고통과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샘 레이미의 고어 어법은 '공포'와 '유머'라는 두 개의 극단적 정동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현대 사회가 숭고히 여기는 가치들을 전복한다. 신체가 절단되고 유혈이 낭자하는 상황을 지극히 사실주의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극단적 과잉된 이미지로 제시했을 때 관객은 비극을 희극으로 유희할 수 있다. 비극이 사태를 진지하게, 이성적 비판의 자세로 들여다 보는 렌즈라면 희극은 도덕적 비판과 판단을 잠시 유보한 채 인간의 세속적 충동과 욕구들을 가감없이 들여다 보는 렌즈다. 고어 장르가 활용하는 더럽고, 하찮고, 역겨우며, 혐오스러운 이미지들은 이성이 지배하는 체제의 시스템을 전복시키며 관객들이, 체제가 숭고히 여기는 가치들을 하찮은 것들로 치부해버린다. 신체가 절단되는 순간 흩뿌려지는 유혈과 구토, 배설물이 화면 가득 낭자할 때 관객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비명을 지르며 웃어 넘기는 일 뿐이다. 이 순간의 웃음은 체제의 아우라가 해체되는 순간 발생하는 쾌감과 연결된다. 비행기 사고로 죽어가는 동료들의 희화화된 신체들, 정글에서 인간을 공격해오는 맷돼지의 과잉된 폭력성, 생존을 위해 서로의 신체를 훼손하는 두 주인공의 결투에서 유발되는 비명과 웃음은 사무실이 정글로 바뀐 상황 속에서 계급이 해체되고 힘의 주체가 전복되는 순간을 목도하는 관객들이 내뱉을 수 있는 최후 반응이다. 그토록 바라던 직장상사의 권력 위에 오르는 통쾌함이 그 모든 자극적 장치들을 지배함으로서 귀결된 정서적 반응인 셈이다.

▲도움을 거절하는 브래들리를 관찰하는 린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과잉을 통한 전복의 극적 장치들 중에서 단연 으뜸은 감독이 전면에 내세운 린다 캐릭터다. 체제 내부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업무 능력은 야생에서의 생존 기술로 대치되고, 비판받던 그녀의 비사교성은 자연에 대한 오타쿠적 지식으로 치환되어 무인도 생존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변화된다. 감독은 이 모든 기괴함을 나르시스적 자아로 해석한다. 섬을 처음 만난 순간 대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사무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쾌감을 누리던 그녀가 물에 비친 얼굴을 보며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우리는 화면 너머로 그녀의 광기를 발견한다. 구조 신호를 무시하고 무인도가 월가의 대부호 소유임을 은폐하면서까지 이 섬에 남으려 했던 린다의 욕망은 체제로부터 외면당한 자의 폭주이며 차별과 외면, 고립과 고독의 영역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려는 본능적 선택이다. 감독은 린다의 극단성을 위해서 그녀의 성적 욕망까지 거세한다. 여기엔 <블루라군>(1980)이 신화화한 대자연에 표류한 두 젊은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러브스토리가 담보 삼는 젠더 권력의 구조를 해체하며 린다와 브래들리(딜런 오브라이언)를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아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표상하는 것이야 말로 감독의 유일한 관심사다.

▲브래들리를 위협하는 린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성적 욕망이 거세된 나르시스트 린다의 뻔뻔함과 톰보이적 면모는 체제 전복을 위해 감독이 심어 놓은 핵심 도구다. 직장상사를 길들이기 위해서 이 정도의 과잉은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 감독의 셈법이다. 이러한 감독의 태도는 누군가에게 비판의 지점일 수 있겠고 또 누군가에겐 통쾌한 해방감을 선사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마지막 린다의 성공신화를 도덕적으로 문제없이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수도 있다. 감독은 일말의 의심을 장르적 허용의 범위 안에서 충분히 유희할 수 있도록 풀어 놓으며 말한다. 어차피 이 체제가 존재의 구원에 일절 관심이 없다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노동력으로 존재들을 소모시키는 체제 속에서 내가 나를 구원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이미 이 체제는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 나의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시스템 아닌가? 인플루언서로 등극한 린다의 화려한 삶의 이미지들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직장상사를 길들이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불가능한 일인지 깨닫는다. 깨달음 끝에 얻는 씁쓸한 감각이야 말로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감각이다. 절대적으로 쉽지 않은, 불가능에 가까운 계급적 전복일 수 있겠으나 영화를 통해서라도 대리 만족해본 소감은 어떤가? 어쩌면 영화의 역할은 여기까지 일지 모른다. 그 이후의 삶은 관객 각자의 몫일 테니까. 샘 레이미 감독이 얄밉도록 좋아지는 대목이다.

▲<직장상사 길들이기> 메인포스터. ⓒ월트디즈니코리아

이동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 연출, 시나리오,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2007), <오이시맨>(2008)의 시나리오를 집필 했으며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춘천SF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 했다. 2019년부터 4년 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함께 ‘한국퀴어영화사’ 연작 시리즈를 책임 편집 했으며 『A Collection of Korean Queer Cinema』(2023)를 집필하여 영문으로 출간했다. 현재 영화 평론, 시나리오, 영화 연출 등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와 창작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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