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세종호텔에서 복직 농성을 벌이던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과 그와 연대하던 시민들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신청됐다가 기각됐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세종호텔은 코로나19 유행 당시 경영난을 이유로 들면서 노조 조합원들을 해고한 바 있었고, 고 지부장은 지난해부터 336일간 10m 높이 구조물에서 고공농성을 이어오다 지상으로 내려와 농성을 지속하던 중이었다. 이번 연행은 노조 파괴 논란이 지속돼 온 사안에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를 드러냈다. 국가는 사측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을 끌어냈다.
안도감을 주는 소식도 있었다. 지난해 말 해고 당한 한국GM 하청노동자 120명이 고용승계에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 한국GM이 하청업체를 바꾸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20년 간 하청업체를 바꿔도 고용승계가 이뤄지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노조를 만든 이들에게는 예외였다. 고단한 투쟁 끝에 하청노동자들이 한국GM과 고용승계 합의에 이른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은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의 교섭을 가능하게 하는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우회하는 방식이 여전히 가능함을 보여줬다.
언급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 불리한 구조 속에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점점 더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있다. 소수의 자본가와 엘리트가 주도하는 AI 기술 담론 속에서 그 기술이 만들어낸 이익은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는 반면, 그로 인한 충격과 비용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제조업처럼 자동화의 영향을 받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법률과 회계 등 전문직을 포함한 광범위한 노동 영역에서 일자리 구조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사회 전체 일자리의 총량은 유지된다 하더라도, 개별 노동자들은 새로 생기는 일자리와 시간적·공간적 불일치로 고통을 겪게 된다. 게다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둔다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조건은 이전보다 더 낫기는커녕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결과 역시 노동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관세 협상 결과로 미국 현지 공장 건설과 대규모 투자가 추진될 경우, 한국 내 고용과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부담은 결국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는 수출 대기업의 매출 감소를 막는 것은 국가적 과제로 설정되는 반면, 노동자들의 희생과 고통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강요된 협상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관세 문제를 한국의 흥망성쇠가 달린 사안처럼 과도하게 해석하고, 대기업의 이해가 무의식적으로 과잉 반영된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은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 가능성을 언급하며 창업 중심 사회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기업 총수들에게는 청년 채용과 지방 투자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미래를 당연시하고 개인에게 각자도생식 창업을 주문할 것이 아니라, AI 활용이 자본의 이윤과 효율성뿐 아니라 노동자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또한 사후 확인조차 불분명한 기업의 채용 약속에 기대기보다 실제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정책과 규제를 통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처럼 변화가 빠르고 노동하는 다수의 삶이 불안정해질수록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노동자 스스로 발언하고 현재의 비대칭적 권력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위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경제라는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다. 대통령 역시 임금 차별 해법을 언급하며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위치를 고려할 때 이 발언이 공허하고 책임 회피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노동사회권력은 경제권력과 직접 맞서거나 타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권력을 통하여 정책과 규제로 구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행위자인 국가권력을 쏙 빼놓은 채 노동과 자본 사이의 문제로만 환원해 버리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면 책임 전가와 다름없다.
그의 말이 공허한 또 다른 이유는 최근 국가권력이 보여온 행태 때문이다. 세종호텔 사례에서 보듯 국가는 사측의 노조 파괴 공작에는 소극적이면서 이에 맞서는 노동자들에게는 공권력을 앞세워 대응했다. 정권이 바뀐 후에야 통과시킬 수 있었던 노란봉투법은 교섭창구 단일화로 인해 하청노조가 원청과 실질적 교섭 테이블에 앉는 일은 여전히 힘든 일이 되었다.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 시행령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무한교섭을 문제 삼는 기업들에게 불법파견과 다단계 하청부터 중단하라고 엄중히 경고 했어야 했다.
대통령은 과거처럼 노동자를 부당하게 탄압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말을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단지 공권력을 이용해 노동자를 진압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노동 탄압의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자본과 동일시한 관점에서 AI 기술과 산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부수적 피해로 취급한다면, 국가는 이미 노동 탄압의 구조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것보다 경제와 성장률을 지키는 것이 더 높은 우선순위로 설정되는 한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유체이탈 화법 이상이 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탄압의 중단을 넘어 노동 탄압 구조의 핵심 행위자로 기능해 온 국가의 기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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