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가야마을은 천군(天君)의 마을이을 것 입니다."
이영식 김해 인제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렇게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지금 우리의 제사에서도 그렇지만 청동정(靑銅鼎)은 제단의 제일 앞에 놓이는 향로(香爐)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며 "이러한 향로는 장례나 제사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중심적 상징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청동정 역시 주촌면 양동리 가야마을의 제사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의 가야마을 사람들은 낙랑군과 대방군이 있어 중국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서북한지역에서 남하했던 사람들로 추정되고 있다"면서 "중국제 청동기를 집단의 상징으로 모셨던 사람들로 수로왕과 허왕후와 같이 바닷길을 통해 김해에 들어왔던 사람들이었다"고 밝혔다.
즉 양동리고분군 바로 아래쪽 유하리에는 하손패총이 있고, 바로 위쪽으로는 양동산성이 남아있다는 것.
그러면서 "주촌 양동산성은 아마도 가야산성으로 확인 최초의 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하손패총에서는 엄청나게 쌓인 조가비와 수많은 가야토기의 파편들이 발견되고 있다"며 "양동리고분군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삷의 터전이 하손패총이었고, 그들의 방어적 군사시설이 양동산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손패총의 정상부에 올라 보면 지금은 김해평야로 변해 버린 옛 김해만이 한눈에 들어온다"면서 "해양왕국의 항구에 아주 적합한 지형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양동리고분군이 위치한 주촌은 지금 술 주(酒)자의 주촌(酒村)으로 표기하지만, 원래는 배 주(舟)자의 주촌(舟村)이었고 고려시대까지 항구마을로서 크게 번성하던 곳이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수백여기나 되는 널무덤(목관묘)·덧덜무덤(목곽묘)·돌덧널무덤(석곽묘) 등에서는 널받침으로 사용되었던 납작도끼 모양의 덩이쇠(판상철부), 주인공의 가슴께에 놓여 있었던 청동거울 9장·철복(鐵鍑)이라 부르는 철 솥과 네 귀에 고사리 모양의 장식이 달린 말 재갈·중국제 청동향로의 청동 솥 등이 출토되었다"고 말했다.
이영식 교수는 "이러한 유물들은 3세기경의 가락국(금관가야)이 철의 왕국인 동시에 해양왕국이었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하면서 "철 솥·말 재갈·중국제 청동향로는 각각 북방의 유목민과 중국적 문화를 아울러 가지고 있었던 가야왕국의 복합적 출신과 구성을 짐작케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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