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지금 당장은 결혼 계획이 없지만,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과거라면 임신이 가능할 때 서둘러 결혼할 사람을 찾아 아이를 낳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난자냉동"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있다.
이러한 선택을 의학용어로는 "가임력 보존을 위한 계획적(선택적) 난자동결"이라 부른다. 난자동결보존(oocyte cryopreservation)은 보조생식술의 하나로 본래 암과 같은 희귀⋅난치성 질환의 치료과정 중 즉각적인 가임력 소실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에게만 제공되었던 선택지였다. 그러나 2018년 미국 생식의학회가 공식적으로 생식노화로 인한 불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도 난자동결보존을 허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선택적 난자동결보존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는 학업 및 커리어에 집중하기 위해 혹은 원하는 파트너를 만날 때까지 가임력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난자동결보존을 선택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난자냉동에 관심이 생기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실제로 동결난자를 사용해서 임신을 시도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중 실제로 임신에 성공한 사람이 몇 명인지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에서 가임력 보존을 위해 선택적 난자동결한 여성의 정확한 규모를 알기 어려웠다. 미혼 여성의 선택적 난자동결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시술이고, 일부 지자체가 시술비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는 국가 차원의 통계를 집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산부인과 학회지에 최근 발표된 연구를 살펴봤다. 이 논문의 연구진은 미국 난임클리닉의 약 90%가 참여한 보조생식술 데이터베이스(Society for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Clinical Outcomes Reporting System)를 활용해 선택적 난자동결보존 이후 실제로 동결난자를 사용한 비율과 임신 결과를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선택적 생식 보존: 난자 동결 보존 및 난자 활용 추세에 관한 국가 데이터베이스 5년에서 7년 동안의 추적 관찰 연구)
미국에서도 선택적 난자동결보존을 시행한 여성의 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난자를 동결한 여성이 2014년 4153명에서 2021년 1만6436명으로 약 네 배 가까이 늘었고, 시술 건수도 2014년 5259건에서 2021년 2만2545건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에 난자를 동결한 시점의 평균 연령은 같은 기간 36세에서 34.9세로 낮아졌다.
하지만 난자동결보존 이후 실제로 동결한 난자를 사용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난자를 동결한 여성 15,036명을 2021년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병원에 다시 방문해서 동결난자를 사용한 비율은 약 5.7%(852명)에 그쳤다. 또한 동결난자 사용을 원하는 여성 852명 중 약 78.5%(669명)는 이식할 수 있는 난자를 얻었지만, 나머지 21.5%(183명)는 해동 후 사용할 수 있는 난자가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동결난자를 해동해 임신을 시도했을 때의 성공률이 일반적인 체외수정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난자냉동이 보장하는 것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삶의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난자냉동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이지만, 미래의 임신을 보장하는 기술이라기보다 가임력을 일부 보존할 가능성을 남겨 두는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선택지가 활용되는 방식 또한 사회⋅제도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난자냉동을 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한 임신 시도는 법적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뤄진다.
이 지점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성⋅재생산 건강(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을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관련 정책은 주로 임신과 출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성⋅재생산 건강은 단순히 임신이나 출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언제, 어떻게, 그리고 아이를 가질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난자냉동을 선택한 여성 가운데 실제로 이를 사용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은 난자냉동이 단순히 미래의 임신을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여성들이 자신의 생애주기 속에서 가임력을 관리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조정하려는 시도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가능성만으로 개인의 성⋅재생산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난자냉동이 제공하는 가능성 역시 상당한 시술 비용과 보관료 부담이라는 경제적 조건, 그리고 사회의 제도와 규범 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삶에서 재생산을 고민하고 결정하는데 보다 지지적인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성⋅재생산 건강이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서지정보
Lee, M. B., Siavoshi, M., Kwan, L., & Kroener, L. (2026). Elective fertility preservation: A national database study on trends in oocyte cryopreservation and oocyte utilization over a 5- to 7-year follow-up period.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and Gynecology, 234(2), 432–439. https://doi.org/10.1016/j.ajog.2025.0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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