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살아 있는 헌법교육 실험
1. 강의실에서 시작된 변화
지난 10여 년간 제주대학교에서 교양수업 <헌법의 정신>을 강의하며 늘 고민이 있었다. 보통 중간고사 이전에는 이론 강의를, 이후에는 발표와 토론을 진행해 왔는데, 교양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의 참여가 다소 수동적인 점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에 헌법이 박제된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체가 되도록 하는, 이른바 '살아 있는 헌법교육'을 기획했다.
핵심 아이디어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풀뿌리원탁회의를 구성하고 숙의 과정을 거쳐 직접 개헌안을 성안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법적 소양이 있는 로스쿨에서 먼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변호사 시험 준비에 매진하는 로스쿨 학생들이 과연 이러한 실험적 시도에 몰입할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유연한 사고가 가능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헌법에 대한 기본지식조차 거의 없는 대학 저학년 학생들이 과연 스스로 원탁회의를 운영하고 심도 있는 숙의를 거쳐 개헌안을 성안해 낼 수 있을지 우려됐다.
2. <천년의 꿈, J-로드맵>의 탄생
학생들은 나의 기우를 말끔히 씻어 줬다. 대학생 풀뿌리원탁회의인 '아라민주원탁회의'를 창립했고, 자율적으로 운영진을 선출하며 민주적 자치 역량을 입증했다.
창립 전후로 총 6개 팀(드림팀, 헌도팀, 삼균주의팀, 포에버팀, 5팀, 도약팀)을 구성해 팀별로 개헌안 준비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전문 지식의 장벽을 창의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정보 수집과 개헌안 성안의 파트너로 AI를 마음껏 활용하라고 권했다.
그 결과 도출된 팀별 개헌안은 다음과 같다.
* 드림팀: "연방적 지방분권 - 한국형 모델을 찾아서"
* 헌도팀: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의 강화"
* 삼균주의팀: "지방분권과 자주적 입법권 확보를 위한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적 지위 보장"
* 포에버팀: "풀뿌리원탁회의형 국민발안제 도입"
* 5팀: "지역대표형 상원제 도입"
* 도약팀: "한국 민주주의의 재설계 - 헌법 제41조 개정과 단기이양식 투표제(STV) 도입을 통한 양당제 혁파 방안"
더욱 놀라운 것은 이 6개 안이 숙의 과정을 통해 하나로 통합됐다는 점이다. 드림팀의 '연방적 지방분권 개헌안'을 토대로 각 팀의 제안을 창의적으로 통합해 <제주 선도 모델,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 대전환 3단계 로드맵(약칭: J-로드맵)>이 만들어졌다.
3단계(6개 세부 단계) 실행 전략의 대강은 이렇다.
1단계: 제주지방선거 주요 후보 핵심 공약화(1-1) 및 풀뿌리 원탁회의 방식 개헌절차법 제정(1-2)
2단계: 제주정부 헌법적 지위 확보(2-1) 및 제주 민주주의 고도화 개혁(2-2)
3단계: 대한민국 선거·정당제도 개혁(3-1) 및 연방적 분권국가 완성(3-2)
나아가 J-로드맵의 역사적 정당성과 인문학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제주 2천 년의 서사'를 추가해 최종 버전인 <천 년의 꿈, J-로드맵>을 완성했다. 학생들이 단순한 개헌안 성안의 수준을 넘어 제주와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로드맵의 생명력은 나중에 추가된 '제주 2천 년의 서사'에 있다.
만약 이 서사가 없었다면, 이 로드맵은 그저 하나의 정책 대안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2천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가 더해짐으로써, 비로소 제주 사람들의 삶과 꿈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게 됐다.
Ⅱ. 지역사회의 반향과 실천적 연대
학생들이 그려낸 이 로드맵을 교양수업 과제물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 2025년 12월 23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공식 발표회를 개최했는데 반응은 뜨거웠다.
제주 정치권과 전국 개헌단체들은 학생들의 비전에 공감하며, 2026년 1월 29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 <천년의 꿈, J-로드맵 토론회>를 열어 제주가 지역 발전을 넘어 대한민국의 구조적 전환을 견인하는 선도 모델이 돼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나아가 대학생들의 담대한 비전을 실현가능한 현실로 바꾸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 제주로 산하에 '천년의 꿈을 여는 사람들(약칭: J-천사)'이 출범했다. J-천사는 청년의 열정, 주민자치의 지혜, 그리고 전문가의 통찰을 결합해 J-로드맵을 성취하고자 한다.
J-천사는 다가오는 2026년 제주지방선거를 중대한 분수령으로 보고, 주요 후보들의 J-로드맵 공약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 4월 29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제주시청 앞에서 '천년의 꿈, J-로드맵 실현을 위한 1004인 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지사 후보 6명 전원과 제주지역 3대 기관장(도지사, 도의장, 교육감)이 모두 선언자로 참여한 상태다.
Ⅲ. 풀뿌리원탁회의: 자치 세포조직
1. 풀뿌리원탁회의의 의미와 특징
J-로드맵을 실현할 핵심적인 세포조직으로는 '풀뿌리원탁회의'를 들 수 있다. 풀뿌리원탁회의란 읍면동에 주소 또는 연고가 있는 주민 5명 이상이 모여 입법안을 의회에 제안하는 비법인 사단 성격의 자율적인 민간단체를 말한다. 설립은 자유이며, 하나의 읍면동에 복수로 설립할 수 있다.
특징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입법안을 의회에 바로 제안하지 않고 주민자치회(주민자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는 것이다. 주민자치회의가 심의해서 가결하면 그때 의회에 제안하는 것이다. 예컨대 제주의 경우 풀뿌리원탁회의에서 개헌안을 마련하면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 행정시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 국회 제안 절차를 밟는다.
2. 이어지는 실험들
① 제주대 로스쿨의 실험: J-로드맵은 이번 국회에서 풀뿌리원탁회의 방식의 개헌청원을 담은 개헌절차법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주대 로스쿨 원생들이 '아래미래원탁회의'를 구성하고, 풀뿌리원탁회의 방식의 개헌청원을 담은 개헌절차법안을 성안 중에 있다. 아라미래원탁회의는 2026년 5월경 성안된 법안을 발표 예정이다.
② 애월읍의 실험: 지난 3월 2일 애월읍 '하귀문화의집'에서 애월천사원탁회의 준비모임이 있었다. 애월천사원탁회의가 구성되면 아라미래원탁회의가 성안한 개헌절차법안을 검토하고 필요시 수정·보완할 것이다. 이어 [애월읍주민자치위원회 → 제주시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 제주특별자치도의회]를 거쳐 국회 건의까지 이어지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러한 실험이 성공하면 장차 주민의 실생활에 필요한 조례 제정 등 주민 주도의 자치 입법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
Ⅳ. 지방선거 이후 일정
1. 1단계: 동력 확보와 법제화
선거 이후 도지사와 도의회가 중심이 되어 도민과 함께 'J-로드맵 실현을 위한 범도민협의회'를 구성해 다음의 4가지 전략을 추진한다.
① 43개 읍면동 풀뿌리원탁회의 구축: 제주지역 43개 읍면동마다 풀뿌리원탁회의를 구성·운영한다. 이는 제주정부의 헌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제주 민주주의를 고도화하는 핵심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② 광역·기초 J-천사 구축: 전국적으로도 광역 또는 기초 단위로 'J-천사'를 구성·운영한다. 이는 J-로드맵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③ 제주 및 전국 순회 토론회 추진: 범도민협의회 주도로 제주 43개 읍면동 순회 토론회 개최는 물론 전국의 개헌운동단체 등과 연대해, 매월 1회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러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J–로드맵에 대한 도민적·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④ 평화자치대행진 전개: 2026년 10월 초순, 범도민협의회가 전국 개헌운동단체 등과 연대해 J-로드맵 실현을 위한 평화자치대행진을 실행한다. 이 대행진은 이재수의 난 진군 경로를 모티브로 하며, 서귀포에서 동진/서진으로 나누어 출발한 뒤 제주시에서 합류하는 대장정으로 기획한다.
순회 토론회와 평화자치대행진을 통해 결집된 민의를 동력 삼아, 43개 읍면동 원탁회의 및 전국 광역·기초 J-천사 모두 풀뿌리원탁회의 개헌청원 방식을 담은 개헌절차법 제정 건의안을 마련한다. 제주지역의 경우 이 건의안은 각 주민자치위원회와 제주특별자치도 의회를 거처 국회에 공식 제안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회에서 개헌절차법을 제정함으로써 J-로드맵 1단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2. 2단계: 제주 선도 모델 개헌
제주 및 전국에서 개헌절차법상 풀뿌리원탁회의 개헌청원 방식을 활용해 제주 선도 모델 개헌 청원을 국회 개헌특위에 제출하고, 전국적인 연대를 통해 개헌을 성취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개헌 대장정'을 전격 추진한다. 전국의 개헌 버스와 제주의 개헌 비행기가 서울 4대문을 향해 물밀듯이 모여든다.
4대문을 거점으로 집결한 민심의 목소리는 광화문을 향한 거대한 도보 행진으로 이어진다. 길 위에서 시작된 이 발걸음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뜨거운 개헌의 함성으로 하나 돼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렇게 해서 제주 선도 모델 개헌이 이뤄지고 제주정부가 수립되면 제왕적 도지사제 혁파, 선거제 개혁, 지역정당제 도입, 주민자치 강화, 읍면동 대표형 상원 도입, 남녀 동권 실현 등 제주지역 민주주의를 고도화하는 자치법률을 제정해 시행한다.
3. 3단계: 대한민국 대전환 완성
제주 성공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한다. 전국 3500개 읍면동마다 풀뿌리원탁회의가 국가 대전환을 위한 입법 및 개헌 청원을 하고, 전국의 주민자치회, 지방의회의 각 단계를 거쳐 국회에 제출하고, 범국민적 연대를 통해 J-로드맵을 완성한다.
Ⅴ. 마치며
강의실의 작은 시도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단순히 개헌안을 작성하는 기술적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탐라국 이래 천 년의 세월 동안 억압과 수탈 속에서도 자치의 씨앗을 지켜온 제주 사람들의 끈질긴 '삶'을 복원하고, 그 삶의 터전 위에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자 하는 간절한 '꿈'을 헌법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제주대학교 학생들이 그려낸 이 로드맵의 진정한 생명력은 그 속에 담긴 '서사'에 있다. 제주 2천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고난과 극복의 이야기를 담아냈기에, 이 로드맵은 차가운 법률안을 넘어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공동체의 언약이 될 수 있다.
이제 청년들이 쏘아 올린 천년의 꿈은 실천적 연대를 통해 현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로드맵이 실현될 때, 비로소 제주는 변방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자치와 분권의 심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도민의 손으로 제주의 운명을 결정하고자 하는 천년의 염원이 헌법이라는 그릇에 담겨, 대한민국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가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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