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인해 기존 미국 동맹국들이 미국 및 이스라엘과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캐나다는 미국과 유대가 이제는 자국의 약점이 되고 있다고 규정했고 스페인은 유럽연합과 이스라엘의 협력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올린 9분 분량의 영상 연설에서 "세계는 더욱 위험해지고 분열됐다"며 "미국은 무역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대공황 이후 수준으로 관세를 인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미국과 긴밀한 유대 관계에 기반했던 우리의 많은 강점들이 이제는 약점이 됐다. 우리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카니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로 인해 자동차 및 철강 산업 종사자들이 영향을 받았다면서, 이러한 "불확실성의 그림자에 짓눌려" 기업들이 투자를 보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정부 노력에 대해 국민들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우리 캐나다인들이 직면한 매우 실질적인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보를 성취할 수 없다"라며 "저는 결코 우리가 처한 난관을 보기 좋게 포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일정 부분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국과 관계를 다시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에 새로운 투자를 유치고 청정에너지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리며 국내 무역 장벽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또 국방비 증액, 세금 감면, 주택 가격 안정화 노력 등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 단 하나의 외국 파트너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이웃 국가들로부터 발생하는 혼란을 통제할 수 없다. 또한, 그 혼란이 갑자기 멈출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우리 미래를 맡길 수도 없다"고 밝혀 트럼프 정부가 끝나더라도 미국과 이전과 같은 관계로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니 총리는 "미국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실현 가능한 전략이 아니라면서 "희망은 계획이 아니고, 향수는 전략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캐나다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등에서 미국과 함께하며 "훌륭한 이웃 국가"였지만 "미국은 변했고, 우리는 이에 대응해야 한다"라며 "우리의 안보, 국경,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되는 것은 어떠냐며 캐나다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카니 총리는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강대국들의 경쟁으로 규범이 사라졌다면서 캐나다와 같은 중견 국가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간 관계도 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유럽에서 이스라엘과 협력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19일 안달루시아에서 열린 집회에서 "국제법이나 유럽연합(EU) 원칙을 위반하는 정부는 EU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이 보도했다.
매체는 "스페인은 21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리는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이스라엘과의 협력 협정 종료를 공식적으로 제안할 예정"이라며 이미 스페인과 아일랜드, 슬로베니아 외무장관이 18일 카야 칼라스 EU 외교정책 고위대표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스라엘이 EU와의 협력 협정을 위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 의회의 사형제 승인과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는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체스 총리를 비롯해 이들 국가들이 문제삼은 협정은 EU와 이스라엘 관계의 법적 기반으로, 지난 2000년 체결한 '유럽연합-이스라엘 협력 협정'을 의미한다. 해당 협정의 2조에는 "양자 간의 관계와 협정의 모든 규정은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며, 이는 본 협정의 '본질적인 요소(essential element)'를 구성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한 쪽 당사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 상대방은 협정 효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정지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6월 20일 회원국 27개국 중 17개국의 요청으로 이 협정의 재검토 결과 보고서를 공유하기도 했다. 당시 협정 재검토 요청이 접수된 이유 역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협정 2조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보고서에서는 이스라엘이 협정을 어겼다고 명시했고 후속 조치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역 특혜 중단 등이 논의됐으나 제재안이 마련되지는 않았다. 실제 제재를 위해서는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15개국 이상의 찬성 또는 사안에 따라 만장일치가 필요했는데 당시 EU가 이에 대한 공통된 의견을 내지 못했다.
<폴리티코>는 "EU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협력 협정 종료 제안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강경 조치에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독일 주도의 국가들이 이 제안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유럽 내 여론이 지난해보다 악화됐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어 협정 종료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계 설정에 대한 재검토는 일정 부분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탈리아는 지난 14일 이스라엘과 국방 협정 자동 갱신을 중단했다. 극우 성향을 띄고 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미국 및 이스라엘과 가까운 관계로 알려졌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에 대해서는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15일 EU 집행위원회 산하의 유럽시민발의(ECI)에는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를 고려해 EU‑이스라엘 협력 협정을 전면 중단하라'라는 발의에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하기도 했다. ECI는 EU 회원국에 속한 시민들이 집행위원회에 입법 제안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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