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정부는 북을 군사적으로 자극하여 계엄령 선포의 명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이후 북은 2026년 2월에 평양에서 열린 조선로동당 제9차 대회를 통해 '동족 개념의 영구적 배제', '가장 적대적인 실체' 등의 표현을 쓰며 1945년 분단 이후 한반도를 지탱해 오던 민족적 패러다임이 끝났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새로 들어선 한국의 이재명 정부가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한국 헌법에서 영토조항 개정, 북과의 새로운 국가 관계 설정 등 실질적인 변화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한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선 문제도 새로운 국가 관계 만들기에서 꼭 풀어야 할 숙제이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선
한반도 비무장지대는 임진강 하류의 파주시 장단면 만우리부터 동해안의 강원도 고성군까지 248킬로미터에 걸쳐 있다. 중앙에는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져 있으며, 쌍방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킬로미터씩 후퇴하여 남측 경계선과 북측 경계선이 설정되어 있다. 비무장지대의 설치 목적은 적대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면적은 907㎢로, 제주 전체 면적(1850㎢)의 절반에 해당한다.
민간인통제선, 일명 민통선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측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철책선이다. 민통선은 정전협정에 없던 것으로, 1954년 2월 미육군 제8군단 사령관이 직권으로 설치했다. 민통선은 처음에는 민간인의 영농은 허용하되 거주는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귀농선'으로 불렸다. 이때만 해도 철책선이 설치되지 않았다. 그러나 휴전선 방어임무를 한국군이 담당하면서 1958년 6월 군 작전 및 보안상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출입영농과 입주영농이 허가되었으며, 귀농선은 민간인출입통제선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민통선은 지금까지 4차에 걸쳐 북상하면서 군사분계선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가장 최근은 2025년에 진행되었다. 각 차례의 북상은 군사시설보호법 등의 개정, 남북관계 변화, 인구 증가와 지역개발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최근에는 강원특별자치도설치등에관한특별법 시행과 맞물려 군사규제 완화, 지역개발 활성화 등이 주요 배경이었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산물로, 남과 북이 지혜를 모아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중요한 곳으로, 향후 한반도 통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동안 남측에서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에 대한 여러 가지 구상이 나오고 일부 실천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와 통합을 위해서 토지 재산권을 정리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의 토지 재산권 문제
과거 민통선 구역은 사람이 살았던 농촌마을과 산간 지역이어서 땅 주인들이 있었던 공간이다. 휴전 이후 현재 유엔군사령부가 군사정전협정과 관련해서 군사적 범위 내에서 허가권과 감독권을 일부 행사하고 있으며,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민간인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다. 영토 주권 및 행정권은 대한민국에게 있지만 유엔군사령부가 군사적인 범위에서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더 엄격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의 땅은 거래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파주 임진강을 따라가다 보면 민통선 안으로 농지가 보인다. 분명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땅 주인이 있다는 것이고, 토지 매매도 가능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곳에서 농지를 소유하면서 농사를 짓는 지인과 대화해 보니, 정해진 시간에 출입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어렵지, 농지를 구입하는 것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고 한다.
그럼 과연 비무장지대에서도 합법적으로 토지매매가 가능할까? 이에 대해 김성욱 연구자(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에서 토지매매가 가능하지만, 충족될 조건들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말한다. 조건들은 이렇다.
- 매도인이 진정한 소유자로서 확정할 수 있는지
- 소유자 사망시 그 상속인 전부로부터 소유권 지분 이전이 가능한지
- 매매토지의 위치가 특정될 수 있는지
- 관련 부동산 공부에 공시되어 있으며, 실제 소유권이전등기가 가능한지
-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의 토지인지
-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을 수 있는 토지인지
- 토지이용을 위하여 관련 법률 및 국방부 지침에 근거하여 허가 여부 중요
게다가 요건만 충족된다면 토지매매가 가능하다는 대법원 등기 선례도 존재한다. 비무장지대 토지거래와 관련해서, 대법원 등기 선례(제정 1997.8.30. 등기 선례 제5-723호)는 민간인의 출입이 일체 통제되어 경작이 전혀 불가능한 비무장지대 내의 농지라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이나 토지거래허가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실제 농지로 이용되지 않는다면 소유권이전등기 첨부서면에 농지취득자격증명이 필요하지 않다고도 했다. 대법원도 비무장지대의 토지매매를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 철원군 유곡리 통일촌 마을의 토지소유권 분쟁 사례
강원도 철원에 위치하고 있는 유곡리 통일촌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한의 발전상을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민통선 구역 내에 설치된 농촌 마을 2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 입주하려면 자격 요건이 까다로웠다. 군복무를 필하고, 사상이 건전하며 전과 사실이 없어야 하며, 주벽과 도벽이 없고 채무도 없어야 하고, 신체 건강해서 농사지을 능력이 있어야 했다. 대신 정부의 지원 역시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이었다. 농지 5ha(1만 5천평)를 제공하고, 주택과 농기계, 농자재 및 교통수단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렇게 유곡리에 60가구가 입주했다.
문제는 농지 소유권에 있었다. 농지는 당초 5ha씩 나눠준다고 했지만 유곡리는 농지가 부족해서 2ha씩 분배받았다. 그런데 철원지역은 3.8선이 그어진 당시 북한 지역에 속해 있어서 북한식 토지개혁이 진행된 곳이었다. 휴전 후 한국 영토가 되면서 이승만 정부에 의해 한국식 농지개혁이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한 토지에 주인이 3~4명 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곡리 통일촌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실제 지주가 나타나서 토지소유권 소송을 하면 7~8년 고생하다가 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결과, 입주 주민이 농지를 소유하는 비율은 15% 수준에 불과한 상태다(김일한, 동국대학교 DMZ평화센터).
이렇게 된 핵심적인 원인은 국가가 유곡리 마을 주민에게 농지를 나눠줄 때 후속 입법조치를 통해 농지 소유권을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구역은 이미 70년이 지난 곳임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베일에 싸여 있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토지 재산권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에서 영토주권 행사를 고민해야
1950년에 시작된 농지개혁은 어쩌면 이승만 정부의 영토주권 행사였는지도 모른다. 소농들에게 농지를 분배하는 방향으로 영토주권을 행사하면서, 농지개혁은 한국전쟁에서 버티는 힘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근대화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한반도의 허리이자 길목에 해당하는 비무장지대와 남측 민통선 구역은 토지 재산권 분쟁이 해소되지 않았고, 투기적 목적의 소유자가 많아, 향후 한반도 통합 및 통일 시대에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당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남쪽 접경지역의 땅값이 급등한 경험은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 파주의 지가는 연초보다 30% 급등했으며, 거래량도 한 달 사이에 50% 늘었다. 철원에서도 경원선 복원사업이 진행되자 투기자본이 대거 몰려들었다. 과거와 현재의 경험은 계속해서 한반도의 통합을 괴롭힐 것이다.
이제 한국 정부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 혹은 통합시대를 향한 영토주권 행사를 결단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내에서 오랜 시간 재산권 제한의 고통을 감내해 온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실현하고, 해당 토지를 국가 공동체 전체의 자산(Commonwealth)으로 전환하는 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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