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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 남을 핵 쓰레기, 우리가 치우나? 세대 간 불평등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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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 남을 핵 쓰레기, 우리가 치우나? 세대 간 불평등의 역설

[초록發光] 600년 묘제 봉행에 참석하며 수만 년 핵폐기물 처리를 떠올려 본다

한라산과 중산간의 들녘에 푸른 새싹들이 돋아나는 제주의 4월은 과거를 기리는 날들로 분주하다.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 3일 뿐 아니라, 주말마다 각 문중별로 '묘제'를 봉행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제주에는 고대 국가 탐라국을 개국한 삼성(三姓)인 고 씨, 양 씨, 부 씨 이외에도 다양한 성씨들이 여말선초 시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입도해 일가를 이루고 자손을 번창시키며 문중을 이루고 있다. 그중 제주에 처음 들어온 분을 '입도조'(入島祖)로 모시고 매해 묘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묘제'를 봉행한다.

묘제는 단순히 분묘를 관리하고 조상을 기리는 자리만은 아니다. 흔히 한국 사회 공동체형성의 기본 원리로 말하는 '혈연, 지연, 학연'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 관계인 '혈연'을 확인하고 유대감을 만들어 향후 사회생활의 긍정적 관계를 조성하기 위한 배타적 만남의 자리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에 극적인 만남이 이뤄지기도 했다. 다가올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선출된 위성곤 국회의원이 같은 경선 주자였던 오영훈 현 제주도지사를 만난 연대를 표방한 곳도 지난 4월 12일 열린 군위 오 씨 입도조 묘제에서였다. 위성곤 의원의 배우자가 오 씨였다.

올해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육지에서 일을 하는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제주로 내려가 오랜만에 묘제 봉행에 참석했다. 나의 조상 중에 말과 관련된 인물들이 있어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을 들어봤을 텐데, 그렇다면 제주로 보낸 그 말은 누가 키웠을까? 당연히 제주도 사람들이 키웠을 테고,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김만일(1550~1632)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키운 말도 육지로 보냈다.

그는 경주 김 씨 제주 입도 7세손으로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시 수천 필의 말을 나라에 바쳐 국난극복에 기여해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 정부로부터 오위도총부 도총관(정2품)에 이어, 인조6년에는 숭정대부(종1품)에 제수되었고, '헌마공신'(獻馬功臣)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의 셋째 아들 김대길은 효종 10년(1659년)에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에 임명돼 조선 말까지 200년 이상 세습하면서 제주 말을 관리하는 총괄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태양광발전이 설치된 경주김씨 제주 입도시조 묘역과 묘제봉행현수막 ⓒ경주김씨제주도종친회

이들을 기리는 경주김씨제주특별자치도종친회는 매년 4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입도조 및 입도2, 3, 4, 5세에 대한 묘제를 봉행한다. 또 첫 산마감목관을 역임한 김대길 공에 대한 묘제는 매년 음력 3월 둘째 주 일요일에 봉행한다. 올해는 둘 다 4월 26일로 같은 날이었다. 또한 올해 4월 26일은 구소련 시절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40주기이기도 했다.

제물을 준비해서, 내비게이션으로 묘제 봉행 장소를 확인해 길을 찾아가고, 순서대로 제사를 지낸 후 음복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어르신이었고 40대인 나보다 젊은 청년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지방선거로 인해 사무소 개소식 등 여러 행사가 겹쳤기에 참석자들도 적었다고 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수백 년 동안 계속돼 온 묘제는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결국 조직의 기본은 사람과 돈이다. 종친회는 여기에 대해 나름대로 많이 고민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묘역정비사업과 함께 종보 및 전화번호부 발간을 통한 기본적인 조직활동 뿐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문중 토지의 일부를 활용해 태양광발전 사업부지로 임대해 수익금을 발생시키고 있고, 10년 전부터는 장학생을 선발해 1인당 50만 원을 묘제 봉행 현장에서 지급하고 있다. 불참 시 계좌이체도 없다고 했다. 이렇게라도해서 묘역의 위치를 후손들에게 알려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체르노빌 폭발 40주기였던 날에 참석한 묘제에서, 변화된 시대에 맞게 수백 년을 이어온 일들을 앞으로도 이어 나가기 위한 종친회의 노력을 보며 핵발전소의 필연적인 결과물인 핵폐기물에 대한 관리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최근 정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 3차 회의를 열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적합성 조사계획'과 '2026년도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시행계획' 2건을 의결했다.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 설치된 방폐장이 300년간 관리해야 하는 중·저준위 방사선 폐기물인데 비해, 이번 회의에서 의결한 내용은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마련을 위한 기본방향으로 부지공모와 조사에만 10여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영구처분장은 수 천 년에서 수만 년 동안 자연세계와 안전하게 격리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부지를 마련하고 처분장을 건설하더라도 영원하고 안전한 격리가 가능할까? 나는 아직까지 핵폐기물의 위험성에 대한 세대 간 정확한 전달 방법을 들어본 적이 없다. 조선시대 임금님이 '산마감목관'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쓰인 '교지'와 입도조 묘역의 묘비는 한자로 쓰여져 있었지만, 묘제에서 축문은 '유세차'를 제외하고 이제는 우리말로 작성하고 있었다. 말과 글은 시대에 따라 표현방식과 의미도 변하는데, '핵폐기물이 위험하니 절대 열어보지 말라'라는 의미를 어떻게 수천, 수만 년간 오해 없이 전승할 수 있을까? 한글이 창제 반포된 지 아직 600년이 되지 않았고, <세종어제훈민정음>의 '어린 백성'은 '지혜가 부족하고 어리석은'에서 '나이가 적은'으로 뜻이 바뀌었다.

▲경주 월성 원전 부지 내에 설치된 고준위 핵폐기물 건식저장시설. ⓒ한국수력원자력

핵발전은 길게 잡아도 60년 동안 전기를 생산하지만, 그에 따른 핵폐기물은 최소 수백 년에서 수천~수만 년 동안 '관리'를 해야 한다. 과연 이것을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혜택은 현세대가 누리고, 폐기물은 미래세대로 떠넘기는 것이야말로 비윤리적이고, 대표적인 세대 간 불평등이다.

우리는 미래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산업혁명 이후의 시간보다 더 오래 관리해야 할 쓰레기를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유지를 위한 에너지 생산 및 분배방식을 물려줄 것인가? 태양광발전이 설치된 입도조 묘역에서 조상에게 제물을 올리고, 절을 하고, 음복하면서 생각해 본다.

4.3을 겪으면서도 묘제 봉행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됐다. 고려시대의 일반인 묘가 거의 없는 것을 봤을 때 이런 형태도 무한정 되지는 않을 것 같고, 관리가 되지 않은 봉분은 말 그대로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핵폐기물은 절대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되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최소 300년에서 10만 년까지라니,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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