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6주년을 1주일여 앞둔 10일 오전부터 국립 5·18 민주묘지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각 묘비 옆엔 흰 국화와 분홍 꽃송이가 놓였고, 묘역 옆에 꽂힌 작은 태극기들은 바람에 나부꼈다. 참배객들은 추모탑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가족의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은 소매 끝으로 비석에 앉은 먼지를 조심스레 닦아냈다. 이내 돗자리를 펴고 흠집 없는 과일들을 골라 비석 앞에 반듯하게 올리고 말없이 두 번 절을 올렸다.
누군가는 묘비 뒤편에 새겨진 글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고, 누군가는 비석에 새겨진 이름 석 자를 손끝으로 쓸어 내렸다.
단체로 묘역을 찾은 학생들은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줄지어 걸었고, 타지에서 온 방문객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한동안 묘역을 바라봤다.
여행길에 들른 부부, 가족과 함께 먼저 간 이를 찾은 유족, 역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까지 묘역을 찾은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오월을 기억하고 있었다.
강원도 삼척에서 온 70대 김모씨 부부는 여행길에 묘역을 찾았다. 김씨는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돌다가 이곳이 생각나서 찾아왔다"며 "민주화운동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니까, 그분들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 다시 한번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예전에 묘역을 찾은 적이 있었지만, 아내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한번 돌아보게 하려고 같이 데리고 왔다"고 했다. 아내는 묘역을 둘러본 뒤 "실제로 와서 보니까 참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 참배객도 눈에 띄었다. 광주 서구에 사는 70대 이연진씨(70대·여성)는 딸 내외와 손주들까지 3대가 함께 동생의 묘역을 찾았다. 자신도 5·18 부상자회 회원이라는 이씨는 "죽은 사람도 불쌍하지만, 살아남은 우리 산 사람들이 겪는 고통도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5월이 되면 온몸이 다 아프고 잠을 못 잔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말로 다 표현을 못 할 정도로 힘들다" 했다. 그러면서 손주들과 함께 묘역을 찾은 마음에 대해서는 "애들 입장에서는 삼촌 묘역에 온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발길도 눈에 띄었다. 사단법인 광주동구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묘역을 찾은 이세종 학생은 "어릴 때는 5·18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이런 사건이 있었다 정도만 알았다"며 "이번에는 열사분들의 개별적인 사연도 알고 보니까 더 와닿는다"고 말했다.
함께 방문한 김미진 학생은 묘역을 둘러본 뒤 "학교 숙제나 기사 같은 데서 글자로만 '몇 백 명'이라고 봤을 때는 그냥 숫자가 많다는 것만 느껴졌다"며 "직접 묘비들을 보니까 정말 많은 분들이 저희 같은 후손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셨구나 하는 게 실감났다"고 말했다.
김양은 소설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가 된 문재학 열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함께 온 중학생은 "이름이 알려진 희생자 중에 가장 어린 문재학 열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제 나이 또래인 17살에 돌아가셔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인천교구 천주교 청년들도 묘역 앞에서 묵념했다. 이들은 5·18 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역할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광주에 왔다.
한 청년은 "광주 출신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묘역을 밟았다"며 "과거의 어둡고 아픈 공간으로만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참배객들을 보니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기억되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경기권에서 단체로 방문한 참배객들도 차분한 발걸음으로 묘역을 둘러봤다. 이 단체는 '사회적 의료 인문학교' 체험학습 일정으로 광주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체험학습 참가자 김기태씨(50대·남성)는 "역사의 너무 아픈 기억들이 떠올라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며 "이곳에 오면 늘 참 미안하고, 고맙고, 안타까운 여러 감정들이 겹친다"고 말했다.
한편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기념식은 오는 18일 오전 11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16일부터는 5·18민주광장과 금남로 일대, 국립5·18민주묘지 등에서 추모와 기념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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