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중도보수, 국민의힘은 보수를 표방한 가운데, 6.3 지방선거 구도도 양당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 독자적 진보정치의 도약을 꾀하는 이들이 있다. '신호등 연대'를 이뤄내고 이번 선거에 50여 명의 후보를 낸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다. 묵묵히 길을 내는 진보3당 후보들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 편집자
"많이 봤어. 꾸준하네. 열심히 해서 보기 좋아."
김찬우 정의당 파주시의원 후보를 동행취재한 지난 20일 낮, 거리에서 마주친 나이 지긋해 보이는 시민이 명함을 건네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날 김 후보는 새벽 5시 30분부터 운정역에서 선거전을 시작했다. 아침 8시경에는 벧엘교회 사거리로 이동해 "조심히 다녀오세요"라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가 반가운 듯 한 시민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김 후보는 올해 24살이다. 6.3 지방선거에서 20대는 후보의 비율은 2%(171명)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정치에서 20대 정치인의 선거 출마는 그만큼 어렵고 드문 일이다.
거대양당의 세가 어느 때보다 강해진 상황에서 독자적 진보정당 후보의 수는 그보다 적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지역구 선거에 나서는 정의당의 유일한 후보다. 직전 지방선거에 비해 당이 후보들에게 보태는 선거 지원금도 줄었다. 덤프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도 김 후보는 비용이 부담돼 쓸 수 없다. 시민과 당원들의 소액 후원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녹록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김 후보는 매일같이 5시 30분에 운정역에서 유세 일정을 시작해 선거구 곳곳을 누빈다. 퇴근시간에는 다시 운정역을 찾아 자신의 이름과 공약을 알리기 위해 피켓을 든다. 밤 10시까지 일정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동행취재를 한 20일에도 김 후보는 수백 장의 명함을 돌리며, 2만 보 넘게 걸었다. 김 후보는 이런 강행군을 지역 내 시의원 후보 누구보다도 먼저, 지난 2월부터 계속해 왔다. 거대양당 후보가 아직 보이지 않던 때였다.
"아이가 아픈 부담, 한 가정이 떠안으면 안 돼"
김 후보가 보인 성실함의 바탕에는 지역을 바꾸고 싶다는 진심이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어린이·청소년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 △학생 전용 통학순환버스 무상화 △성별임금공시조례 제정 △공공시설 화장실 생리용품 무상비치 △완전 공영제·저상버스 전환 등을 통한 버스 타기 좋은 파주 등으로 채웠다. 모두 지역에 대한 오랜 고민이 녹아있는 공약이다.
어린이·청소년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를 위해, 김 후보가 위원장인 정의당 파주시위원회는 이미 지난 3월 운동본부를 만들고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김 후보는 이를 주요공약 중에도 첫손으로 꼽았다.
"아이가 아픈 것만도 힘들어요. 어린 시절 저를 안고 병원을 찾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까지 가정이 전부 떠안으면 안 돼요. 파주는 운정신도시가 있어 어린이, 청소년 비율이 상당히 높은 지역인데 그에 비해 관련 의료체계는 잘 발달하지 않았어요. 예산이 많이 들 것처럼 보이지만, 4억 원 정도 예산이면 충분합니다. 의지만 있으면 어린이·청소년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 할 수 있습니다."
공공시설 화장실 생리용품 무상비치 역시 김 후보가 일찌감치 공들여 온 의제를 발전시킨 공약이다. 경기도는 2021년부터 지역구와 3 대 7 매칭 비율로 여성 청소년 생리용품 보편지원 사업을 시행했지만, 파주시는 올해에야 참여했다. 김 후보와 정의당 파주시위원회가 주도한 서명운동이 5000명 가량의 주민의 참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서명운동을 하면서 '이거 왜 아직도 안 하고 있냐'는 말을 시민들에게 참 많이 들었어요. 14~15억 원 정도 예산을 들이면 할 수 있어요. 시의 의지가 부족했던 거죠. 간병 SOS 프로젝트, 병원 동행 서비스 등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비슷한 일이 더 있어요. 시의원이 되면 시정을 제대로 견제하며, 이런 사업의 참여를 요구하고 싶어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니까요. 진보정당 시의원이 아니면 어려울 거예요."
버스 관련 공약을 여럿 내놓은 것 역시 3살 때부터 파주에서 산 토박이인 그가 어려서부터 답답하게 느껴 온 문제였기 때문이다. 서울과 달리 파주에서는 차 없이 살기 어렵다. 당장 김 후보의 집 앞에서도 배차간격이 길어 버스를 타기 어려웠다.
'생태를 돌보는 녹색도시'도 김 후보가 표방하는 의제 중 하나다. 버스 타기 좋은 파주의 다른 면도 기후위기 앞 생태적 전환이다. 20일에도 김 후보는 세계적 생태보고인 공릉천변에 콘크리트를 씌우려는 정비사업에 반대하는 단체 공릉천친구들과 정책협약을 맺었다. 이 운동에도 김 후보는 선거 전부터 함께 해왔다.
'코스피 8000'과 '이백따리'가 공존하는 시대, 진보정치의 꿈"
드문 20대 출마자인 김 후보에게 정치를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벌써 두 번째 지방선거에 출마한 그다. 먼저 어려서부터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고,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도 좋아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장이나 학생회장도 도맡아 했다. 그럼 왜 정의당을 택했을까.
"학교를 다니는데, 체벌을 하던 교사가 어느날 갑자기 손찌검을 안 하는 거에요. 학생인권조례가 생겼기 때문이었죠. 초등학교 때부터 급식비를 내지 않던 기억이 나요.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학생인권조례와 무상급식이 반영된 결과죠. 일상에서 정치의 힘과 진보정당의 가치를 직접 체감한 거죠."
김 후보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에서는 코스피가 8000을 넘으며 자산시장에 부가 쌓인다. 다른 편에서는 월급이 200만 원대인 사람을 낮춰 부르는 '이백따리'라는 말이 유행한다. 그 속에서 정의당은 '불로소득이 아닌, 일해서 번 노동소득만으로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걸며 선거를 치르고 있다. 김 후보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도 김 후보는 정치에서 소외된, 상대적으로 가난한 주민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
"제가 출마한 지역구를 보면, 운정역을 기준으로 한편에는 고층 빌딩이, 다른 편에는 저층 빌라가 가득해요. 저층 빌라가 많은 쪽은 사람도 적어서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잘 하지 않아요. '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루는 제가 그쪽에 출퇴근 인사를 드렸어요. '우리도 시민으로 대우받네. 투표 안 하려 했는데 찍어줄게'라고 말하는 분이 있었어요. 가슴이 먹먹했어요. 당선되고 나서도 잊지 말아야죠."
다만 서민과 노동자의 삶을 주목하는 진보정치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깊은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김 후보는 강조했다.
"진보정치가 새로운 의제를 던지지 못하면 '진보정치 그만해도 된다. 막을 내려도 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미 좋은 내용은 많이 맴돌고 있을 수 있어요. 평등사회를 위해 분배 문제를 개선하는 정책을 돌봄 중심으로 구성해 설득력 있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그것들이 직접 와닿게 하는 것도요. 이를 통해 진보정치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가슴을 다시 뛸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정치의 꿈, 응원하고 지지해주길"
끝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도 김 후보는 "2004년 권영길 대표가 이야기한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구호가 여러 시민의 가슴을 울렸다.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정치를 다시 하고 싶다"며 "진보정치의 오랜 꿈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런 정치가 계속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유세 일정 중 틈을 내 진행한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김 후보는 공개수업을 하는 학교 앞을 찾아 지나는 모든 시민에게 명함을 돌렸다. 선거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에도 상대적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골라 일부러 돌아 걸어가며 마주치는 시민들에게 "정의당 김찬우입니다. 기억해주십시오"라는 인사를 고개 숙이며 건넸다.
감동을 주는 진보정치를 위해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발품을 발며 많은 시민을 만나는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해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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