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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이슬’과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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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이슬’과 ‘서리’

지난 주에 잠깐 비가 와서 밭에 나가 춤을 추고 들어왔는데, 또 다시 봄 가뭄이 가슴을 태우고 있다. 예보에 의하면 목요일에 비가 온다고 하는데, 기대해 본다.(이 글은 미리 작성한 것이라 아직 모른다. 제발 비 좀 내렸으면 하는 농부의 소망을 전한다.) 그래서 아침에 6시가 되면 어김없이 나가서 밭에 있는 이슬을 발길로 걷어찬다. 이슬이라도 식물을 조금 적셔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너무 늦게 뿌리 유채 싹은 이미 30%는 말라 죽었다. 보리수 나무도 싹(새순)이 나오면서 힘들다 하고, 낙상홍도 여섯 그루 중에 세 그루가 말라버렸다. 필자는 나무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말해 왔는데, 봄 가뭄에는 장사가 없나 보다. 이슬을 걷어차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은 이슬과 서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필자가 즐겨 읽는 책 중 하나가 <계림유사(鷄林類事)>라는 책이다. 송나라 사람이 고려의 말을 한자(송나라말)로 기록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어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 책에 의하면

霜露皆曰 率(서리와 이슬을 솔(설, 슬?)이라 했다

이라고 나타나 있다. 그런데, <훈민정음> ‘해례본’에 와서는 서리와 이슬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해례본 용자례(用字例)에서 ‘서리 상(霜)’으로 기록했고,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는 ‘로(露)’를 ‘이슬’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서리와 이슬을 모두 ‘솔(率)’이라고 했는데, 조선시대로 오면서 ‘서리’와 ‘이슬’이 명확하게 구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참조). 그렇게 본다면 ‘솔’이 ‘서리’의 어원이 되었고, 또한 이슬로 확장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솔, 슬)’이 과거에는 서리와 이슬의 의미를 겸하고 있었으니 물과 관련이 있는 어형이 아닌가 한다.

터키어에서 물을 수(su)라고 한다. 혹간에는 물 수(水) 자에서 어원을 찾고 있으나 필자가 볼 때는 우리말 ‘슬’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터키어와 우리말은 비슷한 것이 참 많다. ‘온’도 우리말에서는 백(百)이지만 터키어에서는 십(十)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열’이 숫자의 극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말에서는 ‘온’이 숫자의 극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터키어에서는 ‘십’이 숫자의 극으로 쓰인 것이다. 지금 우리말에서는 ‘온세상, 온천지, 온누리’ 등과 같이 접두사로서만 쓰고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100’이었다. 아무튼 터키어에 나타난 ‘su’의 흔적과 함께 생각해 보면 ‘슬(率)’이 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계림유사>에서는 ‘슬(솔, 설)’이라고 표현한 것이고, 이것이 조선시대로 오면서 분화되어 서리와 이슬로 확장된 모습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서리는 ‘설 + 이’의 형태로, 이슬은 ‘이 + 슬’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도 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뒤에 붙어서 ‘얼어 있는 물’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앞에 ‘이’가 붙어서 ‘얼지 않고 매달려(?) 있는 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고 본다. ‘이’가 물을 의미한다는 것은 많은 문헌에 나타나 있다.

특히 일본어에서 ‘이’가 물을 의미하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ido(井, 우물)’, ‘izumi(泉, 샘)’, ‘i(川, 내)’ 등에 나타난 ‘이’가 모두 물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서정범, 위의 책 참고). 이렇게 일본어와 우리말 터키어 등을 종합해서 본다면 우리말의 계통과 어원을 동시에 살필 수 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슬’도 물을 나타내고, ‘이’도 물을 나타내는 말인데, 앞에 ‘이’가 붙으면 ‘얼지 않은 물’을 이르고, 뒤에 붙으면 ‘얼어 있는 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했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는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금지곡이 되어 기타 들고 몰래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에도 아침 이슬을 좋아한다. 호박 곁에 이슬로 내려앉은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생명수이다. 장화에 묻은 이슬을 밭으로 차내는 농부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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