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는 단지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는 제도가 아니다. 납세자의 담세능력에 따라 세 부담을 배분하고,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은 과세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원칙을 담은 제도다. 이 원칙이 소득세법 안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장치가 바로 인적공제, 그중에서도 기본공제다.
물가는 35% 올랐는데, 공제는 16년째 150만 원
현행 소득세법은 거주자 본인과 부양가족 1인당 연 150만 원을 종합소득금액에서 공제한다. 납세자와 그 가족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최소한의 비용에는 국가가 과세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쉽게 말하면, 먹고사는 데 필요한 만큼은 소득으로 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문제는 이 150만 원이 2009년 이후 16년째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크게 변했다. 소비자물가는 누적으로 35% 이상 올랐고, 1인당 국민총소득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기본공제액은 단 1원도 오르지 않았다. 2009년의 150만 원과 오늘의 150만 원은 명목상으로는 같은 금액이지만, 실질가치는 전혀 다르다. 세법이 인정하는 '최소 생계비'가 현실의 생활비를 한참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세율은 그대로인데 세금은 늘어난다
이런 괴리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도 어느 정도 명목상 상승한다. 그런데 과세표준 구간과 공제액이 고정되어 있으면, 실질소득은 늘지 않았는데도 과세소득은 늘어난다. 납세자는 더 부유해진 것이 아닌데 세법상으로는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를 '브래킷 크리프(bracket creep)'라 부른다.
브래킷 크리프는 정부가 세율을 공식적으로 올리지 않아도 세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효과를 낸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이 커진 위에 세금까지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조세정책의 투명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정부는 국민에게 그 필요성을 설명하고 공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물가 상승을 통해 조용히 세 부담을 늘리는 방식은 납세자의 신뢰를 약화시킨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이미 역할은 끝났다
기본공제 인상에는 세수 감소 우려가 따른다. 그러나 그 해법을 공제 인상 반대에서 찾을 일은 아니다. 이미 정책 목적을 달성했거나 실효성이 낮아진 조세특례를 정비해 재원을 마련하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다. 1999년 자영업자의 과표 양성화와 현금거래 축소를 목적으로 도입된 한시적 제도다. 당시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용카드 사용이 일상이 됐고, 세원 파악 시스템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다. 그럼에도 제도는 계속 연장되며 사실상 근로소득자에 대한 보편적 감면 장치로 굳어졌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공제율, 공제한도, 사용처별 차등 적용 등으로 구조도 복잡해 납세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소비 여력이 큰 고소득자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조세형평성 측면의 한계도 분명하다. 이미 역사적 역할을 상당 부분 마친 조세특례라면,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그 재원을 기본공제 현실화에 쓰는 것이 원칙에 부합한다.
미국·독일·프랑스는 매년 물가에 맞춰 조정한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물가 상승이 소득세 부담을 왜곡하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과세표준 구간과 표준공제 등을 매년 물가에 맞춰 조정한다. 독일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소비용에는 과세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기초면세점과 자녀공제를 정기적으로 조정해 왔다. 프랑스 역시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과세구간을 조정하는 방식을 운영해 왔다.
기본공제 200만 원, 그리고 물가연동 법제화
한국도 이제 소득세 기본공제와 과세표준 구간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때다. 우선 2009년 이후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기본공제액을 최소한 200만 원 수준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국민소득 증가와 가족 부양 부담까지 고려한다면 250만 원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자녀와 고령 부양가족에 대해서는 일반 기본공제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공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요한 것은 일회성 인상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 번 올리고 다시 10년, 20년 방치한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소비자물가상승률 등에 따라 기본공제액과 과세표준 구간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그래야 세법이 경제 현실과 괴리되지 않고, 납세자의 실질 담세능력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
소득세 기본공제는 세법상 작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국가가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담겨 있다. 16년째 멈춰 있는 150만 원은 더 이상 현실의 생계비를 설명하지 못한다. 물가가 오르고 생활비가 증가했는데도 세법상의 최소 생계비만 그대로라면, 조세제도는 국민의 삶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복잡하고 실효성이 낮은 조세특례를 정비하고, 소득세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에는 과세하지 않는다는 원칙,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실질적인 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원칙, 물가 상승으로 인한 명목소득 증가를 증세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법 안에 분명히 새겨 넣어야 한다.
소득세 기본공제의 현실화와 물가연동제 도입은 단순한 감세 정책이 아니다. 납세자의 실질 구매력을 지키고, 조세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며, 가족을 부양하는 국민에게 국가가 책임 있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 지원금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세제의 구조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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