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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젖은 작업복에 탄 묻은 아들 보면 눈물나는데, 이젠 나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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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젖은 작업복에 탄 묻은 아들 보면 눈물나는데, 이젠 나가야 한다고…"

[탈(脫) 석탄의 딜레마] ⑤ 발전소 폐쇄되면 아들과 함게 일자리 잃는 노동자

[탈(脫) 석탄의 딜레마] 연재 더보기 ☞ 클릭)

박병원(가명, 51)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타이어 현장직으로 입사했다. 3조 3교대 근무였다. 90년대 중반이었는데 월급이 300만 원을 넘겼다. 건강과 바꾼 돈이었다. 잦은 야간 근무로 몸이 망가졌다. 한 달에 2번 쉴 수 있었다. 군대에 가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제대 후에는 평택에 있는 볼보 코리아에서 중장비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 달에 250은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도 채 5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IMF가 터졌다.

아버지가 고향인 태안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라도 돌봐야겠다 생각했다. 태안에서의 일자리는 석탄 화력발전소 말고는 없었다. 저탄장에 있는 석탄을 발전소 보일러실까지 옮기는 업무를 맡은 회사에 취업했다. 발전소 하청업체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자식이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연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박병원 씨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일은 쉽지 않았다. 발전소는 24시간 돌아가기에 한국타이어와 마찬가지로 주야간 교대제 근무가 필수였다. 야간 근무는 몸이 괴로웠다. 게다가 선임들의 괴롭힘도 견디기 힘들었다. 새벽 근무 때 라면 끓이기와 믹스커피는 필수였다. 커피 물 온도나 라면 스프 농도가 맞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견디다 못해 주간에만 일하는 조로 옮겼다. 월급은 반토막이 났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일해왔다. 그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넷이나 키웠다.

▲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프레시안(허환주)

4호기가 폐쇄되는 2029년, 사실상 일이 사라진다

그러던 박병원 씨가 작년 9월 전부터 다시 야간근무를 시작했다. 입사한 지 25년 만이다. 자녀 넷을 키우느라 든 빚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집도 대출로 샀다. 5년 전부터는 부인도 일을 시작했다.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야간근무를 선택한 이유다.

야간 근무는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한다. 오늘 주간 근무를 하면 내일 야간 근무, 그리고 그 다음 날 비번 휴무, 다시 주간 근무, 이런 식으로 4조 2교대로 운영된다. 그렇다 보니 공휴일이나 주말이 없다.

박병원 씨는 컨베이어에 올려져 이동하는 석탄이 제대로 운반되도록 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컨베이어에 달라붙은 고착탄 제거를 비롯해 쌓여있는 낙탄을 삽으로 퍼내는 일까지 다양하다. 2018년 사망한 김용균 씨가 하던 일이다.

컨베이어 구조상 낙탄은 늘 정해진 곳에 쌓인다. 컨베이어가 정방향으로 가다가 역방향으로 되돌아오는 지점에는 탄이 반드시 떨어진다. 그렇기에 구역 담당자가 정해진 시간마다 쌓인 낙탄을 삽으로 퍼내야 한다. 그대로 둘 경우, 가루인 미분탄과 컨베이어 마찰력이 만나 자연발화가 일어날 수 있다.

발전소 내 컨베이어는 저탄장에서 발전기 보일러까지 7㎞에 이른다. 이 긴 거리를 업무시간에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고착탄이나 낙탄을 살펴야 하니 일하기가 쉽지가 않다. 과거 김용균 씨는 2인 1조로 이 긴 거리를 돌아다녀야 했지만 2인이 각각 3.5km씩 나눠 작업을 하다가 사달이 났다.

그나마도 일하는 노동자가 부족하다. 애초 발전소 10기 운영에 필요한 인원보다 부족한 인력이 현재 일하고 있다. 2018년 석탄 화력발전소 폐쇄 선언 이후 회사는 자연 감소를 통한 인력조정을 해왔다. 그 결과 발전소 10기를 담당하려면 450명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383명(2025년 기준)에 불과하다. 덕분에 마음대로 휴가를 쓰거나 주야간 근무를 변경하는 게 쉽지 않다.

박병원 씨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의 1호기~10호기 중 1~4호기를 담당하는 조에 속해 있다. 회사는 총 4개 조(야간 3개 조(1~4호, 5~8호, 9~10호), 주간 1개 조)가 운영된다.

작년 12월 1호기가 폐쇄되면서 박병원 씨는 현재 3기의 발전소를 담당하고 있다. 만약 올해 2호기가 추가로 폐쇄되면 나머지 3~4호기만 담당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줄어든 인력으로 그간 일해왔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6년 후에는 10기 중 8기가 폐쇄된다. 1~4호기를 담당하는 박병원 씨는 4호기가 폐쇄되는 2029년이면 사실상 일이 사라진다.

▲ 하역된 석탄이 컨베이어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같은 회사, 같은 업무지만, 석탄 폐쇄로 다른 고민

박병원 씨의 경우, 이미 50대이기에 발전소가 폐쇄되는 날까지 일하고 퇴직하면 되지 않나 생각하지만 발전소 내 젊은 친구들은 상황이 다르다. 같은 회사에서 정비 업무를 담당하는 김범석(가명, 46) 씨도 박병원 씨와 마찬가지로 1~4호기를 담당하고 있다. 당장 1호기가 폐쇄되니 김범석 씨에게 맡겨지던 발전소 계획예방정비(오버홀, OH(Overhaul)가 줄어들었다.

OH는 발전소의 주요 설비를 정기적으로 정지시킨 후 분해, 점검, 수리, 조립을 하는 고강도 정비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2~3년에 한 번꼴로 2호기 단위로 보일러, 터빈, 발전기 등 핵심 설비의 정비를 실시한다. 정비 기간은 1~2개월 정도로 약 1500명의 인력이 투입되는데, 인력은 발전소 외부에서도 오고 김범석 씨 처럼 정비 담당자가 내부에서도 투입된다.

1호기 OH로 김범석 씨가 받는 돈은 1500만 원 정도로 이는 연봉에 포함돼 나온다. 1~4호기가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OH를 하기에 추가 수당이 1500만 원 더 들어오는 구조였다. 사실 기본급만으로는 발전소에서 버티기는 버겁다. 그런데 작년 1호기가 폐쇄되면서 그 수입이 4분의 3으로 줄었다. 올해 2호기가 폐쇄되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식이다.

박병원 씨는 "수당을 제외한 기본 월급은 200만 원이 안 된다"며 "그렇기에 OH는 직원들의 능력을 발휘해서 더 수익을 창출했던, 일종의 인센티브였다"라고 설명했다. 박병원 씨는 그러면서 "쉽게 말하면 4모작을 했는데 1호기가 폐쇄되면서 3모작으로 바뀌었고, 이제 올해 2호기가 폐쇄되면 2모작을 하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전환 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4호기까지 모두 폐쇄되는 2029년에는 발전소를 나가야 한다. 그간 업무 관련 각종 자격증을 획득했지만 석탄이 사라지는 지금에 와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이는 같은 회사에서 같은 업무를 하지만 다른 호기(9~10호기)를 담당하는 이와는 상당한 온도 차가 있다. 9~10호기를 담당하는 서승석(가명, 46) 씨에게 석탄 발전소 폐쇄는 먼 미래의 이야기다. 2017년 12월에 완공된 9~10호기의 폐쇄는 아직 먼 이야기다.

▲ 석탄 하역하는 모습. ⓒ충남서부항운노조

자기뿐만 아니라 아들 일자리도 사라지나

박병원 씨의 큰아들도 박 씨와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했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서 물류 센터 일을 했으나 일한 지 이틀 만에 돌아왔다. 태안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보다 더 적은 금액이었다. 그 금액으로 월세에 식비까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박병원 씨는 자신이 하는 일을 아들에게 권유했다. 아들도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작년 9월부터 석탄 이송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 발전소 내에서 아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땀에 다 젖은 작업복을 입고 얼굴에는 새까만 탄을 묻힌 아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아버지가 못나서 자기와 같은 삶을 사는 듯했다.

고민도 더 깊어졌다. 석탄 발전소가 사라지면 자기뿐만 아니라 아들의 일자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박병원 씨는 "29년이면 태안 4호기까지 폐쇄되는데, 고 1인 막둥이를 대학교까지 뒷바라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에서는 석탄 발전소 폐쇄가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하지만 이곳 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병원 씨는 "적어도 정의로운 전환을 하려면 노동자도 생존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유지해 줘야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전혀 그러지 않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고향을 다 버리고 타지에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 이것이 정의로운 전환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답답해 했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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