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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다르크’ 추미애, ‘첫 여성 경기지사’로 선택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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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추다르크’ 추미애, ‘첫 여성 경기지사’로 선택 받다

□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걸어온 길

6·3 지방선거를 통해 경기도정을 이끌 ‘제37대 경기도지사’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67) 후보가 1420만 경기도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는 지난 선거기간 동안 상대 후보의 수 많은 네거티브 공세를 이겨내고 당선에 성공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4일 오전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당선소감을 전하고 있다. ⓒ프레시안(전승표)

추미애 당선인은 지난 선거운동기간 동안 ‘당당한 경기, 든든한 추미애’를 외쳐왔다.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검증된 추진력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국회를 비롯해 도내 31개 시·군을 움직여 경기도민의 삶을 바꾸겠다는 자신감이었다.

판사와 6선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비롯해 법무부 장관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을 거쳐온 추 당선인은 매 순간마다 거친 저항에 부딪히는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특유의 책임감과 뚝심으로 이를 극복하고 개혁을 달성하며 ‘추다르크(추미애와 잔다르크를 합친 말)’와 ‘추 장군’ 등의 애칭으로 불리어 왔다.

추 당선인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대 지방정부인 경기도의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인의 초등학생 시절 모습.(맨왼쪽) ⓒ추미애 선거캠프

□ 가난한 세탁소집 둘째 딸에서 판사로

1958년 10월 23일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둘째이자 차녀로 태어난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인해 3살의 나이부터 부모의 곁을 떠나 외갓집에 맡겨져 성장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은 이 같은 가정 형편에 대해 ‘가난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이유고, 어려운 환경은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며 공부에 매진,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을 통해 판사로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추 당선인의 ‘추다르크’ 기질은 판사 시절부터 드러났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법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보루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권력의 요구에 맞선 채 부당한 영장 발부를 거부하는 등 사법 정의의 실현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실제 춘천지법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1986년 전두환 정권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해 100권이 넘는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뒤 관련 출판사와 서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일제히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추 당선인은 ‘부당한 청구’라며 검찰의 모든 영장 청구를 기각했고, 결국 당시 법원장에게 큰 질책을 받았다.

이처럼 추 당선인의 판사 시절은 ‘법은 강한 사람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약한 사람을 위한 울타리여야 한다’는 믿음과 ‘국가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의 출발점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및 이희호 여사와 함께 선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인의 모습. ⓒ추미애 선거캠프

□ 김대중의 선택으로 시작된 정치 인생

법조계에서 사법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추 당선인이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 덕분이었다.

광주고등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95년 당시 정계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김대중의 정계 입문 권유를 받은 추 당선인은 판사직을 사임하고, 같은 해 8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한 뒤 이듬해인 1996년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 지역구에 출마해 초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에 따라 추 당선인은 제6공화국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서울지역의 첫 여성 지역구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당시 추 당선인은 여성 정치인의 당선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날마다 골목 곳곳을 누비고 시민을 만나며 지역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처럼 법정에서 만난 국민의 삶과 지역주민의 목소리는 물론, 시대가 남긴 아픈 역사 및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개혁의 과제 등은 추 당선인의 정치를 늘 현장에 머물도록 한 배경이 됐다.

이 같은 추 당선인의 정치 인생에서 뺄 수 없는 장면은 ‘제주 4·3’이다.

초선 국회의원에 불과했던 추 당선인은 당시 어느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던 제주4·3의 진실과 명예회복을 위해 수형인명부를 통해 억울한 희생의 기록을 확인하고,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을 제도와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또 제주4·3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 오랜 시간 국가가 외면해 온 역사를 국회의 책임으로 만들었다.

이는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폭력을 바로잡는 일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억울한 피해자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국가가 국민 앞에 책임지는 모습을 통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은 훗날 법무부 장관 시절까지 이어졌다.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인의 판사시절 모습. ⓒ추미애 선거캠프

□ 민주주의 실현의 길목마다 서 있던 정치인

추 당선인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및 문재인 정부를 거쳐 이재명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개혁 진영의 중요한 길목마다 맡은 바 소임에 충실했던 정치인이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맡고 있던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던 당시 국정농단 세력에 맞서 국민의 탄핵 요구를 정치의 책임으로 받아 안아 촛불 민심이 분노에 머물지 않고 헌정질서 회복과 정권교체로 이어지도록 당을 이끌었다.

또 흔들리는 당을 추스르고 국민의 열망을 정권교체의 동력으로 모아 2017년 대선 승리를 이끌며 촛불정부 탄생의 길을 연 뒤 이어진 지방선거와 보권선거까지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를 만들어 냈다.

그는 당시 국민들이 염원하던 권력기관, 특히 검찰 개혁을 위해 제67대 법무부 장관직을 수락, 검찰권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사법 정의가 특권의 방패가 되지 않도록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과 맞서 싸워 나갔다.

그 과정에서 거친 비난도 감수해야 했지만, 추 당선인은 물러서지 않은 채 자신의 역할에 매진했다.

추 당선인이 강조한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결국 12·3 내란사태를 통해 검찰권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정치권력화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민 위에 서려 할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통해 확인됐다.

그는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국회에 돌아온 이후 6선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아 검찰권 남용을 바로잡고, 사법 정의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세우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민주적 통제 아래 놓이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2020년 1월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인. ⓒ추미애 선거캠프

□ 책임의 길을 걸어온 추미애… 이제는 경기도를 책임진다

군사정권 시절 법정에서, 제주4·3의 아픈 역사 앞에서, 지역주의의 높은 벽 앞에서, 촛불 민심의 한복판에서, 검찰개혁의 거센 저항 앞에서 맞닥뜨린 크고 작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다해왔던 추 당선인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경기도와 경기도민의 오늘과 내일을 책임질 준비를 마쳤다.

판사로 법의 원칙을 배웠고, 국회의원으로 제도를 만들었으며, 당대표로 선거를 이겼고, 법무부 장관으로 국가 행정의 무게를 감당한 뒤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적 완성까지 추진하는 과정을 통해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섭렵한 추 당선인은 중앙정부와 국회는 물론, 31개 시·군을 움직여 경기도민의 요구를 정책과 예산 및 제도를 성과로 바꿔내겠다는 각오다.

추 당선인은 "경기도민의 선택을 무겁게 받들어, 이재명 정부와 함께 경기도에서 대한민국 정상화를 완성하고 도민의 삶을 실제 성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전승표

경기인천취재본부 전승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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