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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북,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진다? 평화는 정상회담의 '선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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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북,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진다? 평화는 정상회담의 '선물' 아냐

[김동엽의 '이게 안보여'] 미중 관리경쟁, 조중 재배열, 조미대화 기대 속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

지난 5월 미중 두 정상이 베이징에서 만났다. 회담은 끝났고, 한반도를 둘러싼 시선은 벌써 다음 장면으로 옮겨간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평양을 찾는다. 조중정상회담이 열리고 언젠가 조미(북중)정상회담까지 이어지면 남북관계도 다시 풀리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익숙한 기대다. 한반도 정세가 막힐 때마다 우리는 외부의 큰 회담에 시선을 걸었다. 미중이 안정되면 한반도도 안정되리라 생각했고, 조미가 만나면 남북관계도 열리리라 기대했다. 한반도 평화를 강대국 정상회담의 시간표에 얹는 순간 한국은 다시 '기다리는 나라'가 된다.

이번 미중정상회담의 본질은 대결의 해소가 아니라 경쟁의 관리였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밀어내고 싶지만 완전히 방치할 수 없고, 충돌하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도 알고 있다. 미국은 무역, 관세, 농산물, 항공기, 제조업, 공급망을 앞세웠다. 중국은 대만, 기술, 전략적 안정, 대국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강조했다. 양측은 같은 회담장에 앉았지만 같은 언어로 말하지 않았다. 미국은 거래를 말했고, 중국은 질서를 말했다. 미국은 얻어낼 것을 보았고, 중국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확인하려 했다.

한반도는 미중정상회담의 중심 의제가 아니었다. 중국 측 발표에서 한반도가 거론되었다고 해도 한반도 문제는 미중관계의 독립 의제라기보다 대만, 중동, 우크라이나, 공급망, 기술통제와 함께 관리되어야 할 지역 문제 중 하나로 놓였을 가능성이 크다. 미중관계의 안정이 곧 한반도 평화는 아니다. 강대국의 안정은 주변 지역의 평화를 만들기보다 긴장을 관리 가능한 수준에 묶어두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중이 충돌을 피하려는 움직임은 한국에 단기적 안도감을 줄 수 있다. 안도감이 한국의 평화와 주권적 선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미중 관리경쟁과 조중 재배열

시진핑의 평양 방문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조중관계가 과거 혈맹으로 단순 복원되고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변화한 국제질서 속에서 조중관계가 새롭게 재배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밀착만으로 외교 공간을 구성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중국은 조선이 지나치게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흐름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낸다. 조선과 중국 모두 미국, 러시아, 한국, 한미일 협력, 우크라이나 전쟁, 동북아 질서 관리 속에서 서로의 존재와 가치를 다시 계산하고 있다.

조선은 더 이상 수동적 완충지대가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가치를 높이며 자율성을 키우는 핵을 품은 적극적 완충국가다. 조러관계에 이어 조중관계가 재배열될수록 조선의 조미대화 절박성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밀착과 후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조선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서둘러 나갈 이유가 줄어든다. 시진핑의 평양 방문을 곧 조미정상회담의 예고편이나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으로 읽는 일은 성급하다. 중국은 한반도의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의 평화 구상을 대신 설계해 주지도 않는다.

시진핑의 평양 방문 하루 전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의 담화는 현실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미중정상회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재확인했다"는 미국의 언급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담화는 김정은이 6월 3일 새 핵물질 생산시설을 시찰한 지 사흘 만에 나왔다. '방북 전야', '핵물질 생산시설 공개', '비핵화 거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우연한 배치로 보기 어렵다.

조선은 조중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가 의제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못 박았다. 미국이 말한 비핵화 재확인은 거짓정보이며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한계선이라고 했다. 핵무력은 헌법에 의해 고착된 국가주권과 방위의 핵심력량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이 서둘러 미국과 마주 앉을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설령 조미대화가 열린다 해도 과거 비핵화 협상의 구조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조미정상회담의 함정: 평화인가, 주변화인가

정작 위험한 것은 회담의 성사 여부가 아니라 회담에 거는 기대가 한국의 전략을 대신하는 상황이다. 대화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조미정상회담을 한반도 평화의 입구로 당연시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조선은 이미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고, 군사분계선 일대의 물리적 단절 조치까지 강화하고 있다. 통일, 민족, 화해의 언어는 공식 담론에서 구조적으로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한국이 과거처럼 조미대화의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조미대화 가능성은 낮고, 열린다 해도 조선은 한국을 의미 있는 당사자로 끼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조미대화가 열린다면 성사보다 구조가 더 중요하다. 한국의 구상과 역할이 배제된 조미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의 입구가 아니라 한국의 주변화를 고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조미 간 긴장이 조금 풀리면 한반도 전쟁 위험이 낮아지는 듯 보일 수 있다. 그 틈에서 주한미군의 대중국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될 수 있다.

한반도 방위 부담이 줄었다는 판단이 생기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만해협, 남중국해, 중동 등 외부 전장과 더 강하게 연결하려 할 수 있다. 조미대화가 한국 배제형 거래, 핵보유 지위의 정치적 승인, 한국이 빠진 핵위험 관리로 흐른다면 평화가 아니라 새로운 연루의 위험이 커진다.

조선만큼이나 한국에도 전략적 자율성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동맹이 한국의 모든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중국과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중국이 한반도 평화의 보증인이 될 수는 없다. 조미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미정상회담이 남북관계 복원의 자동 통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한국은 정상회담의 연쇄를 기다리는 나라가 아니라 정상회담들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작동할 수 있는 평화관리의 기준을 가진 나라가 되어야 한다.

▲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20일 평양에서 만나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우리식 평화공존: 제한적 조건부 위험관리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과거의 민족공동체 담론만 반복할 수도 없다. 조선의 주장을 사실상 수용하면 남북관계의 헌법적·역사적 특수성을 스스로 내려놓게 된다. 낡은 언어를 반복하면 달라진 현실을 보지 못한다. 둘 다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제3의 길, '우리식 평화적 두 국가'다.

우리식 평화적 두 국가는 조선을 정식 국가로 승인하거나 통일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헌법 제4조의 평화적 통일 지향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의 남북관계는 장기 단절, 군사적 적대, 우발충돌 위험 속에 놓여 있다. 통일 지향이라는 헌법 원칙과 충돌 방지라는 현실 과제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 서로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전쟁을 막고, 충돌을 관리하며, 시민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관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통일 포기가 아니라 평화의 조건을 쌓는 일이다. 감정적 맞대응이 아니라 헌법적 평화관리다.

우리식 평화공존은 상대가 당장 손을 잡아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선이 한국을 대화와 제도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평화공존은 남측만의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진지하게 받아야 할 비판이다. 평화공존의 첫걸음은 남북 합의문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응답이 없어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제도화하는 데 있다.

우리가 해야 일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국민을 지키는 보호와 사고방지다. 접경지역 주민의 대피와 경보 체계, 우발충돌 발생 시 정부 대응 절차, 국회 보고와 위기 단계별 재검토가 여기에 속한다. 조선의 상응 조치가 필요 없고, 양보도 아니며, 안보 불안이 커질수록 더 절실해지는 조치다. 오물 풍선이 날아오고 서해에서 사격이 벌어질수록 시민이 원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규칙과 작동하는 연락망이다.

다른 하나는 군사행동의 절제처럼 상대의 행동과 맞물리는 조치다. 일방적 양보가 아니라 상호적·조건부로 군사적 비례성의 원칙 위에서 다루어야 한다. 전단 문제처럼 표현의 자유와 헌법적으로 충돌해온 사안은 일률적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별도의 신중한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요컨대 평화공존은 무조건적 양보가 아니라 제한적이고 조건부적인 위험관리다. 국민 안전, 군사적 비례성, 국회 보고, 위기 단계별 재검토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위기관리 기준선은 도발 앞의 인내가 아니라, 도발이 전쟁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차단장치다. 적대 관계에 놓인 사이에서도 사고는 피하자는 것, 그것이 우리식 평화공존의 출발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가능한 평화관리

정치적 기동 공간은 좁다. 한국 사회는 극심하게 양극화되어 있고, 평화라는 말조차 진영의 언어로 소비되기 쉽다. 평화공존을 거대한 이념으로 말하기보다 국민 안전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평화 담론에 동의하지 않아도 사고 방지와 국민 안전에는 동의할 수 있다. 접경지역 주민 안전, 군 장병 안전, 우발충돌 방지, 경제 리스크 관리, 국회 보고와 사전협의 절차 같은 낮은 수준의 공통분모가 정치적 기동 공간이다.

원칙은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부는 조미대화가 열리든 열리지 않든 한국 배제형 거래를 막을 기준을 세워야 한다. 국회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군사적 대응과 동맹 운용을 점검할 최소한의 보고·감독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절대적 거부권의 문제가 아니라 역외 운용의 사전협의, 한반도 안보영향 평가, 국회 보고를 통해 자동적이고 묵시적인 연루를 막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접경지역 주민의 삶과 전쟁 공포를 평화 의제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평화공존은 조선을 좋아하자는 말이 아니다. 전쟁을 막기 위한 현실적 전략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미중관계가 안정될 것인가가 아니라, 안정되든 불안정하든 한국은 어떤 평화공존 질서를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조중 재배열이 조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인가가 아니라, 조중 재배열 속에서 한국의 전략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인가가 아니라, 열리든 열리지 않든 한국이 배제되지 않기 위한 기준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식 평화공존은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낙관론이 아니다. 조선은 응답하지 않을 수 있고,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넓히려 할 수 있으며, 국내 정치는 평화공존을 굴종이나 안보 포기로 몰아갈 수 있다.

운동장이 평평한 척하지 않겠다. 비대칭적 인내, 제한된 동맹 통제력, 기울어진 억제 구조는 부정할 수 없는 조건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가능한 최선은 조건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것부터 제도로 묶어 기울기를 한 뼘 씩 되돌리는 것이다. 평화공존은 선의에 기대는 전략이 아니라, 나쁜 조건에서도 사고를 줄이는 제한전략이다.

평화공존은 약함의 언어가 아니다. 충돌을 관리하는 능력이고, 위기를 통제하는 제도이며, 강대국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지키는 전략의 언어다. 한반도 평화는 미중, 조중, 조미 정상회담의 선물도, 부속 결과도 아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설계해야 할 생존의 질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기대의 외주화가 아니라 평화공존의 주체화다.

김동엽

김동엽 교수는 해군과 국방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1년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국방부에서 북핵과 군사회담을 담당했고, 예편 이후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 민족공동체지도자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지금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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