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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로컬푸드 이야기] 대전은 어떻게 '빵의 도시'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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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로컬푸드 이야기] 대전은 어떻게 '빵의 도시'가 되었나

철길을 타고 온 밀가루, 한 도시를 빚다

주말 아침의 대전역 앞 풍경은 십수 년 전과 사뭇 다르다. 캐리어를 끌고 내린 사람들이 개찰구를 나서자마자 향하는 곳은 관광안내소가 아니라 한 빵집의 긴 줄이다.

빵 상자를 한 아름 안고 다시 기차에 오르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도시 하나가 음식 하나로 기억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대전은 어느새 '빵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부터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별명이 같은 재료, 곧 밀가루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쌀의 나라에서 유독 대전만이 밀가루 음식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갖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식품을 공부하고 음식 기사를 써 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 사연이 단순한 향토 자랑거리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와 먹거리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사회사라고 생각한다.

철길이 만든 도시, 밀가루가 모인 도시

대전은 철도가 만든 도시다. 1905년 경부선이 지나가고 1914년 호남선이 갈라져 나가면서 한적한 농촌 마을이 한반도 물류의 십자로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지리적 운명은 한국전쟁 전후 밀가루의 흐름에서 결정적으로 작동했다.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에 미국의 원조 밀가루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막대한 구호 물자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려면 모이고 쌓이고 다시 흩어지는 거점이 필요했는데 사방으로 철길이 뻗은 대전이 바로 그 자리였다.

대전역 일대에는 밀가루가 산처럼 쌓였고 그 주변으로 제분 공장이 모여들었다. 쌀은 귀하고 밀가루는 흔하던 시절, 사람들은 이 값싸고 풍부한 가루를 칼국수로, 수제비로, 빵으로 바꾸어 끼니를 이었다.

오늘날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이 1956년 한 피란민이 미군에게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빵을 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이 도시의 음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여기에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철도의 요충지였던 대전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흘러든 도시였다. 한때는 토박이보다 외지에서 온 이들이 더 많았다고 할 만큼 인구의 이동이 컸다.

팔도에서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의 손맛으로 같은 밀가루를 주물렀고, 그 다채로운 변주가 대전 칼국수의 깊이와 다양성을 만들었다. 멸치 육수와 사골 육수, 들깨와 두부, 얼큰한 것과 담백한 것이 한 도시 안에 공존하는 풍경은 그렇게 빚어졌다.

잊혀진 사실 하나, 대전도 밀을 길렀다

그런데 대전의 밀 이야기를 '외부에서 들어온 원조 밀가루'로만 설명하면 절반만 말한 것이 된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대전도 오래전부터 밀을 길러 온 땅이라는 점이다. 유성 세동 일대를 비롯한 대전 인근은 보리와 밀을 번갈아 짓던 이모작의 전통이 남아 있던 곳이다.

이 토착의 기억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대전의 밀 문화가 전적으로 바깥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지역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철길을 타고 온 외래의 밀가루와 이 땅에서 자란 토착의 밀이 만나는 지점, 거기에 대전 밀 음식의 진짜 정체성이 있다.

향토성과 근대성이 한 그릇에 담긴 셈이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끊어진 이 토착의 고리를 어떻게 되살리느냐가 대전 먹거리의 미래를 가르는 문제가 된다.

빵과 커피가 도시를 바꾸다

음식이 도시의 운명을 바꾼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성심당을 목적지로 삼아 외지인이 대전을 찾고, 그 발걸음이 인근 상권을 살리고, '빵지순례'라는 신조어가 여행의 한 양식이 되는 과정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단 하나의 강력한 미식 앵커가 도시 전체를 여행지로 끌어올린 것이다. 대전은 인구당 빵집 밀도에서 전국 최고 수준을 다투는 도시가 되었다.

여기에 커피가 가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적 규모의 커피 재배는 되지 않지만 그것이 음식관광의 자원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강릉이 '커피 도시'가 된 것이 강릉에서 커피나무가 자라서가 아니듯, 중요한 것은 원료의 산지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의 밀도다.

빵과 커피라는 가장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기호식품이 한 도시의 얼굴이 되어 가는 현상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이 '경험의 지역성'이라는 논리는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려 한다.

그러나, 따라 할 수 있다는 것

여기까지가 빛나는 이야기다. 이제 외식산업 공부하는 식품학자로서 짚어야 할 그늘을 이야기할 차례다.

대전이 가진 자산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칼국수와 빵이라는 '아이템' 자체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빵 축제는 다른 도시도 연다. '빵의 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는 이미 여럿이다. 거리를 조성하고 축제를 키우고 마케팅 예산을 쏟는 경쟁은, 결국 더 큰 예산을 가진 쪽이 이기는 소모전으로 흐르기 쉽다. 선점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희석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밀의 도시'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대전에서 밀을 길러 그 밀로 음식을 만드는 고리가 끊겨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대전의 칼국수와 빵을 채우는 밀가루는 거의 전부 수입 밀이다.

로컬푸드를 연구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뼈아픈 역설이다. 도시의 정체성은 밀에 기대고 있는데, 그 밀은 지역과 무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전은 무엇으로 따라잡힐 수 없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답은 '아이템'이 아니라 '본질'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빵과 칼국수라는 메뉴는 모방되어도, 밀이라는 재료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그 음식이 이 도시에서 갖는 역사·문화의 서사는 하루아침에 복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밀의 쓰임은 가루를 내어 굽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밀을 싹 틔우면 GABA와 폴리페놀 같은 생리활성물질이 늘어나 그 자체로 기능성 식품의 원료가 된다.

또 발효라는 과정을 거치면 빵의 풍미와 소화 특성이 달라질 뿐 아니라, 발효밀을 소스와 면, 음료와 디저트에 더해 기존에 없던 색다른 향을 입힐 수도 있다.

같은 밀이라도 발아와 발효라는 과학을 입히는 순간, 빵과 칼국수를 넘어선 새로운 제품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도시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대전만의 깊이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지역에서 기른 밀로 지역의 음식을 만드는 끊어진 순환의 복원까지 더해진다면 대전의 밀 음식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갖게 될 것이다.

밀가루 한 봉지에 담긴 이 도시의 사회사는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이야기다.

철길을 타고 온 밀가루가 한 도시를 빚었다면 이제는 그 도시가 밀가루의 다음 이야기를 스스로 써야 할 차례다.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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