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로 시작하자. 강릉은 어떻게 '커피 도시'가 되었을까. 강릉에서 커피나무가 자라기 때문이라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생두는 거의 전량 적도 부근에서 건너온 수입품이고, 강릉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러 강릉에 간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줄을 서고, 로스터리를 순례하고, 커피 축제에 모인다. 원료는 지구 반대편에서 왔는데, 그 경험만은 분명히 '강릉의 것'이다.
이 역설 속에 로컬푸드와 음식관광의 가장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어떤 음식이 한 지역의 자원이 되는 조건은 '원료가 그곳에서 났는가'가 아니라 '그 경험을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경험의 지역성'이라고 부른다.
와인에는 테루아가 있고, 도시에는 경험이 있다
와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테루아(terroir)다.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토양과 기후, 그 땅의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난다는 것, 그래서 와인은 복제할 수 없는 장소의 산물이라는 개념이다.
농산물에 기반한 로컬푸드의 가치는 본래 이 테루아에서 출발한다. 그 지역의 흙과 볕이 길러낸 것은 다른 곳에서 똑같이 만들 수 없으니까.
그런데 커피와 빵처럼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기호식품에는 테루아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영영 지역의 자원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원료의 테루아가 없는 자리를 '경험의 테루아'가 대신 채우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와 함께,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쳐 그 한 잔과 한 조각을 만나느냐. 이 경험의 총합이 장소에 묶이는 순간, 그것은 그 도시에서만 가능한 미식이 된다. 강릉의 커피가, 대전의 빵이 그렇게 자원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경험의 지역성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밀도의 문제다. 카페 한 곳으로는 부족하다. 로스터리와 바리스타, 축제와 거리, 그 도시의 풍경과 이야기가 한데 모여 임계점을 넘을 때 비로소 '그 도시에 가야 할 이유'가 만들어진다. 단일 명소(앵커)가 사람을 부른다면, 그 사람을 머물게 하고 다시 오게 하는 것은 도시 전체에 퍼진 경험의 밀도다.
그리고, 수입 작물에도 '산지'가 생기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커피는 수입 작물이라고 단정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도 커피나무를 직접 기르는 농장이 있다. 강원과 충청, 경남, 제주 등지에서 온실과 하우스로 커피를 재배하며 수확과 로스팅까지 체험하게 하는 농장들이 그것이다. 상업적으로 자급할 만한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관광·체험 자원으로서의 가치는 분명하다.
오히려 이 체험형 커피 농장은 '경험의 지역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사람들은 그 농장의 커피가 값싸거나 품질이 압도적이어서 찾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를 직접 보고, 열매를 따고, 볶아본다'는 경험 그 자체를 사러 가는 것이다.
원료의 경제성이 아니라 경험의 희소성이 자원이 되는 전형이다. 식품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는 1차 농산물(생두)을 관광·교육·가공의 3차 경험으로 전환한 6차산업화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빵이든 커피든, 핵심은 원료의 출신지가 아니라 그것을 무엇으로 바꿔내느냐에 있다.
카페와 빵집은 지역 농산물의 가장 좋은 '출구'다
경험의 지역성을 강조하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원료가 어디서 왔든 상관없다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말은 정반대다. 경험의 지역성을 갖춘 카페와 빵집이야말로 지역 농산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커피 원두 자체는 수입이지만, 카페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디저트와 베이커리, 시그니처 음료다. 그리고 이들의 부재료는 거의 전부 지역에서 조달할 수 있다.
우유와 계란, 제철 과일, 쌀과 콩, 꿀과 견과. 지역 딸기로 만든 봄 한정 음료, 지역 쌀로 구운 디저트, 지역 우유로 내린 라테는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잔을 내미는 프랜차이즈가 흉내 낼 수 없는 차별화가 된다.
빵집도 마찬가지다. 밀가루는 수입이어도 그 안에 들어가는 팥과 밤, 과일과 채소는 지역의 것일 수 있다.
전국에 10만 곳에 육박하는 커피전문점과, 인구당 밀도 전국 최고를 다투는 대전의 빵집을 떠올려 보라.
이 거대한 가공·소비의 현장이 지역 농산물을 조금씩만 끌어안아도, 그 합은 결코 작지 않다. 카페와 빵집은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니라, 지역 농산물의 가공 수요처이자 가장 친근한 홍보 매체가 될 수 있다. 손님은 매일 그 음료와 빵을 통해 지역의 농산물을 맛보고, 그 맛으로 지역을 기억하게 된다.
경험을 깊게 하는 것은 결국 과학과 이야기다
그렇다면 경험의 지역성은 무엇으로 더 깊어질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이다.
이야기는 그 한 잔과 한 조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들려준다. 원두를 볶은 사람의 철학, 빵에 들어간 지역 농가의 이름, 그 도시가 그 음식과 맺어온 역사. 이 서사가 입혀질 때 같은 커피도 다른 맛이 난다.
과학은 그 경험을 객관적인 언어로 끌어올린다. 산지와 배전도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의 향미를 분석하고, 발효와 숙성이 빵에 부여하는 풍미를 규명하는 일이다.
커피와 차의 향미 연구가 그 산업의 고급화를 이끌어 왔듯, 우리 기호식품의 경험도 과학으로 뒷받침될 때 더 단단해진다. 감각의 영역에 머물던 '맛있다'를 '왜 맛있는가'로 설명할 수 있을 때, 경험은 비로소 전문성이 된다.
원료의 산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경험의 지역성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강릉이 바다와 커피로, 대전이 철길과 빵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다음 질문은 분명하다. 이 경험을, 그리고 그 경험이 끌어들이는 지역 농산물의 흐름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지역의 미래로 키워낼 것인가. 다음 글에서 그 길을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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