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잘못 누르면 다 날아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어떻게 공급되고 또 폐기될까? 이 모든 과정은 클린룸 밖에서 이뤄진다. 승민이 담당한 일이 바로 화학물질 공급에 관여하는 일이었다. 승민은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의 CCSS룸에서 근무했다.
CCSS(Central Chemical Supply System, 화학물질 중앙 공급 시스템)룸은 생산라인에 각종 화학물질을 공급하는 설비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CCSS의 주요 기능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강산, 알칼리, 유기용제 등을 드럼 또는 탱크에 저장 △포토, 에칭, 세정 등 반도체의 각 공정 장비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배관을 통해 정량으로 자동공급 △화학물질의 저장, 이동, 누설 여부 등을 센서와 컴퓨터 시스템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승민은 화학물질 운반(delivery)과 충전(charge)을 주로 담당했다. 주기적으로 드럼 교체, 탱크 충전, 배관 세정, 부속품 수리·교체 등의 작업을 수행하며, 이 과정에서 불산·황산·질산 등 고순도 독성화학물질에 노출됐다.
아무래도 제가 삼성이다 보니까 복지나 근무 형태 같은 것도 당연히 비교되고 그래서 그런 거에 대한 불만도 되게 많았었고요. 그리고 당연히 위험한 일임을 딱 인지를 하고 있었거든요. 위험한 일인 거를 너무도 알고 있어서 그거를 자기가 까딱 잘못하면,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난다라는 걸 알고 있어서 오빠가 그래서 좀 예민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도 그래서 제가 신입들 들어왔을 때 오빠가 엄하게 가르치는 걸 알았을 때 "왜 그러냐. 따뜻하게 좀 감싸줘라, 알려줘라" 했는데 "이거 버튼 잘못 누르면 다 날아가" 그래서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예민하기도 했고, 이렇게 힘든데 그만큼의 보상이나 이런 거는 적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고과를 받거나 이런 거 보면 일도 그냥 꽤 잘했던 것 같아요. 근데 당연히 뭐 그 일을 좋아서 하는 거라기보다는 생계형으로 한 거니까. 오빠가 이 투병을 하면서 복귀 의지가 있었어요. 처음에 컨디션이 좋을 때는. 근데 이 복귀 의지를 다질 때 제가 그랬거든요. 저는 당연히 복귀를 못 할 거를 알고 있었으니까 한 말인데 "아니 왜 그 위험한 일을 다시 또 하려고 하냐"고 그랬을 때 오빠가 했던 말이 "배운 게 이건데 어떡해. 돈 벌려면 가야지." 이런 말했었거든요. 딱 그런 말만 들어도 '이 일은 너무 재밌어. 하면 뿌듯해'가 아니라 그냥 한 거죠.
내가 여기 왜 있지
일을 한 지 14년이 지난 2023년 11월이었다.
몇 달 전부터 갑자기 맨날 밥 먹던 곳인데 '내가 여기 왜 있지?' 막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퇴식구를 못 찾았대요. 그래서 '나 왜 이러냐' 하면서 속도 안 좋고 그래서 밖으로 나왔는데 누구한테 전화해야겠다 했는데 전화번호, 그 사람 이름도 생각이 안 나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저희가 처음에는 신경과에 갔는데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하고. 뇌 혈류 검사나 이런 검사가 정상이어가지고. 근데 종양은 CT나 MRI에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혈류는 정상이래요. 뇌파 검사랑 혈류 그 두 개가 정상이어서 저희는 신경과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를 간 거였거든요. 그랬더니 거기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으니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황장애 진단도 받고 그랬는데 그 약을 먹어도 개선이 없는 거죠.
두통이 개선되지 않아서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서도 진단할 때 저희랑 같이 입원실에 들어온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고 막 소리 고래고래 지르면서 막 너무 괴로워하는데 아무 일도 없다고 그냥 퇴원하시는 거예요. 근데 저희는 결과가 계속 안 나와요. 근데 알고 봤더니 이제 그런 일이 있어서 자기들끼리도 메인 교수님이 안 계시니까 그 밑에 선생님들끼리 얘기를 하다가 저를 따로 불러서 "혹시 이 근처에 사시냐. 아이가 몇 살이냐. 무슨 일 하시냐." 이런 걸 물어보는 거예요. "진단하는데 그게 왜 필요하냐." 그랬더니 저희가 고려해서 말해야 할 게 있대요. 그때 이제 "저기 이대성 님 지금 뇌종양이시고요." 오빠는 약 먹고 자고 있었어요.
남은 수명은 15개월
저 나오라고 해서 설명을 하는데, 모니터에 MRI 사진이 띄워져 있는데 정말 모르는 사람이 봐도 보이는 종양이. 저희가 뇌가 이렇게 대칭으로 데칼코마니처럼 있는데 거기에 너무 핵 같은 게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게 뭔가, 큰일 났다' 싶었는데 그때부터 막 무슨 소리 하는지 솔직히 잘 안 들리고 그런 말이 들렸어요."잘 치료하셔도 여명은 15개월이고 그리고 항암도 해야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해야 할 것이며 예후는 아주 안 좋습니다."흔히 말해서 췌장암이 제일 안 좋다고들 하는데 췌장암보다도 무서운 암이라면서 수술하고 나서는 지금의 상태보다 더 안 좋은 생활을 하실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영화 같은 데 보면 좀비 아시죠?" 하면서 좀비처럼 이 암세포는 주변을 갉아먹는, 침식하는 게 빠르다는 식으로 말을 해서 '이게 무슨 말인가. 꿈인가? 왜 이렇게 꿈을 리얼하게 꾸지' 막 이럴 정도로. 오빠한테 바로 알리지는 못했잖아요.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해서 두려움 없이 수술은 무사히 끝냈지만 결국 승민에게 알려야 하는 순간은 찾아왔다. 퇴원 후 식단 관리에 있어서 충돌이 생기자, 연주는 사실대로 말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생활 습관을 신경 써야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처음에는 그냥 "아 그래?" 하면서 받아들였는데 그 15개월이라는 단어가 꽂혔나 봐요. 제가 세게 말했거든요. 말을 들으라고. 음식 조절을 해야 된다. 그때부터 약간 날짜를 세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떨 때는 의지를 불태운다거나 어떨 때는 또 이렇게 좀 그랬다가.
(2024년) 2월에 수술하고 12월에 재발이 됐어요. 그동안은 집에서 지내고 제일 컨디션이 좋았던 게 12월까지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결혼기념일이 11월 29일이거든요. 그래서 11월 말일에 그 주에 제주도에 가서 저희가 그때가 또 10주년이었어요. 그래서 10주년 사진도 찍고 제주도 여행도 가고 그렇게 놀다가 12월 검진 때 재발이 되고. 그리고 (2025년) 4월에 오빠가 걷는 게 조금 힘들어져가지고 가보니까 수두증으로 뇌에 물이 찬 거죠. 그 물 빼는 수술을 하고부터는 누워 있게 됐어요. 그게 4월 말에 수술을 한 거라 그래서 4월 이후부터 5월, 6월, 7월까지 있다가 그래서 7월에 이제 떠나게 됐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하는데 암 환자 한 명, 백혈병 한 명 있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저희도 비슷한 일을 했던 종사자로서 저희도 MSDS*나 PSM* 이런 거를 외울 때 보면 위험 물질을 외우니까. 근데 오빠는 그거를 직접 접촉하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발병 원인에) 이걸 배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들었고, 산재 준비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겠다 싶어서 마음을 접었다가 반올림을 만나게 된 게 힘을 얻어가지고 다시 준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 단체가 이런 거다라고 알고서 생각해보니까 제가 신입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거든요. 근데 저희 기숙사 후문에 항상 황유미 님 사건으로 와서 하는 거를 들었었어요. 근데 그때는 저도 교대 근무니까 제가 자야 하는 시간에 와가지고 하고, 창문 조금 더워서 열어놨는데 그렇게 하니까 너무 시끄럽고 막 그랬거든요. '그냥 삼성을 망하게 하려는 그런 단체야'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밖에서도 주변 친구들이 걱정을 했어요. "너 일하는 거 괜찮아?" 이렇게 말을 하면 '여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을 하는데 당연히 암 환자 한 명 있고, 백혈병 한 명 있는 거는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저도 이렇게 만나서 인터뷰를 해보니, 그 피해자를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이거 이렇게 드문 병인데 이렇게나 많아?'가 된 거죠.
그제야 저도 '아 위험한 일이구나'를 알게 되기도 했고 제가 그래서 퇴사한 것도 다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기는 한데 그 위험한 일이라는 거에 이제 저는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도 컸던 것 같아요.
처음에 오빠가 산재를 반대했었어요. 하는 거를.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복귀 의지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자기는 다시 회사로 가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산재는 안 했으면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오빠가 마음을 돌아서게 된 계기가 "오빠 총대 메는 거 좋아하잖아. 오빠가 총대를 메고 이거를 알리고 해야 개선이 된다, 그래야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조금은 수월하게 하고 위험한 일이니까 조금은 더 보호받을 수 있고 개선이 되는 거지 않겠냐"라고 하니까 마음이 돌아서더라고요. 왜냐하면 자기도 위험한 일인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이게 만약에 승인이 된다고 하면은 이걸로 인해서 남아 있는 동료들이 아무래도 개선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가 2013년에 불산 사고 이후에도 협력사에도 되게 많은 변화가 있었거든요. 오빠도 그때도 다 근무하는 사람이었었고. 근데 이 일로 인해서 이제 또 개선되는 그런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2013년 1월 27일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11라인 CCSS룸에서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수습한 협력업체 직원 5명 중 1명이 사망했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중대산업재해 이후 2014년부터는 CCSS룸에서 전면마스크 등 보호구 착용이 의무화됐다.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에 변화가 생긴다. 사고가 생기기 전 선제적인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현실은 그 반대이다. 그러나 산재로 인정된다고 사업장에서 작업환경을 개선할 의무가 즉각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사회적 압력이 생길 때에야 사업주는 움직인다. 승민의 사안이 널리 알려져 남아 있는 동료들의 업무 환경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협력'이라는 단어의 의미
저도 임직원일 때 그런 이미지가 조금 있었거든요. 협력업체는 위험한 일을 해도 되는 존재. '협력'이라는 그 단어 그 자체로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하기 꺼리고 우리가 하기 번거롭거나 싫은 일을 하는 이미지였어요. 저희가 어릴 때부터도. 임직원 자체도 보면 개 중에 몇 분들은 무시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었고. 이 일을 원래 임직원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한 게 (불산 누출)사고가 터지고 난 다음이었거든요. 그런 거 봐도 이 책임의 소재를 원래는 이쪽으로 넘기려고 했다가 너무 큰일이 일어나니까 가져간 것 같은데 일하는 도구로 취급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원청업체와 원청 직원들 사이에서 협력업체는 어떤 존재일까. 반도체 산업에서는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가 주로 외주화되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협력업체에 붙은 협력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따름이다. 그러나 위험한 일을 대신 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협력업체 직원들을 힘든 일을 떠맡는 사람, 일하는 도구가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이승민의 이야기 끝.
*이름은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가명으로 처리했음을 밝힙니다.
※ 용어 설명
·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 : 물질안전보건자료로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작성되는 자료이다. 제품명, 성분 및 성질, 취급 시 주의 사항, 응급처치 요령 등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 PSM(Process Safety Management) : 공정안전관리를 뜻한다. 유해·위험 물질 및 설비를 보유한 사업장이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해 안전보건공단에 제출하고 그 적합성에 대해서 심사 및 확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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