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는 아직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60년대. 진달래 꽃과 종달새를 들고 울릉도를 찾은 노인이 있다.
연회색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고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은 전북 부안의 야산에서 갈무리한 진달래 몇 그루와 정성들여 키운 종달새를 소중하게 안아들고 먼 바다를 건너 울릉도에 닿았다.
노인이 캐어 온 진달래는 울릉도의 초등학교와 병원의 앞마당에 뿌리를 내렸다. 노고지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종달새는 울릉도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며 명랑한 노래소리를 들려주었다.
이 노인은 한때 한반도를 넘어 국제적으로 활동하던 사회주의 항일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遲耘 金錣洙, 1893~1986)선생이다.
선생은 부안군 백산면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와세다 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국내에 들어왔다가 1920년대 초반 상해로 건너가 고려공산당 창당에 깊이 관여했다.
그 뒤 국내로 들어와 활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1년 6개월간 거주제한형을 받아 고향에 머물렀다. 이후에도 지운선생은 꾸준히 국내에서 조선공산당 조직 재건에 힘을 쏟다가 1930년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는다. 1938년 감형을 받고 풀려났으나 1940년에 시행된 '예방구금'으로 공주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지운 김철수 선생은 이후에도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한 활동을 펼쳤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정치의 꿈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웃들과 어울려 소박한 삶을 살았다.
부안 땅과 부안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부안이야기>는 최근에 발간된 34호를 통해 말년에 부안으로 돌아와 지인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던 지운 김철수 선생의 감동적인 글과 행적들을 정재철 부안역사문화연구소장이 정리한 글로 소개했다.
지운선생의 유품과 기록을 일부 간직하고 있는 정재철 소장은 1984년 지운이 울릉도 사람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와 김제 구미마을에 사는 최씨로부터 받은 두 통을 소개한다.
앞서 진달래와 종달새를 전해준 울릉도에 가고 싶었던 지운선생은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내심 낙담하고 있던 차에 자신의 딸이 울릉도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딸 편에 부치기 위해 쓴 편지였다.
생전에 지운 선생은 지인과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독도와 울릉도에 종달새와 진달래가 없다고 그러데. 그래서 일본 놈들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잖어. 독도에 가까운 울릉도를 갈 때 종달새와 진달래를 갖고 가서 국민학교에 진달래를 심은 적이 있었네."
선생의 울릉도에 대한 사랑은 남달라서 그의 대표적인 서예작품인 '고고고고(古枯孤高)'는 울릉도 선착장에 외롭게 서 오랜 세월을 버틴 향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남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을 조국의 통일과 평화를 바라다 영면에 든 지운 선생의 바람은 지금 울릉도에서 꽃이 피고 종다리의 노랫소리로 살아 있을까?
<부안이야기>34호에는 지운 김철수 선생의 편지글 말고도 황태규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학장이 쓴 칼럼으로 첫 장을 연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부안과 인연을 맺은 황 학장은 청소년기를 오롯이 부안에서 보내며 겪었던 풍경과 냄새, 추억을 한 아름 선물하면서 다가올 부안의 미래를 희망차게 이야기 한다.
성지현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사는 위도고등학교에서 재직했던 인연을 끝내 잊지 못하고 이번호에도 위도를 찾아 '위도 갓김치'를 담그던 할머니를 통해 옛날이야기를 나눈다.
부안의 포구에 대한 기획을 이어가고 있는 허철희 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는 검모포와 동상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부안에 자리를 잡고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김억 판화가는 지난호에 이어 이번에도 '미술가의 부안살이 기록'을 꾹꾹 눌러 담았다.
부안의 폐교 탐방을 이어가는 김강주 부안초등학교 교장은 이번에 사회복지법인 요양원으로 변한 주산면 동정초등학교터를 찾아 졸업생과 주민들의 기억을 소환했으며 아버지가 남긴 변산의 금구원에서 학예사로 있는 김정우는 한여름밤의 금구원과 조각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안의 아빠들로 구성된 중창단 '파드레 앙상블'을 취재한 이춘섭 부안지역사회복지협의회장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회원들의 따뜻하고 정겨운 안부를 전한다.
김형미 시인은 나비를 몰고와 부안에 정착한 청년인 '동그라미 치유농장'정은정 대표를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생태문화연구소장인 주용기씨는 새만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제언을 부안사람들과 공유하는 글을 보냈다.
조선 후비 김수민이 쓴 '유변산록(遊邊山錄)'을 번역해 두 번으로 나눠 싣고 있는 김대홍 프레시안 전북본부 국장은 '느리되 게으르지 말고, 빠르되 조급하지 않게하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전한다.
이번호의 맨 끝에는 부안의 물길과 간척지, 논농사'에 대해 지난호에 이어 기고를 하고 있는 김장근 무주농협 상임이사가 고부수리조합과 부안의 근대 수리의 시작에 대한 옛 자료를 발굴해 깊이 있게 조망하는 글을 실었다.
한편 <부안이야기>는 독자들의 후원과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연간 2회 발행되어 무료로 배포되고 있으며 부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은 다양한 글을 연중 접수(jjc29@daum.net)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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