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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친구' 시대를 향한 '토이 스토리'의 메시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장난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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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친구' 시대를 향한 '토이 스토리'의 메시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장난감이 아니다

[이동윤의 무비언박싱] <토이 스토리 5>

<토이 스토리>(1995)가 영화 역사에 기록된 이유는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장편영화라는 점 때문이었다. 장난감이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상상력은 3D 애니메이션과 만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현실적 감각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이후 5편의 시리즈물이 나오는데까지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우리에게 3D 애니메이션은 특별한 이미지가 아니게 되었고 주인공 동료를 위한 장난감들의 모험담도 거듭된 반복 속에서 독창성을 잃어갔다.

대신 '토이 스토리'가 구축한 것은 동심의 세계였다. 모든 프렌차이즈 영화들이 그러하듯, 시리즈가 거듭되면 결국 남는 것은 캐릭터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유행할 때도 우리는 서사보다 각각의 캐릭터에 몰입하며 열광하지 않았던가. 토이 스토리 또한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디, 버즈, 제시와 같은 다양한 인기 캐릭터들을 관객의 마음 속에 남겼다. 그들이 하나같이 지키려 했던 것은 주인이었던 앤디와 보니의 사랑이었다.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버림받지 않으려는 장난감들의 분투극을 보며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 보편적 욕망임을 깨달았다.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욕망이 질투(1편)에서 소멸의 공포(2편)로, 다시 소속감(3편)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4)으로 전개되며 그들이 존재하는 '동심의 세계'를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이고 싶었던 우디는 언젠가 버려질 운명을 거부하며 영원히 기억되기를 꿈꾸었고, 성장한 앤디를 떠난 뒤에는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 헤맸으며, 마침내 주인의 사랑으로부터도 독립된 삶을 선택했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도달한 것이다.

<토이 스토리 5>(2026)는 이전의 작품들이 제기해온 존재론적 질문 위에 '장난감의 세계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덧붙인다. 장난감이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수행해온 역할, 다시 말해 친구와 놀이의 의미가 릴리패드 캐릭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이 스토리 5>(2026)는 장난감들이 구축해온 동심의 세계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릴리패드와 대치하는 제시. ⓒ월트디즈니컴퍼니

우리는 모두 스크린의 이미지에 파묻혀 살아간다. 인터넷이란 가상 공간이 실제 세계를 압도한 것도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맺은 관계가 현실의 관계에 필적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시대에 인간과 장난감의 관계는 재정립될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여전히 옛 가치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고 새로운 변화에 압도당한 채로 끌려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과거의 가치를 유지하며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진입하는 것, 가장 이상적 선택이겠지만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토이 스토리 5>는 이러한 난제에 도전한다. 어딜 가도 아이들 앞에 핸드폰 스크린이 놓여 있는 세상을 이미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미디어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핸드폰을 빼앗을 수 없는 부모들에게, 장난감이 만드는 동심을 전한다는 것은 이미 구태의연한 주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 5>는 구태의연한 주장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친구란 무엇인가?', 그리고 '놀이란 무엇인가?' 두 질문은 장난감과 아이들의 관계를 성찰함으로써, 디지털 세계가 새롭게 만들어내는 놀이의 세계를 돌아보며 제기된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만히 고민하다 보면 문득 토이 스토리의 세계가 단지 아이들만의 세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동심(童心)은 아이들의 마음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한자어를 달리하면 동심(同心)은 마음을 같이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세계를 포괄한다. <토이 스토리 5>가 지향하는 세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릴리패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보니는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내성적인 탓이 크겠지만 그녀가 장난감을 대하는 태도를 지켜보면 그 어려움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장난감들은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통해 학습한 바에 따르면 배신하는 주체는 주인들이었고 상처받는 자는 장난감이었다. 보니는 장난감들의 의리에 안정감을 느끼며 그들과의 관계를 중심에 둔다. 여기서 핵심은 장난감과의 소통이 일방적이라는데 있다.

<토이 스토리 5>의 오프닝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보니의 세계로부터 시작한다. 즐거운 포키의 결혼식은 순식간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장르가 급반전하는 충격을 선사한다. 이런 상상력은 기존의 장르 법칙을 위배한다. 인과관계없이 급변하는 상황을 기존의 장르 관습에선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왔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보니에게 헌신하는 장난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보니를 둘러싼 현실이 아니다. 한 아이가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 현실의 법칙을 가볍게 배반하며 만들어나는 창의력의 세계야 말로 <토이 스토리 5>가 열어젖히는 세계관이다.

하나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 경험이 쌓인 주체에게 현실의 제약들은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일 뿐이다. 릴리패드는 보니의 세계가 장난감의 일방적인 의리를 바탕에 두고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모든 관계가 갈등을 겪는 이유는 관계의 개별자들이 서로 다른 의지를 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은 자유로운 욕망을 품은 한 개인으로 존재하기에 관계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보니는 말이 안된다고 제동을 거는 자가 없었기에 자신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이것은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한계 없는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가능성은 현실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내적 동력이기도 하다.

▲다시 재회한 우디와 장난감들. ⓒ월트디즈니컴퍼니

토이 스토리는 '친구'라는 개념을 상상력의 가능성이 함께 공유되는 상황 속에서 탐구한다. <토이 스토리 3>(2010)에서 앤디가 보니에게 우디를 쉽게 건네지 못할 때 우리는 장난감들 또한 쉽게 버림받지 않음을 깨달았다. 성장하는 과정 속에 비록 이별할 지라도 주인들 또한 장난감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장난감과 주인의 관계를 친구로 만든다. <토이 스토리 5>에서도 제시는 세 번째 주인인 보니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그녀가 깨닫는 것은 이전의 모든 주인들이 그녀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토이 스토리의 주제곡인 'You've Got a Friend in Me'가 강조하는 친구는 조건을 초월하는 관계다. 세상의 환경이 변하더라도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친구를 가능하게 한다. 관계를 방해하는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때로는 상처를 생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힘을 극복하기 위해서 <토이 스토리 5>가 제시하는 대안은 바로 '놀이'다. 제시는 릴리패드가 제공하는 개구리잡기 게임을 보며 이것은 놀이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릴리패드가 제공하는 게임은 경쟁을 유도하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만든다. 매 미션은 극복해야 할 환경이 되고, 관계 또한 그 성취의 결과로 주어진다. 반면 놀이는 두터운 신뢰를 기반으로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가능해진다. 서로를 불신하던 제시와 전자기기의 관계가 친구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놀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아한 사교계의 파티 현장이 갑작스러운 첩보물로 전환되는 무한한 상상력은 전자기기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편의 도구에서 장난감으로 인식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제시가 릴리패드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원인, 더 나아가 보니와 블래이즈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또한 '놀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핵심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 기술이 아니라 놀이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세계를 함께 상상할 수 있을 때, 장난감과 전자기기라는 차이는 더 이상 관계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블래이즈의 전자기기들과 한바탕 놀이를 한 제시와 불스아이. ⓒ월트디즈니컴퍼니

<토이 스토리 5>는 릴리패드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기들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채팅방 친구들에게 상처 받은 보니를 보며 릴리패드는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스스로를 낙인 찍는다. AI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들이 인류의 문명을 통제하며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장르적 상상력이 <토이 스토리 5>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5편의 상상력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대상에는 제약이 없다는 전제 속에서 디지털 기기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디지털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는 친구의 개념을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단, 그 관계가 친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이 게임이 아닌 놀이의 공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릴리패드의 세계를 경험한 제시는 자신이 지켜온 놀이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형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토이 스토리 5>가 지키려는 것은 장난감도, 아날로그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마음을 나누며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이다. 디지털 기술은 그 경험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관계가 만들어지는가에 있다. <토이 스토리 5>는 장난감과 스마트폰의 대결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동심(童心)의 세계가 동심(同心)의 세계로 확장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장난감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된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누군가와 하나의 세계를 함께 상상할 수 있다는 믿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토이 스토리 5> 메인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이동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 연출, 시나리오,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2007), <오이시맨>(2008)의 시나리오를 집필 했으며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춘천SF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 했다. 2019년부터 4년 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함께 ‘한국퀴어영화사’ 연작 시리즈를 책임 편집 했으며 『A Collection of Korean Queer Cinema』(2023)를 집필하여 영문으로 출간했다. 현재 영화 평론, 시나리오, 영화 연출 등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와 창작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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