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은 가봤는데 여긴 초행입니다. 이렇게 숨어 있는 문화재가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마음속으로 민망한 심정입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 무계고택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길은 소나무와 느티나무,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고택의 담장 너머로 향했다. 조선 철종 3년(1852년)에 지어진 이 고택은 임진왜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의 후손이자 항일 독립운동가 고영완(1914~1991) 선생의 생가다.
이 회장은 지난 19일 오후 전국 광복회 지부장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고욱 광주지부장, 백기환 부산지부장, 이완석 인천지부장, 양준영 대전지부장, 남진석 울산지부장, 김호동 경기지부장, 송인정 전남지부장, 박형인 경남지부장, 강혜선 제주지부장이 동행했다. 고병돈 광주서구지회장, 고재청 남도의병현창회장, 정광태 남도의병현창회 부회장 등도 함께했다.
무계고택은 1939년 일본 유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선학생동지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고영완 선생의 생가다. 광주공립보통학교와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센슈대학 경제과를 졸업한 고 선생은 동지들과 비밀 모임을 이어가며 독립운동 조직 확대에 힘썼다. 1941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여동생 고완남(1920~1991) 선생은 이화고등여학교 졸업반이던 1939년 오빠와 함께 항일 투쟁에 투신한 고완남 선생은 조선학생동지회의 핵심 연락책이자 전라도 지역 책임자로 활동했다. 1941년 봄 김성수의 둘째 아들 김상기와 혼인한 직후인 그해 9월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유산되는 고초를 겪었다. 1943년 3월 오빠와 함께 풀려났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임신이 불가능해지자 가문의 후사를 위해 1957년 스스로 이혼을 요청하고 독신으로 살다 1991년 친정에서 별세했다.
오빠 고영완 선생은 투옥 1년 6개월 만에 초주검 상태로 풀려난 뒤 고향에서 몸을 추스르며 나무를 심었다. 광복 후 초대 장흥군수, 제2·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민방위군 사건 진상 규명에도 앞장섰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러나 여동생 고완남 선생은 서훈을 거부했다. 오누이는 1960년대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권유를 함께 뿌리쳤다. 오빠는 공직 이력 덕분에 인적사항이 확인돼 뒤늦게나마 서훈을 받았지만, 고완남 선생은 타계 후 20여 년이 지나도록 미서훈자로 남아 있었다. 조카 고병돈 광주서구지회장이 고완남 선생의 서훈을 위해 발 벗고 나섰으나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된 무계고택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안채를 중심으로, 경사지를 3단으로 나눠 대문채·하인방·창고·관리사·본채를 배치한 남부 지방 전통 가옥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택 전면에는 1930년대 일본인 조경가가 참여한 독특한 중도(中島) 양식의 인공 연못과 배롱나무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다.
정광태 남도의병현창회 부회장은 "무계고택의 사랑채, 안사랑채, 곳간 등 6채를 복원하는 것이 목표"라며 "사적지인 만큼 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담양 소쇄원 못지않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데,지자체의 행정적 지원이 미흡하다 보니 많이 낙후됐다"며 "이번 방문이 복원 사업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서울의 많은 문화계 인사들에게 여기 한번 가보라고 적극 추천하고 소개를 많이 해야겠다"며 "모르게 만들면 안 될 것 같다"고 화답했다.
탐방이 끝날 무렵 조국혁신당 후보로 당선된 사순문 장흥군수 당선인이 찾아와 이 회장과 환담을 나눴다. 이 회장은 "어려운 선거를 이긴 것을 축하한다. 중앙에서도 장흥과 강진에서 비민주당이 당선된 것을 많이들 알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앞으로 4년 동안 무계고택과 송백정을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 사 당선인은 "좋은 아이디어를 주시면 조언을 바탕으로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도록 보존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무계고택 탐방을 마친 일행은 강진 월남사지 인근 백운차실을 찾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이현정 이한영 문화원장(53)이 지부장들에게 다산 정약용 시절부터 시작된 차들을 소개하며 자리를 이끌었다.
이후 일행은 해남 땅끝항을 거쳐 보길도로 향했다. 20일에는 조선 중기 문인 고산 윤선도가 은거하며 조성한 원림의 낙서재와 세연정을 둘러보고 노화도 일정을 이어갔다. 이 회장은 악천후로 찾아오지 못한 김신 완도군수 당선인과 전화통화로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번 순방은 광복회가 전국 지부장들과 함께 독립운동 및 역사적 현장을 직접 찾아 그 정신을 되새기고, 지역 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회장은 "잊혀진 독립운동의 현장을 발굴하고 알리는 것이 광복회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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