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서둘러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베를린행 6시 15분발 고속열차를 탔다. 오늘의 여정은 드레스덴이다. 고도가 낮은 태양이 마인강을 건너는 열차의 차창 안으로 황금빛 살을 날려 보냈다. 철도가 세상을 바꾼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자면 바로 독서이다. 대량 수송 수단인 철도가 등장하면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이동이 계급을 뛰어넘어 대중화됐다. 장거리 철도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읽을 것이 필요해졌다. 신문은 철도 붐을 타고 발행 부수를 늘렸고 뒤이어 책이 철도 여행의 필수품으로 등장했다.
1866년 프랑스 의학 연례 회의는 열차 안의 독서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고했다. 상류계급의 몫이었던 책 읽기의 장벽이 철도로 무너졌다. 역마다 서점과 책 대여점이 생겼고 열차 여행에 적합한 작은 문고판이 탄생했다. 소설류의 문학작품부터 지리학, 고고학, 과학 등 근대 이후 폭발한 다양한 전문 분야 책들까지 철도 여행자의 손에 들리면서 교양의 시대를 열었다.
근대 철도 여행자를 흉내 내어 가방 안에서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의 <제5도살장>을 꺼냈다. <제5도살장>은 20세기의 마크 트웨인이라고 불렸던 커트 보니것의 소설로 드레스덴을 배경으로 한다. 열차 안에서 펼친 것은 원작을 스페인과 캐나다의 만화작가 앨버트 먼티스(Albert Monteys)와 라이언 노스(Ryan North)가 그래픽노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다시 보기 딱 좋은 책으로 생각해서 챙겼다.
커트 보니것은 대학을 중퇴하고 군에 입대한 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벌지 전투에서 낙오병이 됐다가 독일군 포로가 된 커트 보니것은 호송열차로 드레스덴으로 이송된다. 커트 보니것을 포함한 미군 포로들은 도살장을 개조한 포로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내게 된다. 도살장 포로수용소의 경험과 드레스덴 대공습이 커트 보니것의 대표적 반전 소설 <제5도살장>을 만들었다.
1945년 2월 13일부터 3일간 미 육군 항공대와 영국왕립공군은 폭격기를 동원한 네 차례 공습으로 독일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미 육군 항공대는 대공습 이후에도 4월 17일까지 세 차례 더 공중폭격을 수행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 건물의 90%가 파괴됐다. 무엇보다 엄청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함으로써 종전 후 폭격의 정당성에 대한 국제적 논쟁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소이탄과 고폭탄은 거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거리의 사람들은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처럼 불덩어리 속에서 순식간에 재가 됐다. 1500도가 넘는 열기에 녹은 아스팔트가 도로 위 사람들 몸을 휘감은 채 타올랐다. 폭격이 끝난 뒤 민간인들이 대피한 방공호들 속에서도 공습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신이 수 백구씩 발견됐다.
포로수용소 지하에 있었던 덕분에 살아남은 커트 보니것은 <제5도살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 날 정오가 돼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미국인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연기로 시커멨다. 해는 약이 바짝 오른 작은 핀 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드레스덴 폭격은 82년이나 지난 과거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전쟁의 양상은 바뀌지 않았다. 2026년 2월 28일 드레스덴 폭격의 후예들은 이란의 초등학교를 미사일로 공습해 7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 175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아시겠지만 나는 시간이 존재한 이래로 무분별한 학살을 이어온 행성 출신입니다. 내 동포가 급수탑에서 산 채로 끓여 죽인 여학생들의 시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동포들은 자기네가 순수한 악과 싸우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죠. 지구인들은 우주에서 무시무시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제5도살장> 중)
연합군 측은 드레스덴 공습이 전략적 군사 목표를 파괴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드레스덴은 동부 전선의 중요한 수송 허브였으며 독일군을 지탱시키는 철도차량기지, 공장 및 산업 인프라가 있는 곳이었기에 공습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또한 소련군이 전담하고 있는 동부전선으로의 독일군 수송을 막기 위한 소련군의 공중 지원 요청에 따라 진행된 것이었으며, 나치의 기반 시설을 무력화하여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드레스덴 공습을 비판하는 측은 군사적 목표물을 뛰어넘는 주거 지역에 대한 융단폭격으로 막대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실을 지적한다. 폭격 시기 또한 독일의 패배가 임박한 상황에서 군사적 필요성을 넘어서는 또 다른 고려가 있었음을 의심한다. 연합국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새로운 대립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행위이자 독일에 대한 징벌적 파괴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드레스덴은 엘베강의 피렌체라 불리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였기에 이 도시를 파괴하는 것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비판이다. 나치의 잘못을 응징하는 차원이더라도 그 대상이 민간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렀던 20세기는 광기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20세기만 광기의 역사일까?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한 나라에 대해 석기시대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공공연히 떠벌린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미 석기시대가 돼버렸고, 아이들마저 저격수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레바논 남부에서는 폭파 해체 공법으로 철거당하듯 건물이 폭탄에 무너지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일방적 학살을 두 세력의 갈등이나 충돌이라는 이슈로 덮어버린다. 20세기가 연 광기의 시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베를린이 있는 북동쪽을 향해 달리던 열차가 역에 정차했다. 예정된 정차역이 아니었기에 다른 사정이 생겼을 것으로 여기고 창밖 승강장 위의 역 표지판을 봤다. 고타(Gotha)역이었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뱃살이라고는 전혀 없던 20대에 읽었던 책 제목 중에 고타가 들어간 것이 있었다. 칼 마르크스가 쓴 책 <고타강령비판>이다. 1875년 작센 코부르크 공국의 고타에서 독일 사회민주노동자당이 독일 노동자협회와 단일정당을 설립하면서 만든 강령 초안을 마르크스에게 보냈는데 이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담은 책이다.
<고타강령비판>에는 사회주의 혁명이 진화하는 주요 내용이 담겨있어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꼽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이며 대다수 노동대중이 참여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다른 말은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이다. 그 유명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과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 노동자정당 같은 마르크스주의 핵심 이론이 담겨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지금 화석이 돼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지만, 전 지구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이었다. 그 사상의 씨앗이 담긴 책의 제목으로 사용됐던 도시의 역에 갑자기 정차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잠깐 움찔하더니 열차가 움직였다. 열차는 승강장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더니 속도를 높였다. 세월이 희미해진 사상을 밀어내듯 고타도 뒤로 밀려 사라져갔다.
프랑크푸르트를 출발 후 3시간쯤 지난 후에 환승을 위해 라히프찌히역에 내렸다. 독일 최초의 철도는 뉘른베르크–퓌르트 구간이었지만 이 구간은 6킬로미터(km)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상당수 열차는 말이 끌었다.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철도의 시대를 연 것은 두 번째 철도 노선인 라히프찌히–드레스덴 철도였다. 총연장 116km의 라히프찌히–드레스덴 철도는 1937년부터 라히프찌히–알텐의 10.6km 구간을 시작으로 조금씩 건설 및 운행 구간을 연장해 1939년 4월 7일 마침내 드레스덴의 엘베강 철교를 넘었다. 라히프찌히–드레스덴 철도는 처음부터 증기기관차 전용으로 운행됐고 곧 복선화 공사가 시작돼 독일 철도의 새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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