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진영읍 일원(창원시 동읍·대산면 포함)은 고대사회에 고 대산만(古大山灣)으로 동일한 소문화권을 형성했습니다."
이동희 김해 인제대 교수는 최근 이같은 주장을 했다.
이 교수는 "고 대산만은 지석묘 축조를 위해 인력이 동원되는 실질적인 범위인 1~2개 읍락(邑落) 규모의 공간이다"며 "이 규모는 변한(弁韓)·가야(加耶)사회의 1개 소국과도 연결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고 대산만에서 지석묘의 밀집도가 가장 높고 대외 교류의 거점인 봉산리·용잠리 집단이 중심 취락으로 추정된다"면서 "초대형 지석묘인 덕천리 1호의 피장자는 거점취락과 연계되어 제사를 주관한 사제(司祭)로 보았다"고 덧붙였다.
즉 봉산리·용잠리 일대의 우두머리는 정치적인 수장(首長)이고 덕천리 1호로 대표되는 피장자는 공동체의 제의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 추정했다는 것.
그러면서 "봉산리·용잠리 일대의 우두머리는 집단지향적인 수장이라는 점에서 다호리 1호묘와 같은 개인지향적인 수장과는 차별성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점토대토기(세형동검)문화가 늦게 나타난 영남 동남부지역으로 김해·창원 일대에 거대한 고 대산만 지석묘 사회와 다호리 집단· 61묘역을 갖춘 지석묘는 초기철기시대로 편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시기에 지석묘를 축조했던 집단은 새로운 이질적인 문화요소와 만나게 된다"며 "우두머리들은 개인의 능력과 사적 소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보다는 종래 사회구조를 지탱했던 공동체유형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하면서 덕천리 1호와 같은 대규모 묘역식 지석묘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고 대산만에서 종래 거점취락인 봉산리·용산리 일대 중심세력이 점토대토기문화 유입기에 덕천리에 별도의 제의공간을 만들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도 말했다.
이동희 교수는 "고 대산만의 거점 지석묘 집단과 다호리 세력은 모두 낙동강 수로를 통한 교역의 중심지로서 성장했을 것이다"고 하면서 "향후 다호리 세력 직전 단계의 고 대산만의 핵심 토착 집단인 봉산리·용잠리 일대의 지석묘가 전면적으로 발굴조사 되어 당시 사회가 복원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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