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不穩)'. 온당하지 않다는 뜻으로 사상이나 태도가 기득권 내지는 통치 권력, 고정관념,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격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이러한 성질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으나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불쏘시개가 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프레시안>은 그러한 '불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불온'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나는 이제 연세가 아닌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며 4학년 때, 대학을 떠난 자퇴생. 18년간 시설에서 살던 중증 발달장애 동생을 '세상'으로 끌어낸 둘째 언니. 그런 동생과 함께 살면서 겪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든 감독. <무사히 할머니가 될수 있을까>를 부른 뮤지션.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를 운영하는 유튜버.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기 전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학교를 떠나 '다른 사랑'을 만났고 최선을 다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런 그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 2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에서의 장혜영 전 의원을 떠올리면 '페미니스트',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떠오르기 마련이다.(장 전 의원이 4년 내내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차별금지법은 국회 입성하자마자 대표 발의하고 4년 내내 천착한다.
정 전 의원에게 차별금지법은 대학을 떠난 뒤, 만난 가장 마지막 '다른 사랑'일지도 모른다. 국회를 떠난지 2년이 지났지만 헤어질 결심은 아직이다. 장 전 의원이 <평등한 평점>(후마니타스 펴냄)이라는 자신의 두번째 책을 낸 이유다. 이 책은 차별금지법의 내용, 의미, 그리고 이 법을 둘러싼 오해를 주로 다룬다. 지난 6년 간의 장 전 의원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고 차별금지법만 설명하는 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스스로를 광장에서 태어난 정치인이라고 칭하는 '초짜' 정치인 정 전 의원이 제도권 정치로 들어가 고군분투 하는 과정이 다이나믹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사회학자 박권일 씨는 이런 장 전 의원을 두고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에 나오는 용사 힘멜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책이 마냥 진중하고 딱딱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곳곳에 장 전 의원 특유의 유머가 녹아들어가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정치적으로 가장 논쟁적인 장소에 거듭 서게 된 장혜영의 정치 도전기이자 광장 정치의 국회 도전기"라면서도 "무엇보다 추천하고 싶은 부분은 세 번의 큰 웃음 포인트"라고 했다.
그런 책을 낸 장 전 의원을 만나 왜 차별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이 법을 공격하는 논리에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 등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린다.
([불온(不穩)한 이야기]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上 바로가기 ☞ : "정치 햇병아리에게 실전은 가혹했고 현실은 막연한 상상을 가뿐히 넘어섰다")
"차별금지법 관련한 모든 질문에 논리적인 답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transgender) 관련해서는 여성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 : Male To Female)가 여자화장실이나 여자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이를 반대한다.
장혜영 :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굴절된 남성 폭력에 대한 공포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로 폭력을 상징하는 남성이 안전을 위한 여성 공간에 침범하는 존재가 되니 강렬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장혜영 : 그런데 이는 '여성 규범에 맞지 않은 여성들에 대한 폭력'으로 돌아오기에 가능하지 않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배척은 여성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도와 달리 누가 봐도 여성 같지 않은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과적으로 전통적 여성성을 강화하고 그에 맞지 않는 외관을 가진 여성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트랜스젠더 혐오가 심한 사회일수록 미스젠더링에 의한 차별과 폭력도 심해진다. 그렇기에 MTF를 배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 국회 이전부터 이런 성소수자 등에 관심을 두었는가. 이런 고민까지 이르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장혜영 : 쉽지 않았다. 애초 내 개인 1호 법안은 탈시설 법안이었지만, 당 상황상 차별금지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후 이 법에 대한 온갖 반대 공격을 받았고, 이를 대항하는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 4년 동안 차별금지법 백과사전으로 살았다(웃음).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보수 개신교 진영의 반대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지만,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여성들도 트랜스젠더 차별을 허용해야 한다며 이 법을 반대했다. 이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공부하고 고민하며 보냈다. 이 법에 관련한 모든 질문에 논리적인 답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그래서인지 보수 진영은 물론,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장혜영 의원은 공격의 대상이었다.
장혜영 : 가뜩이나 당 내에서 '노동을 버리고 페미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는데, 트랜스젠더 인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자칭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공격을 받아야 했다. 정치는 세력을 확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에 대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프레시안 :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장혜영 : 트랜스젠더 차별이 자신들의 삶인 사람들을 생각했다. 차별이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내려놓아야 할까. 아니었다. 국내 트랜스젠더 집단의 자살 사고 경험률은 70%에 달한다. 임기 내내 이 문제에 매달린 이유다.
"차별이 일상인 장애인들은 평범한 삶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프레시안 : 국회 활동에서 트랜스젠더 활동도 이슈가 됐지만, 장애인 활동도 마찬가지로 '논란'이 됐다. 2021년 장애인 이동권 이슈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출근 시간에 지하철 투쟁을 할 당시, 세상의 욕은 이들이 다 먹은 듯 했다. 그때 장애인 투쟁을 그나마 '논리'적으로 비판한 이들은 그들의 투쟁이 아무리 정당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장혜영 : 이들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은 제가 낸 책 <평등한 평범>의 주제를 관통하는 이야기다.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도 평범한 삶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 사회 시민들이다. 이들의 평범함은 우리가 평범하다고 할 때 통용되는 종류의 평범함이다. 그런데 그런 평범함에조차 편입되지 못하는, 차별이 일상인 장애인들은 그런 평범한 삶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우리도 평범함 안으로 편입되고 싶다.' 평범함과 평범함을 향한 투쟁이 맞붙는 상황은 긴장된 상황이 맞다. 그렇기에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특히 이준석 현 개혁신당 대표는 이들의 시위를 두고 '비문명적 시위'라며 공권력 투입을 요구했다.
장혜영 : 그렇게 긴장된 에너지가 어떤 동력으로 나아갈지를 정하는 게 사회 지도층, 정치인들이 해나가야 하는 일이다. 이것을 분열의 에너지로 만들어 버리고 전유해 버린 게 이준석 대표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은 간단하지만, 이를 해제하는 과정에는 너무도 많은 에너지와 이야기가 필요한 듯하다. 아까 이야기를 이어서, 장애인들의 싸움이 평범함에 편입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책에도 평범함을 다수의 것으로 되찾고 싶다며 '차별은 점점 평범해지고, 평범은 점점 유별난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 등 우리 사회 소수자들이 평범해지면 평등하게 되는 구조인가.
장혜영 : 무난하게 학교에 들어가고 때 되면 졸업하고, 이후 완벽한 일자리는 아니더라도 원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 결혼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아무튼 완벽하진 않아도 내가 원하는, 추구하는 삶을 계속 찾아나가는 그런 것을 우리는 평범한 삶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어떤 사람들한테는 그것이 꿈이다. 그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장애인에게도 평범한 삶이 필요하다는 건 우리가 누리는 것을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까지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보다 체감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책에서 성소수자나 장애인에 대한 동정은 평등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썼다. 동정은 평등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일부에서는 그런 동정이라는 감정이 그들에게 관심을 주는 첫번째 단추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평범함이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동정이라는 시선의 첫발이 될 수도 있지 않는가.
장혜영 : 그 말에는 '영원히 과녁에 꽂히지 않는 화살' 같은 느낌이 있다. '평등한 평범'이라는 과녁이 있다고 하면 '동정'이라는 힘으로 쏜 화살은 그 과녁에 한없이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결코 이 과녁에 닿지 못한다. '불쌍해서 도와준다', '더는 불쌍해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시선으로는 절대로 그들을 평범하게 보지 못한다. 그 시선에는 자신보다 아래라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영론과 차악론에 갇혀 여러 의제들이 동력 잃게 놔둘 순 없다"
프레시안 :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발의된 이후 19년간 14번 발의됐지만 한 번도 국회에서 심의된 적이 없다. 민주당에서 뒤로 빠지면서 결국 흐지부지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사회적 힘도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장혜영 : 역으로 생각해 보면 20년 가까이 이렇게 지속해서 발의되고 추진된 법이 또 있는가 싶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에너지가 부족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나.
장혜영 : 승자독식의 선거구제가 문제라고 본다. 국회에 있을 때, 저 빼고 299명의 의원 상당수를 만나 이 문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 법을 왜 반대하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동네 목사님하고 약속했다'였다.
프레시안 : 의원 중 교회 다니는 분이 그렇게 많나.
장혜영 : 아무래도 교회 표가 집단표라서 그렇다. 작게는 몇 백표, 많게는 몇 천 표가 왔다 갔다 한다. 양당 구도 속에서 지역구 선거를 준비하는 후보 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가 당선되는데, 이 표가 저쪽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쉽게 그것을 포기하기 어렵다. 이것은 산수다.
프레시안 : 결국 대중의 힘으로 좀더 양당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장혜영 : 힘은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데, 그 힘에게 양심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 지난 19년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혜영 : 결국은 다당제 정치로 나가는 게 필요하다. 다양한 의제들이 국회에서 다뤄지려면 이 제도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그간 여러 차례 논의됐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장혜영 :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진영론과 차악론에, 사표론에 갇혀 여러 의제들이 동력을 잃게 놔둘 순 없다. 또한 반성 없이 같은 구호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그 구호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기보다는 우리의 전략을 한 번 깊이 점검해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좌절감을 느끼는 게 차별금지법만은 아니다. 논쟁적인 법안들은 모두 렉이 걸려있다. 의제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프레시안 : 이를 위해 활동하는 게 있나.
장혜영 : 2024년 9월에 망원정X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우리가 바라는 정치를 이야기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주요 정치 담론에서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지만 우리가 진짜 원하는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 가장 주력하는 프로젝트는 '페미니스트 정치학교'다. 말했다시피 저는 탈시설이라는 의제가 제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기에 그것을 추구하다 보니 정치까지 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만난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도 각자 자신이 품은 의제들이 있었다. 그 의제가 왜 실현되지 않는지,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정치의 과정을 메우는 프로젝트다.
프레시안 : 2년 전 22대 총선에서 마포구에 출마했다. 2년 뒤에 다시 출마할 의사가 있는가.
장혜영 : 기대해달라. 같이 일어서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어떻게 사람들하고 다시 연결될 수 있을지. '진보 정치'라는 단어가 그저 민주당 진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진보시키는 정치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도록 마포에서 길을 찾아나가겠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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