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정리하다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지난 우유나 두부를 발견하면 우리는 대개 냄새도 맡아 보지 않고 버린다. '기한이 지났으니 상했겠지' 하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이 익숙한 행동에는 사실 큰 오해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2023년부터 우리 식품 포장에서 '유통기한'이라는 말이 아닌 '소비기한'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름 하나 바뀐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방식 전체와 얽힌 변화다. 오늘은 그 날짜에 숨은 진실을 들여다본다.
유통기한은 애초에 '먹는 기한'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오해가 이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먹어도 되는 마지막 날'로 여겨 온 유통기한은 사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유통기한(sell-by date)은 말 그대로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 즉 가게가 그 제품을 팔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소비자가 먹을 수 있는 기한이 아니라 파는 쪽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반면 새로 도입된 소비기한(use-by date)은 '표시된 보관 방법을 지켰을 때 먹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이다. 비로소 소비자의 관점에서 '언제까지 먹어도 되는가'를 알려 주는 날짜가 된 셈이다.
여기서 식품학의 개념 하나를 알아 두면 이해가 쉽다. 모든 식품에는 '품질안전한계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때까지는 먹어도 안전한,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그런데 유통기한은 이 한계선의 대략 60~70% 지점에 소비기한은 80~90% 지점에 설정된다. 둘 다 안전을 위해 여유를 두지만 유통기한이 훨씬 더 보수적으로 앞당겨져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곧바로 못 먹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 뒤로도 상당 기간 먹을 수 있는 여지가 원래부터 있었다는 뜻이다.
이름 하나 바꾸는 데 왜 나라가 나섰을까
그렇다면 왜 굳이 제도를 바꿨을까. 이유는 그 오해가 어마어마한 낭비를 낳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유통기한을 '먹는 기한'으로 오해한 탓에 아직 멀쩡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날짜만 보고 그대로 버려졌다. 이것은 개인의 지갑에도 사회 전체에도 손실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서는 미국에서 버려지는 식품의 상당 부분이 이런 '날짜 표시 혼동' 때문이라고 지적됐고, 우리나라도 매일 쏟아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만 해마다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다.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은 그 음식을 만드는 데 들어간 물과 에너지, 그리고 그것을 실어 나른 비용까지 함께 버리는 일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바로 이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며 이미 많은 나라가 쓰고 있는 국제 기준과 발을 맞추려는 조치이기도 하다. 이름 하나를 바꾸는 일이 실은 거대한 환경 정책이었던 셈이다.
실제 설정된 기한을 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 같은 제품이라도 가공유는 16일에서 24일로, 두부는 17일에서 23일로, 빵류는 20일에서 31일로, 햄은 38일에서 57일로 늘어났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이른 날짜에 음식을 포기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단, '보관 방법을 지켰을 때'라는 조건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꼭 새겨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소비기한은 '표시된 보관 방법을 제대로 지켰을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소비기한이라는 날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냉장 보관하라고 적힌 제품을 여름철 실온에 몇 시간 두었다면 소비기한이 아무리 넉넉해도 소용없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그 '위험 온도대'에서 세균은 날짜와 상관없이 번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여유가 적기 때문에 보관을 소홀히 했을 때의 위험은 오히려 더 크다. 그래서 냉장 우유처럼 온도 관리가 특히 까다로운 일부 제품은 콜드체인 여건을 갖출 시간을 주기 위해 소비기한 적용을 뒤로 미뤄 두기도 했다. 요컨대 소비기한은 '아무렇게나 둬도 이날까지 괜찮다'는 보증이 아니라 '제대로 보관한다면 이날까지 안전하다'는 약속이다. 그 조건을 지키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몫이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한 번 포장을 뜯으면 그 날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개봉하는 순간 공기와 세균에 노출되므로 소비기한이 얼마가 남았든 되도록 빨리 먹는 것이 맞다.
결국, 날짜보다 내 감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바뀐 날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는 두 가지를 권하고 싶다.
첫째, 날짜를 믿되 조건을 함께 지키는 것이다. 소비기한이라는 늘어난 여유를 누리려면 그 전제인 '표시된 보관 온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냉장은 냉장답게 냉동은 냉동답게. 날짜는 그 약속을 지켰을 때만 우리가 안심을 하고 먹을 수 있다. 둘째, 그러면서도 최종 판단은 내 감각에 맡기는 것이다. 특히 개봉한 뒤라면 날짜는 참고일 뿐이다.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색과 곰팡이를 살피고 필요하면 조금 맛을 보아 시큼하거나 이상한 느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상한 음식은 대개 우리 오감에 신호를 보낸다. 날짜라는 숫자 하나에 기계적으로 매달리기보다 그 숫자를 이해한 위에서 내 감각을 함께 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돌아보면 이것도 이 시리즈가 줄곧 말해 온 그대로다. 포장 앞면의 큰 글씨가 아니라 뒷면의 정보를 읽고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한 뒤, 마지막엔 내 판단을 더하는 것.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뀐 이 작은 변화 하나를 제대로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멀쩡한 음식을 덜 버리고 지갑과 지구를 함께 아낄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그렇게 애써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버려지는 음식들, 음식물 쓰레기와 그것을 되살리는 지속가능한 식탁의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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