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시민 작가의 대통령 비판을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정계개편 구상을 전제로 그것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평가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유 작가는 "비평가로서의 정당한 문제제기"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악담'과 '저주'로 규정하며 "개혁정부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무책임한 개입"이라는 거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 그를 '배신자'를 넘어 '자폭테러범'에 견주는 자극적인 언사까지 등장하면서, 논쟁은 정책과 노선에 대한 생산적 토론이 아닌 진영 내부의 정통성 싸움으로 변질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한 논객의 발언에 대한 호오(好惡)나 찬반의 차원을 넘어선 더 근본적인 물음을 야기한다. "비평했을 뿐"이라는 유 작가의 해명을 곧바로 책임회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비평의 방식이 과연 개혁 과제의 방향 설정에 기여했는지, 아니면 진영 내부의 분란을 증폭시키는 데 그쳤는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이 문제는 개혁을 추구하는 정부 아래에서 비평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개혁세력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동의와 정치적 지도력을 형성해야 하는가'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귀결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국가를 단순한 강제적 통치기구가 아니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결합된 '역사적 블록'으로 이해했다. 국가는 물리적 강제력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와 문화적 지도력을 조직하는 '헤게모니'를 확보할 때 비로소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질서를 형성한다. 민주정부의 개혁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 승리는 권력 창출의 출발점일 뿐이며, 개혁을 완수하는 진정한 힘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얼마나 내실 있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평은 권력 외부에서 정부를 공격하는 파괴적 행위가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에서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갱신하는 '건설적 실천'이어야 한다. 비평은 정책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혁의 지향점에 대한 사회적 숙의를 활성화하며 시민들의 동의를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민주주의에서 비평의 진정한 가치는 권력을 흔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헤게모니를 더욱 튼실하게 일구는 데 있다.
따라서 비평에는 높은 수준의 자기절제와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매슈 아널드가 비평의 본령으로 꼽은 '사심 없음(disinterestedness)'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이다. 여기서 사심 없음이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올바름에 대한 감각에 기반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이자, 자기 자신이나 속한 파당의 이해관계에 판단을 종속시키지 않는 공정함이다. 이러한 태도를 갖춘 비평만이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넘어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을 조직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이 기준에서 볼 때 유 작가의 발언은 아쉬움을 남긴다. 최고통치자에 대한 비판과 개혁 방향을 둘러싼 이견 표출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분석보다 단정이, 논증보다 예언적 확신이 앞설 경우, 비평은 공론장의 숙의를 확장하기보다 정치적 분란과 진영 내 갈등만을 증폭시킨다. 작가가 비평이라는 이름 아래 던진 과격한 언사가 가져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이는 정세에 대한 나이브한 오산이며, 예견했다면 비평의 책임의식을 저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판자를 '배신'이나 '자폭'으로 낙인찍어 배척하는 진보진영 일각의 태도 역시 민주적 헤게모니 형성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낙인찍기의 언어는 논쟁을 공론으로 발전시키기는커녕 내부의 적대감을 키우고 개혁세력 스스로의 사회적 설득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그람시에 따르면 모든 헤게모니는 끊임없는 지적·도덕적 지도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음으로써 유지된다. 그것은 고압적인 명령이나 내부 검열로 확보되지 않으며, 설득과 토론, 자기비판과 사회적 신뢰를 통해 비로소 형성된다.
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 역시 이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위임한 권한은 백지수표가 아니다. 개혁의 정당성은 공론을 통해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재생산되어야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공공지식인의 책무를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 규정했다. 유 작가가 말한 비판의 자유 역시 이러한 공공적 개입의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절제된 언어와 정교한 논리로 공론을 이끌었어야 마땅하다. 중요한 것은 진영 내 정통성을 겨루거나 파당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의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상식'(common sense)을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의 가장 큰 위업은 정권 교체 자체보다 민주주의의 주체가 시민임을 선언했다는 점에 있다. 진정한 국민주권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개혁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그 성패는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을 조직해 개혁의 정당성을 폭넓게 확보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정부와 여당 또한 비판의 목소리를 진영에 대한 위해로 여겨 배척할 것이 아니라, 개혁 의지를 한층 더 견고하게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논란이 우리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유시민의 발언이 옳은가 그른가'가 아니다. '현재 개혁세력이 진정한 민주적 헤게모니를 형성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이다. 비평은 권력을 흔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혁을 사회 전체의 과제로 승화시키는 시민적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정치의 성패 역시 더 강한 권력 행사가 아닌, 더 광범한 헤게모니의 구축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당적 공격성을 자제하고 공론장을 개방적이고 풍부하게 만드는 성숙한 비평 문화를 일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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