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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미식과 지역 이야기] ⑤지역의 이름을 브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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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미식과 지역 이야기] ⑤지역의 이름을 브랜드로

지리적표시제와 미식 브랜딩 전략

앞선 글에서 우리는 지역 미식의 진정성이 공동체가 지켜 내는 살아 있는 자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진정성은 저절로 값을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리 진짜라도 그 진짜임을 증명하고 이름으로 지켜 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 어렵다. 좋은 것일수록 이름을 도둑맞기 쉽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역의 이름 그 자체를 하나의 자산이자 브랜드로 만드는 구체적 전략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 중심에 지리적표시제가 있다.

지역의 이름이 곧 품질보증서가 될 때

앞서 개념 편에서 잠깐 언급했듯, 지리적표시제(GI)는 특정 지역에서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생산·가공한 상품에만 그 지역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국가가 법으로 보증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유럽이다. 유럽연합은 원산지명칭보호(PDO)와 지리적표시보호(PGI) 제도로 3700개가 넘는 지역 먹거리의 이름을 지켜 왔고 이 지리적표시 상품들의 연간 매출은 750억 유로를 넘어 유럽 농식품 수출의 15% 이상을 차지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소비자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샴페인', '파르마 햄'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별도의 설명 없이도 특정한 품질과 원산지를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품질보증서가 된 것이다. 실제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2024년 소비 기준 매출이 32억 유로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12개월 숙성 제품의 평균 가격도 한 해 만에 9%가 올랐다. 아무 치즈나 '파마산'이라 부를 수 없게 이름을 엄격히 지킨 결과 그 이름이 곧 값이 된 것이다. 지역의 이름을 지키는 일이 왜 경제 전략인지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가 없다.

▲ 로마의 한 피치케리아(치즈·염장육 전문점) 진열대. 조각조각 포장된 치즈와 하몽마다 가게의 문장(紋章)과 이름이 붙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 상점과 원산지의 '이름' 자체가 품질의 보증서가 된다. 한 조각의 치즈에 담긴 지역과 신뢰가 곧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으는 힘이다. ⓒ프레시안(문상윤)

브랜드는 '농산물'을 '경험'으로 바꾼다

그런데 지리적표시의 진짜 위력은 농산물을 비싸게 파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이름이 관광과 결합할 때, 하나의 식재료가 지역 전체를 먹여 살리는 거대한 경험 산업으로 확장된다.

다시 이탈리아 파르마를 보자. 이 도시는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파르마 햄이라는 두 개의 지리적표시 자산을 단지 수출 상품으로만 쓰지 않았다. 치즈 공방과 햄 숙성고를 여행자에게 열어 견학과 시식 프로그램을 만들고 음식 박물관을 세워 그 제품의 역사와 이야기를 팔며 지역을 관통하는 미식 여행 코스(푸드 트레일)를 짰다.

그 결과 '파르마에 가서 진짜 파르미지아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맛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자원의 콘텐츠화와 목적지화가 지리적표시라는 단단한 이름값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의 치즈가 농가의 소득이 되고 그 치즈를 보러 온 관광객이 지역의 식당과 숙소를 채우며 그 경험이 다시 그 치즈의 명성을 높인다. 이름 하나가 이렇게 지역 경제의 여러 바퀴를 동시에 돌린다.

우리에게도 자산은 있다. 다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다행히 우리에게도 재료는 충분하다. 2002년 보성 녹차를 시작으로 이천 쌀, 횡성 한우, 순창 고추장 등 수십 개 품목이 지리적표시로 등록되어 있고 등록 상품이 더 높은 값을 받는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문제는 이 이름값을 파르마처럼 '경험'으로까지 확장하는 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지역 먹거리 브랜딩은 농산물을 등록하고 포장에 도장을 찍는 데서 멈춘다. 그 이름을 보러 오게 만드는 관광 콘텐츠, 그 지역에 가야만 누릴 수 있는 경험으로까지 잇는 설계가 부족한 것이다. 지리적표시가 '증명서'에 머무느냐 아니면 '목적지를 부르는 자석'이 되느냐. 그 차이가 지역 미식 브랜딩의 성패를 가른다.

브랜딩의 함정 - 슬로건은 브랜드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 지자체들이 특히 경계해야 할 함정을 짚고 싶다. 브랜딩을 '슬로건 만들기'나 '캐릭터 만들기' 정도로 착각하는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가 저마다 먹거리 슬로건과 마스코트를 쏟아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손에 꼽는다. 왜일까? 브랜드는 그럴듯한 문구나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 실체 있는 경험과 일관된 관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는 슬로건은 예산만 쓰고 사라진다. 심지어 반짝 인기를 얻은 지역 캐릭터조차 단체장이 바뀌자 활동이 끊겨 잊힌 사례가 있다. 이것이 우리 지역 브랜딩의 고질병, 즉 '지속성의 부재'를 드러낸다. 브랜드는 한두 해의 이벤트가 아니라 수십 년을 쌓아야 하는 자산인데 담당자와 정책이 몇 년마다 바뀌면 그 축적이 끊긴다.

그러니 지역 미식 브랜딩의 핵심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지리적표시처럼 이름의 진짜를 제도로 지키는 것. 둘째, 그 이름을 먹고 보고 체험하는 경험으로 번역해 목적지로 만드는 것. 셋째, 그 모든 것을 한두 해가 아니라 한 세대에 걸쳐 꾸준히 쌓아 갈 전담 조직과 의지를 갖추는 것이다.

이름을 짓는 것은 하루면 되지만 이름을 자산으로 키우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이 브랜드가 실제로 구현되는 가장 생생한 공간, 근대문화유산이 살아 있는 원도심 골목으로 들어가 그곳이 어떻게 미식으로 되살아나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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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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