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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건강한 식품이야기] ⑤ 발효, 미생물에게 맡긴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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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건강한 식품이야기] ⑤ 발효, 미생물에게 맡긴 요리

잘 길들인 부패, 미생물이 빚는 맛과 향

▲ 천장 가득 걸린 이탈리아 생햄. 오랜 숙성이 빚어낸 이 별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식문화다. 가끔 적당히 와인이나 채소와 곁들여 즐긴다면 더 좋다. ⓒ프레시안(문상윤)

멀쩡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삶은 콩을 따뜻한 곳에 며칠 묵힌다. 상하기 직전까지 두었다가 그것을 별미라 부르며 먹는다. 곰곰이 따져 보면 발효식품은 별난 음식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음식의 일부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게 맡겨 왔고 그 결과물을 김치와 된장, 치즈와 빵으로 즐겨 왔다.

발효는 무엇인가. 학계는 이를 '의도한 미생물의 증식과 효소 작용으로 식품 성분이 바뀌어 만들어진 식품'으로 정의한다(Marco 외, 2021). 핵심은 '의도한'이라는 말에 있다. 발효와 부패는 같은 뿌리에서 갈린다. 둘 다 미생물이 음식을 분해하는 과정이지만 사람에게 이롭고 맛이 좋은 방향으로 통제되면 발효가 되고 원치 않는 균이 제멋대로 번지면 부패가 된다. 소금 농도와 온도, 산소를 조절해 원하는 미생물에게만 자리를 내어 주는 것. 그 미묘한 통제가 발효의 기술이다. 발효식품은 말하자면 '잘 길들인 부패'다.

발효가 남기는 가장 큰 매력은 맛과 향이다. 미생물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바꾸어 감칠맛을 만들고 당과 지방을 유기산과 향기 성분으로 바꾸어 복잡한 향을 빚는다. 갓 삶은 콩에는 없던 구수함이 된장에서 피어나고 신선한 우유에는 없던 깊은 풍미가 치즈에서 돈다. 우리가 발효식품에서 느끼는 '깊은 맛'의 정체는 미생물이 원재료를 잘게 풀어 수백 가지 향과 맛 성분으로 다시 조립한 결과다. 발효는 미생물과 인간이 함께 완성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인 셈이다.

이 기술이 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의 김치와 장(醬), 일본의 나토와 미소, 유럽의 치즈와 사워도우 빵, 인도네시아의 템페까지 서로 교류가 없던 지역들이 저마다 발효를 발명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오래 두려던 절박한 필요가,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가장 다양한 맛의 창고를 안겨 주었다.

고기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 두고 먹으려는 노력은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가공육을 낳았다. 스페인의 하몽과 초리소, 이탈리아의 프로슈토와 살라미, 브레사올라, 프랑스의 소시송 세크, 튀르키예의 수죽과 파스티르마, 중국의 진화 화퇴(금화햄)와 광둥식 라창, 스위스의 뷘드너플라이쉬, 몽골의 보르츠에 이르기까지 소금과 공기와 시간이 고기를 전혀 다른 음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살라미와 초리소, 수죽 같은 소시지는 미생물 발효가 뚜렷하게 관여한 산물이다. 하몽과 프로슈토, 진화햄은 소금에 절여 길게는 몇 년을 숙성시키는 동안 효소와 미생물이 감칠맛과 향을 빚는다. 몽골의 보르츠처럼 바람에 말리는 데 무게를 둔 저장육도 있다. 방법은 달라도 모두 '고기를 상하지 않게 지키면서 더 맛있게 만든다'는 하나의 지혜에서 나왔다. 흥미롭게도 한국은 이런 발효·건조 육류보다 장과 김치, 젓갈처럼 콩과 채소, 수산물의 발효가 유독 발달한 나라다.

이런 저장·가공육은 즐기되 절제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가공육을 대장암 위험과 관련해 발암성이 확인된 '1군'으로 붉은 고기를 '발암 가능성이 있는' 등급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그렇다고 수백 년 이어 온 별미를 죄악시할 일은 아니다.

매일 많이가 아니라 가끔 적당히 채소와 곁들여 즐기는 것. 오랜 식문화가 지켜 온 방식이 대체로 그러했다. 보존을 위한 기술이 문화가 되고 그 문화가 다시 각 지역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물론 발효식품이 몸에 이롭다는 이야기도 많다. 발효 과정에서 성분이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바뀌고 유익한 대사물이 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발효식품을 꾸준히 먹은 집단에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늘었다는 연구도 있다(Wastyk 외, 2021). 다만 발효식품을 약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특히 김치와 장류, 젓갈에는 소금이 많다. 세계보건기구는 하루 소금 섭취를 약 5g 이내로 권하는데 발효의 이점을 얻으려다 나트륨을 과하게 먹으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싱겁게 담그고 국물을 적게 먹는 조절이 곁들여져야 한다.

발효식품 앞에서 던질 질문은 '얼마나 몸에 좋은가'만이 아니다. 이 한 그릇의 깊은 맛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밥상은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 발효는 유행이기 이전에 인간이 미생물과 맺어 온 가장 오래된 협업이다. 그 협업의 결과를 오늘날 우리는 식탁에서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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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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