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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다큐] 30억 도산과 쓰러진 아들… "'코드블루' 인생에도 눈부신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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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다큐] 30억 도산과 쓰러진 아들… "'코드블루' 인생에도 눈부신 오늘을 산다"

전주시 김정훈씨 부부의 '가족 지켜낸' 눈물 기록

도산한 30억 건물, 그리고 찾아온 아이의 희귀병. '5평 원룸'의 힘겨운 삶은 이렇게 시작됐다.

방 안 온도 24.5도, 습도 55%.

천장의 전등에는 갑작스러운 빛에 아이가 놀랄까 봐 하얀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방 안에는 아이가 건강하던 시절 유난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의 주제가가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5평 원룸, 세상의 가장 눈부신 대화

코로 연결된 가느다란 줄을 통해 점심을 넘기는 아이의 배를 살며시 쓸어내리는 다정한 손길.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에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굽어진 몸을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굳어버린 아이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이들 가족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대화'다.

전북자치도 전주시 덕진동에 사는 누수진단 엔지니어 김정훈씨(45)와 부인 박현신씨(43), 아들 민건(14)이의 이야기다.

▲5평 원룸에서 아들 민건이의 곁을 지키며 굳은 손을 꼭 쥐어주는 엄마 박현신 씨.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은 엄마의 간절함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온기가 되어 아이에게 스며들고 있다. ⓒ프레시안

부부의 시계는 민건이가 여덟 살이던 6년 전 어느 날 멈춰 섰다. 사실 가족의 시련은 그보다 조금 앞서 시작됐다.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김씨는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 모든 자금을 끌어모아 야심 차게 30억원 규모의 회사 3층 건물 신축에 나섰다.

건물이 거의 다 지어질 무렵에 전층에서 빗물 누수가 시작되더니 걷잡을 수 없게 피해가 커졌다.

곰팡이 핀 공장 내부는 기계를 돌릴 수 없었고 약속된 운영자금 지원도 취소됐다.

관련 전문가가 없는 상황 속에서 건설사를 상대로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외로운 소송을 이어갔다.

밤낮없이 매달려 1차 승소라는 결과를 얻어냈음에도 더 이상 버틸 자금이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소송을 포기해야 했고 회사는 폐업을 맞으며 쫄딱 망하고 말았다.

예고 없이 덮친 절망, 멈춘 시계

그렇게 주저앉았을 때 더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던 해맑은 외아들 민건이가 유난히 힘이 없어 찾아간 병원에서 '원발성 폐동맥고혈압'이라는 낯설고 무서운 진단을 받은 것이다. 21대 총선이 치러졌던 2020년 4월의 일이다.

▲기약 없는 투병과 힘겨운 재활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14살 민건이. 멈춰버린 줄 알았던 아이의 시계가 부모의 헌신 속에서 아주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사흘 만에 첫 심정지가 왔고 연이어 두 번의 심정지가 더 찾아왔다.

아이의 심장이 멎었던 50분, 그 긴 시간 속에서 안타깝게도 아이의 뇌는 90% 이상 손상되고 말았다.

부부는 벚꽃 핀 그 해 어느 화창한 봄날에 깊은 절망으로 떨어졌다.

겨우 숨결은 붙잡았지만 민건이는 사지마비로 두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시력마저 잃어 빛과 어둠만을 겨우 구별하게 되었다.

아이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엄마, 아파요…"라는 말은 부모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시린 가시처럼 박혀 있다.

김씨는 이때부터 쪽잠을 자는 3시간 가량을 빼고 병원비를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언제든지 아내가 호출하면 일하다 말고 집이나 병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긴박한 '코드블루' 삶이 시작됐다.

병원 내에서 환자의 상태가 급변하여 즉각적인 소생술이나 처치가 필요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 또는 은어를 뜻하는 단어.

심정지나 호흡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이 즉시 출동하도록 하는 응급 호출 신호로 쓰이는 그것은 김씨 부부의 하루하루를 보여주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매달 300만 원이 훌쩍 넘는 병원비와 쉼 없는 재활. 가족은 집을 팔고 지금의 5평 원룸으로 터전을 옮겼다.

▲고된 현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아들 곁에 기대어 짧은 쪽잠을 청하는 아빠 김정훈 씨. 새는 빗물을 막아내는 단단한 아빠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프레시안

언제나 시련은 혼자 오지 않지만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동반한다.

'삶의 벼랑 끝' 신축건물 누수로 회사가 망해갈 때 독학했던 그 누수 탐지 관련 지식이 역설적이게도 지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아줄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용역 일을 맡기 위해 동분서주 땀을 흘리는 김씨는 남의 건물에 새는 물을 막으며 가족의 눈물도 닦아내고 있다.

일에 대한 절박함과 아이에 대한 책임감은 아빠의 일터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과거 뼈아픈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매달렸던 누수 탐지 기술은 현재 그가 대표로 이끄는 기업 '다울(Dawool)'의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이 회사는 전북 유일의 공공건축물 빗물누수 용역 전문업체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자신의 건물을 지키지 못해 가족을 시련에 빠뜨렸던 뼈저린 후회가 이제는 수많은 시민이 오가는 공공건물의 보이지 않는 틈을 완벽하게 메우고 책임지는 땀방울로 치환된 셈이다.

엄마 역시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의 곁을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밥을 먹기 위해 이불과 베개로 자세를 고정하는 데만 30분이 걸린다. 스스로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 튜브를 비워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은 조심스레 묻곤 한다. "아이가 저렇게 아픈데, 얼굴은 어떻게 그리 밝을 수 있느냐?"고.

그럴 때면 그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삼켜낸다. 먼 미래를 내다보면 숨이 턱 막히고 막막하지만 오직 '내일'만 보고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2000일이 넘는 아들 병간호에 무너져 내릴 법도 한데 엄마는 도리어 "울 시간도 없다"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민건이 앞에서는 절대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지 않아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는 목소리와 촉감으로만 세상을 느끼거든요. 우리가 웃고 밝게 말해야 그 에너지가 온전히 아이에게 닿을 테니까요."

아이의 세상 된 엄마, 서서히 오는 기적

그 간절함이 닿았을까. 아주 느리지만 분명한 기적이 찾아오고 있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 얼마 전부터 아이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치료사들조차 기적이라 부르는 이 작은 변화는 단 하루도 재활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부의 눈물겨운 끈기가 만들어낸 생명의 박동이다.

▲어둠 속에 갇힌 줄만 알았던 민건이가 맑게 웃었다. "아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이 유일한 소원"이라는 부부의 간절한 기도가 조금씩 현실로 피어나고 있다. ⓒ프레시안

민건이는 이제 소리와 냄새만으로 아빠 엄마를 구별하고 반응한다.

아이가 웃어주면 부모의 모든 힘듦과 괴로움은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캄캄한 어둠 속에 영원히 갇힌 줄 알았던 아이가 부모의 사랑이라는 가장 따뜻한 빛을 향해 조금씩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부부는 과거의 아픔에 무너지거나 먼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눈부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아이의 굳은 손을 꼭 잡아줄 뿐이다.

김씨 부부의 소원은 단 하나.

"아들 민건이가 쾌유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일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민건이가 웃는 날을 향해 김씨 부부는 오늘도 각각 일터와 5평 원룸에서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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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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