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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중국 명절? 원래 신라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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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중국 명절? 원래 신라 명절이었다

[기고] 우리의 '한가위'와 중국의 '중추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는 음력 8월 15일 ‘한가위’는 우리 민족이 대대로 이어오며 즐겨 온 고유의 전통 잔칫날이다. 이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조선의 후예들이 세운 신라 제3대 유리왕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백제 땅에서도 이와 비슷한 풍속이 이어졌음이 전해진다. 나아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황제와 국왕이 몸소 챙기고 기리던, 명실상부한 나라의 큰 잔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이들은 이 유서 깊은 나라 잔치의 뿌리를 두고, 중국의 전통 명절인 '중추절(仲秋節)'에서 유래했거나 당연히 중화문화의 영향 아래 생겨났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품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이와 다르다. 1990년대 필자의 중국 유학 시절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중추절은 나라의 큰 잔치라 부르기 무색할 만큼 가벼운 날에 불과했다. 직장에서 오전 근무만 마치고 퇴근하여 '월병(月餠)'이라는 빵을 나누어 먹는 소박한 날이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중국 정부가 이를 사흘 연휴로 지정하였다) 당시에만 해도 한가위가 대륙에서 건너온 줄로만 알고 있던 필자는, 중추절의 기원국이라 믿었던 곳의 명절 풍경이 이토록 소박하다는 사실에 깊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본인의 전공 분야인 고조선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한 편의 자료는, 관심을 끊고 있던 한가위에 다시금 주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고조선 관련 자료를 모아 책으로 내겠다는 생각에 수많은 자료를 찾던 중, 조선 영조 연간의 <승정원일기>에서 중요한 기록을 발견하였다. 당시 국왕에게 올린 보고 중 <고려사>를 인용하여 '신라와 백제에서는 2월과 8월에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다'라고 적힌 기록을 찾은 것이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고려사> 판본에는 그 내용이 누락되어 있으나 영조 당시에는 존재했다. 그렇다면 선조들은 왜 하필 2월과 8월을 기일로 택하였을까. 오랜 고민 끝에 천문학자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음력 2월과 8월에는 한 해의 중심 절기인 '춘분'과 '추분'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즉 농사와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는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핵심 축인 '춘분'과 '추분'이 들어가는 시기이다. 이로써 선조들이 특히 신성한 8월의 보름달이 차오르는 15일을 기해 국조 단군에게 잔치를 올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한가위가 우리 고유의 잔치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객관적 자료는 9세기 일본의 승려 엔닌이 남긴 세계적 여행기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발견된다. 우리 학계 일각에서는 일본의 사료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기피하거나 친일 프레임을 씌워 폄훼하는 경향이 있으나, 외부인의 시선이 담긴 객관적 기록은 역사 고증에 있어 대단히 귀중한 자산이다. 엔닌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당나라 산동반도 일대에 형성된 신라인들의 자치 공동체인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에서는 8월 보름을 맞아 거대한 잔치가 거행되었다. 당시 신라 승려들은 이날을 신라가 발해와의 군사적 경합에서 승리한 '전승기념일'로 인식하여 잔치를 즐기기도 했다. (당시 신라와 발해는 당나라 영토 내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다음에 이어지는 엔닌의 명확한 관찰이다. 그는 '당나라 전역을 통틀어 이러한 잔치를 지내는 곳이 없는데, 오직 적산법화원에서만 이를 성대히 치르는 것으로 보아 이는 필시 신라 고유의 잔치일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당나라에 장기간 체류하며 당나라의 풍속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던 외국인 지식인의 눈에, 8월 보름의 잔치는 '중국에는 없는 신라만의 문화'로 비쳤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은 최근 중국 학계의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중국의 한 저명한 학자는 논문을 통해 중국 중추절의 기원이 한국의 신라에 있으며, 대륙에서는 송나라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착·번성하였다는 고증 결과를 발표하였다. 해당 논문은 문헌적 근거가 분명하고, 이 근거를 꼼꼼히 분석하여 결론을 도출한 훌륭한 연구였다.

필자는 이 학술적 성과를 접하며 몇 가지 중대한 사안을 사유하게 되었다. 첫째, 우리가 향유하는 한가위와 중국의 중추절은 그 사상적·문화적 뿌리가 명백히 한국의 신라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사회는 국가의 주요 문화 자산의 시원을 언제나 중국을 비롯한 외부 선진국에서 찾으려는 고질적인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 중화 중심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인들조차 자국의 주요 명절이 한국에서 기원했다는 학술적 진실을 훌륭한 학술지에 게재하며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과연 이러한 자세가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다. 만약 우리의 어떤 문화적 기원이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연구가 발표된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필자가 연구에 활용하는 대다수의 1차 사료는 한문(漢文)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대중은 물론 학계조차 우리 문화의 상당수가 이른바 중화 문화권에 종속된 것으로 오인해 왔다. 그러나 조선의 언어학자 최세진이 저술한 <훈몽자회>를 심층적으로 통독하고 정독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스스로의 문자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자를 차용했을 뿐인데, 후대의 이 한자 기록들을 보며 고대 중화 문화권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오해했다는 점이다. 즉, 우리에게는 본래 '가배(嘉俳)'라 기록되고 '한가위'라 불리던 고유의 잔치가 존재했으나, 당나라나 송나라에서는 이를 자신들의 언어인 '중추절(仲秋節)'로 번역하여 기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자라는 문자에만 갇혀 문화의 원형과 기원을 주체적으로 찾아보려 하지 않은 채, 그저 중국의 전통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해해 온 것이다.

필자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우리에게는 타국에 없는 훌륭한 문화유산과 서사적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사회는 그 기원을 우리 내부에서 주체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를 극도로 꺼리며, 어떻게든 중국이나 서구의 틀에 끼워 맞추려고만 노력할 뿐이다. 만약 주체적인 역사성과 고유성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면, 제대로 된 논리적 검증도 거치기 전에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라는 낙인을 찍어 비난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학계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외래문화의 굴레를 벗어나 우리 고유의 말과 역사관을 확립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대주의적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면이 많이 존재한다. 온전한 우리 고유의 전통 잔치인 한가위를 중추절(仲秋節)이라는 한자어로 대체하여 소비하는 행위는 이제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AI(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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