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전북 부안예술회관에서 열린 2026 부안동학 학술대회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으로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성주현 천도교 상주선도사(경희대 평생교육원 강사)가 발표한 '공간과 네트워크' 분석이다.
성 강사는 부안동학의 궤적을 단선적인 사건과 전투의 나열이 아니라, 부안이라는 독특한 지리적 공간이 동학농민군의 필요에 따라 어떻게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했다.
부안은 단순히 봉기군이 스쳐 지나간 1차원적 무대가 아니었다. 성 강사의 분석에 따르면 1894년 부안은 4개의 핵심적인 공간축으로 정밀하게 작동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부안동학에서 첫 번째로 주목할 곳은 군사적 결집 공간인 '백산'과 전진 기지 역할을 한 '분토동'이다. 각지에서 몰려든 농민군은 이곳에서 거대한 군사 조직으로 융합되었다.
이어지는 부안동학의 공간은 정치와 행정의 심장부인 '부안읍성'이다. 관아 점령은 단순한 상징적 승리를 넘어 무기 탈취와 조세 수취 체계 개입 등 지역 사회의 실질적 통제권을 장악하는 행위였다.
관아 점령 직후 김낙철 대접주가 설치한 대안적 치안 기구인 '서도 송정리 도소'와 해상 물류의 핵심 허브인 '줄포 도소'는 세번째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됐다. 줄포는 고창, 무장, 흥덕 등 4개 군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단순한 포구를 넘어 사람과 물자, 무기와 외부의 정보가 쉴 새 없이 오가는 부안동학의 경제적 생명선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안동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공간은 군사 훈련과 무기 확보의 무대였던 '해창'과 최후의 후방 은신처였던 '변산 상서면' 일대다.
성 강사는 "부안동학은 평야(백산)에서 결집하고, 포구(줄포)에서 해상 물류를 통제하며, 성곽(부안읍성)에서 정치를 펴고, 산악(변산)에서 배수진을 친 경이롭고 치밀한 다핵적 공간 네트워크의 완벽한 표본"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박정민 전북대 교수는 성주현 강사의 입체적인 공간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를 학술적으로 더욱 구체화할만한 실천적 과제라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1894년 당시의 행정구역(당시 백산은 고부군 소속)과 현재의 행정구역을 정확히 중첩하는 역사 GIS 복원 작업이 최우선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낙철이 설치한 도소를 관아나 단순 군사 점령지와 구별되는 '제3의 공간'으로 규정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이러한 도소의 치안 질서 유지 기능이 앙리 르페브르 등의 공간론적 관점에서 지니는 이론적 함의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 향촌 사회 통치의 새로운 모델로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학농민군이 오합지졸 유격대가 아니라 군사와 행정, 정치, 물류, 훈련 등 치밀한 거점 관리 전략을 지닌 조직이었음이 부안동학의 동선에 따른 지리를 통해 완벽히 증명된 것이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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