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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사람들이 자기 아내들한테는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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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사람들이 자기 아내들한테는 잘 했어?”

<김승호의 휴스턴 통신 8> 거듭난 사람

***거듭난 사람**

토요일 아침,
딱히 할 일이 없어 소파에 누워 책를 펼쳐 놓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아내가 옆에서 빨래을 정리하다가 무슨 책을 보냐고 물었다.
시작은 그렇게 됐다.

나는 아내를 붙들고 히브리 사상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창세기 이후의 여호와의 모습이
아모스로부터 스바냐와 나훔 스가랴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 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도 달리 할 일이 없는지 내말에
이것저것 묻기도 해서 이야기는 길어져 갔다.

내 이야기는 사해문헌과 초기 그리스도교의
행적을 거쳐 조선시대 기독교로 넘어왔다.
우찌무라 간조로 이어진 이야기는
윤치호와 김교신을 거쳐
함석헌과 유영모에 이르렀을 땐
이미 제법 시간이 지난 후이었다.

모처럼 말 상대가 되어준 아내에게
쇼펜하우어의 행복의 철학과
노자 철학 이야기를 덧붙이며
근간에 변해 가는 나의 종교 철학을 설명했다.

나는 종교적사관이 바뀜에 따라
어떻게 더욱더 하느님의 속성에
진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신성한 속성에 대한 존재의 실체에
끊임없이 접근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특정한 언어인 영원불변,
전지전능과 같은 언어로 표현되거나 제약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왕필을
들먹일 무렵에는 점심때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불교와 기독교의 본질적인 동질성을 설명하며
그동안 신성만을 강조한 예수상에 대한 절대적
수용태도로 인해 가장 큰 폐단이었던
자주적인 생각의 권리의 상실을 회복한 것을 자랑하며,
나를 거듭난 자로 치켜 올리고 난 후였다.

난 졸지에 나 스스로를 간디나 쇼펜하우어,
또는 유영모나 김용옥과 같은 계열에 올려놓고 말았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내 유식(?)과 뛰어난
영성에 감동받은 아내가 한마디 묻는다.

"그럼 당신들같이 거듭난 사람들은
다른 평범한 남자들 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 거야 ?
그 거듭난 사람들이 자기 아내들한테는 잘 했어?"

나는 할말이 없었다.

아내를 지독히 멸시했던 간디,
너무나 불행하게 인생을 마쳤기에
'행복의 철학'이란 책을 남긴 게 의아했던 쇼펜하우어,
신앙을 위해 아내와 잠자리를 거부했던 유영모,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신경질 꽤나
부릴 것 같은 김용옥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아내는 내가 성인군자가 되는 것보다는
출근길에 키스라도 하고 나가는 남편이길 바라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그게 더 쉬워 보이기도 하고…….

참았던 소변을 해결하러 일어서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여보, 나 점심 차리는 동안에
거기 양말 좀 정리 해놔.
색깔대로 맞추고 애들 양말은 따로 놓고……."

거듭난 남편은 화장실에 다녀오자마자
양말을 주섬주섬 주어 들었다.

"왜 이렇게 양말이 많은 거야?"
대답도 기대하지 않으며 혼자 물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간디처럼 맨발로 다니는 건데.

<편집자 주> 필자 김승호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독자는 jk959@naver.com로 연락하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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