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신문의 행간 읽는 재미**
휴스톤에는 몇 개의 동포 신문사들이 있다.
내게는 신문을 보는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평소에는
큰 제목에 관심 있는 기사만 읽는 것이 보통이나,
일년에 한두 차례는 신문 한부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작정을 하고 읽어 나간다.
첫 페이지 제일 위에 구석 작은 광고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의 숫자까지 한 글짜도 빼 놓지 않고 읽는 일이다.
그렇게 읽고 있노라면 평소 어느 때 보다도 한 사회를 보는
한 신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 다 보는느낌이 든다.
휴스톤이야 미국 안에서 작은 도시도 아니고
여기 사는 한국 사람들이 2만 여명 정도 된다 하니,
그정도면 굼벵이 무숙이 바구미 땅정히 거저리 오사리가
다 모여 있기 마련이다.
한 사람 소개면 서로 다 아는 사이이고
이리저리 돌려 보면 서로 서로가 전부 사돈지간 이다 .
전원일기의 양촌리처럼 서로 모르는 거 아는 거 없이
어울리는 작은 커뮤니티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그래서 재미가 있다.
첫 페이지는 전문직업인 광고가 많다.
내 머리 속은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몰려왔다 사라진다.
의사일 하면서 부업(?)으로 목사 일 보는 김선생은
요즘도 아내와 손 붙잡고 점심 먹으러 다니나?
그 집 요새 유기현미 찹쌀밥 해먹는 것 같던데
당뇨가 있나?
보석금 대신 내주는 회사가 생겼군.
한국사람 들도 알게 모르게 경찰들에게
일거리를 많이 갖다 주는가 보군.
어! 이거 혹시 현순이 아줌마 딸 아닌가?
변호사 공부 마쳤다더니 사무실 오픈 했네.
덩치가 소만한 회계사 남편을 둔 강아지만한
의사 아줌마는 이제는 토요일도 진료를 보는군.
요즘도 그 남편 체육관에서 에어로빅하나?
광고에 나온 사진은 십년 전 사진 그대로군.
치과는 두개나 더 생겼네
어메!인터넷 책방 광고도 들어와 있네.
서울서점 권 아줌마 신경 쓰이겠군
그렇지 않아도 장사 안된다고 야단이던데...
그 집 딸래미들은 요즘 시집갔나?
뭐야? 조씨가 태권도 구단이야?
항상 길러낸 사위짓만 하는구만?
지난번엔 6단으로 봤는데...
음악 학원은 이름이 조금 바뀌었네...
예술원이라..?
이제 미술도 가르친다 이거군
이 양반은 장사 하랴 시인하랴 정신 없겠군.
아니 근데 시를 쓸 때는 참 잘 쓰는 것 같드만
광고에다가는 이게 뭐야?
완전 서재필이 독립신문 나올 때 보던 광고 문구네..
그것도 전면 광고야.
이 양반 시인 맞아?
어이구 최씨는 아주 약장사로 들어섰군.
기미, 비만, 변비, 콜레스테롤, 간 청소를
한꺼번에 한다고?
그을린 돼지가 달아 맨 돼지 타령하는군.
최씨가 아무래도 약장사로 돈 벌어 뚱보 마누라
지방제거 수술을 해 주려나 보군.
중화요리 전문점!
맛과 질이 확실히 다르다고?
그건 맞군.
주인 바뀌고 나더니 맛과 질이 확실히 달랐어.
이 집 걱정되네
급매!!! 의류잡화가게관심 있는 분만 연락 하라네
관심 없는 사람도 연락 하나보지...
샌드위치 샾 매매
기회는 단 한번이라는군.
이거 몇 달 전부터 나온 곳 같은데,
같은 주인이 계속 못 팔아서 내는 거야,
아니면 속아서 산 사람들이 계속 속이는 거야. 알 수 없군.
어? 이거 혜경씨네 식당이네.
공사 다 끝나 간다더니 이제 사람 구하는구나.
뭐야?
하나 둘 셋…….
한국교회가 이제 오십 개가 넘었네!
어? 기원이가 목사 안수 받았군!
그 고약한 경상도 영어로 설교하는 거 들을 만 하겠군?
재미있겠다.
숙식제공
하루 24시간 365일 근무라는 얘기군.
20-30대 젊은 남자 분 구함?
짐 나를 일이 많다는 게군.
어깨와 허리가 튼튼해야 될껄…….
가족 같은 분위기 ?
월급은 가끔 못 줘도 함께 일하자는 소리지.
밤일 하실 분?
회사이름이 없군.
설마? 에이 아마 청소회사 일 거야.
용모 단정한 여직원…….
사장이 건달에 바람끼가 있으니 조심해야
될 거라는 뜻이군.
유학생 환영…….
임금 적게 받고도 붙어 있을 사람을 찾는군.
기사보다 재미있는 나의 동네신문의
행간 읽기는 이렇게 끝나간다.
<편집자 주> 필자 김승호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독자는 jk959@ naver.com로 연락하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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