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도 자랑**
매달 한번씩 서너 가정이 돌아가면서 같이
저녁이나 먹는 모임이 있다.
벌써 칠년째 모이고 있는데 조금씩 회비를 모아
어려운 사람을 돕자던 거창한 계획은
서로 회장을 하기 싫어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차곡차곡 모인 돈들은
일년에 한 차례씩 함께 여행 가는 데 쓰기로 해서
모이기만 하면 올해는 어디로 놀러 갈까 궁리를 하고는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재작년부터는 모이기만 하면
허리 아픈 데는 쑥 뜸이 최고라며
뜸뜨는 자리를 표시한 종이를 복사해서 나눠주질 않나,
척추의사가 가르쳐 줬다며 자기 아내를 눕혀 놓고
마사지 시범을 보이질 않나,
가면 갈수록 자기가 더 아픈 것도
자랑이라고 서로들 늘어놓는다.
왼쪽 옆구리가 결리는 건 왜 그런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마치 임상경험이 풍부한 의사라도 되듯이
그럴듯한 처방이 지체없이 내려진다.
지켜보던 친구 아내가 그럴듯 해 보였는지
가슴이 뻐근한 건 왜 그런 거냐고 묻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심근경색일거라며
왠지 섬뜩한 의학 용어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그건 협심증이라 부른다며
아는 체 하는 사람이 하나 나서더니
협심증에는 불안정성 협심증과 안정성 협심증이라는 것이 있는데,
하면서 말을 꺼내 장내를 일단 정리하더니
한 5분간이나 짜르륵 설명을 하며
마지막으로 원인 불명의 급사를 할 수도 있다고 말해
질문한 사람에게 바짝 겁을 준다.
점점. 모임은 병에 더 많이 걸려본 사람이 회장이 되어 가고
대화를 독점하는 이상한 모임으로 변해 갔다.
그러고 보니 한창 청년이던 우리들 중에
사십 넘은 사람들이 몇몇 생겨났고 앞으로는 아이들 돌잔치보다는
부모들 초상 치르는 모임에 가야 할 일이 더 많은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자랑할 것도 없는 것이 자랑이 되어 버린 우리들은
다음에는 어떤 병을 얻어 가지고 만날까?
이제까지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적은 사람들은
살아 갈 날이 더 많은 나머지 가족을 위해 준비를 시작할 시기가 됐다.
연금을 확인하고 생명보험 들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 온 것이다.
<편집자 주> 필자 김승호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독자는 jk959@ naver.com로 연락하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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