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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비밀, '2개의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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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비밀, '2개의 유전자'

에스더의 '노화 이야기' <2>

***두번째 이야기/ 유전자**

여러분은 ‘데니 심’ 이란 교포 소년을 기억하시는지요. 박찬호 선수가 97년 LA 다저스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 후원했던 조로증(早老症) 환자입니다. 깊게 눌러 쓴 모자 아래서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는 16세 청소년 특유의 장난기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와 양쪽 뺨엔 쭈글쭈글한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어 영락없는 80세 노인의 모습입니다. 박 선수의 집에서 생일파티를 갖기도 하고 치료비가 모금되기도 했지만 1999년 18세의 나이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데니 심이 앓았던 조로증은 조로증의 여러가지 유형 가운데서도 워너 증후군(Werner Syndrome)이라 불리우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1천여명 정도만 확인된 희귀질환이지요. 사춘기 때까진 정상 어린이처럼 자라다가 사춘기 이후부터 급격하게 늙기 시작해 대부분 20세 이전에 숨지게 됩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 질환이 유독 일본에 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공식 보고된 환자가 없지만 일본엔 무려 8백여명이 넘는 조로증 환자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에 남아 있는 근친결혼의 풍속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끼리 결혼하다보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부모 양쪽으로부터 물려 받는 운이 나쁜 자손이 탄생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워너 증후군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인간의 8번 염색체(인간의 세포 핵 안에는 모두 23쌍의 염색체가 있고 이 속에 유전물질 DNA로 구성된 3~5만개의 유전자가 들어 있습니다)에서 발견됐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드리면 DNA의 복제를 담당하는 효소(DNA helicase)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비정상적으로 빠른 세포분열이 일어나고, 이것 때문에 인체가 빨리 늙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화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8번 염색체에 있다면 노화를 억제하는 유전자는 4번 염색체에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의대의 백세인 연구팀이 최근 밝혀낸 사실입니다. 미국에 사는 1백세 이상 노인들의 장수비결을 연구하던 도중 이들의 4번 염색체에서 다른 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2개의 유전자를 찾아낸 것입니다.

이 유전자는 단순히 오래 살게 하는 작용뿐 아니라 치매나 동맥경화 등 노인들에게 흔한 질환까지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2개의 유전자가 모두 있는 경우 1백세 이상까지 골골거리지 않으면서 활력있게 살다가 죽을 땐 깨끗하게 죽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노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슬프게도 노화는 결정적으로 이들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유전자에 관한 한 우리가 후천적으로 노력한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생명의 탄생 당시 아버지의 정소에서 만들어진 수십억 개의 정자 중 어떤 것이 어머니의 난자와 만나느냐에 따라 유전자의 조합이 달라지고 이로 인해 아기의 무병장수 여부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대물림되는 유전이 건강과 노화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지대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의사들에게 건강에 해로운 것 한 가지만 손꼽는다면 십중팔구 흡연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생전 담배 한 모금 피우지 않았던 여성이 폐암에 걸리는가 하면, 평생 줄담배를 즐겼던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러셀의 폐 점막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담배 연기에 매우 강했기 때문이겠지요. 단백질은 유전자의 지시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결국 유전자가 이들의 생과 사를 가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회 말씀드린 송미령 여사는 자신의 건강비결로 관장을 꼽았다고 합니다. 매일밤 물로 장을 세척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수석 합격생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커피를 마시면 누구나 수석 합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논리지요.

정답은 유전자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후천적 노력도 중요했겠지만 송미령 여사처럼 탁월하게 오래 건강하게 장수하고 있는 사람은 유전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녀의 모근세포나 구강점막 등 세포 일부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를 해본다면 앞서 언급한 4번 염색체에서 장수 유전자 2개가 발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전자는 무병 장수에 매우 중요한 존재이므로 다음 회에서 좀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필자 소개**

여에스더 원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외래교수, 대한가정의학회 비만연구회 연수이사, 대한가정의학회 홍보위원회 위원, 대한폐경학회 국제교류위원회위원, 대한체형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등을 겸임하고 있는 가정의학 전문의 및 국제 골다공증 전문의로, 특히 노화예방에 관한 한 독보적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에스더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필자와 대화를 원하는 독자분은 www.estherclinic.com으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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