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외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
1979년 4월 11일 미국의 <시카고 트리뷴>지엔 이색적인 기사가 실렸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따로 입양되어 자란 쌍둥이 형제가 39년만에 재회했다는 소식입니다. 일란성 쌍둥이이므로 유전자가 1백% 동일해 생김새가 같음은 물론입니다.
이들은 과거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음에도 둘 다 린다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했으며 제임스란 이름의 아들을 두었으며 베티란 여성과 재혼했습니다. 취미도 글자 새기기와 목공일로 동일했으며 즐겨 찾는 휴양지도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 해변으로 일치했다고 합니다. 이들 쌍둥이 형제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동일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지요. 이는 후천적 양육환경이 서로 달라도 유전자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고 파동함수를 창시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를 떠올렸습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의 하나로 지폐의 인물로까지 등장하는 그는 그의 명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물리학적으로 생명의 영속성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 성능의 슈퍼 컴퓨터조차 구조와 얼개의 정밀성과 복잡성 면에서 짚신벌레를 못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단세포동물인 짚신벌레보다 훨씬 복잡한 세포가 무려 1백조 개나 모여 만들어진 인간은 우주 공간에 현존하는 엔트로피(무질서도) 최소의 초정밀 개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는 엔트로피 최대를 추구한다는 열역학 법칙에 따른다면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도 인간이란 존재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해변가에 공들여 쌓아 놓은 모래성도 불과 수십 분이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데, 인간이 어떻게 1백살까지 생존할 수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생물학을 전공한 분은 금방 아시겠지만 해답은 유전자에 있습니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 유전자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과 반세기 만에 DNA를 구성하는 30억상의 염기서열을 모두 찾아내는 인체게놈사업(Human Genome Project)이 완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20세기를 풍미했다면 21세기는 유전자가 과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리처드 도킨스같은 과학자는 ‘이기적 유전자’ 에서 개체, 즉 몸뚱아리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유전자가 생명의 본질이란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노화 이야길 하다 왜 이렇게 유전자 이야기가 장황하게 나오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유는 유전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유전자가 인간의 수명과 건강을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자녀의 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키를 크게 하기 위한 숱한 비방들도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디 헛된 돈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키는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거의 전적으로 부모의 유전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키를 예측하는 공식이 있습니다. 부모의 키를 합쳐 2로 나눈 평균치에 아들이라면 5㎝를 더하고 딸이라면 5㎝를 빼준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어머니가 160㎝, 아버지가 180㎝라면 아들은 175㎝, 딸은 165㎝가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유전자가 수명에도 키처럼 깊숙히 관여한다면 수명의 예측도 공식을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예컨대 키 공식처럼 부모의 평균 수명에 몇 가지 자신이 지닌 변수를 감안해 더하거나 빼는 식이겠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어떠한 연구를 통해서도 수명을 예측하는 공식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명은 키와 달리 유전자 이외에 매우 복잡한 여러 가지 '플러스 알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앞으로 이 곳에서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부분도 바로 이 플러스 알파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플러스 알파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고셔병(Gaucher disease)환자는 플러스 알파가 거의 없는 분들입니다. 이 병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질환으로 글루코세레브로사이드란 특정 효소가 부족해 뇌신경 장애로 숨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극단적 경우는 제외해야겠지요.
대부분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플러스 알파를 최대로 키울 수 있습니다. 설령 부모로부터 다소 나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불평하거나 자포자기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진 줄이 나쁘다고 투덜대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비록 물에 빠진 채 태어났지만 열심히 줄을 잡고 물가로 올라가야 합니다. 고셔병의 경우만 해도 다소 약값이 비싸긴 합니다만 세레자임이란 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줄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썩은 동아줄인지 정말 자신을 건강과 장수로 인도해줄 수 있는 구명줄인지 가려낼 수 있는 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 탓만 해선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필자 소개**
여에스더 원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외래교수, 대한가정의학회 비만연구회 연수이사, 대한가정의학회 홍보위원회 위원, 대한폐경학회 국제교류위원회위원, 대한체형의학 연구회 학술이사 등을 겸임하고 있는 가정의학 전문의 및 국제 골다공증 전문의로, 특히 노화예방에 관한 한 독보적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에스더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필자와 대화를 원하는 독자분은 www.estherclinic.com으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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