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의 인생 수학**
막내 녀석이 요즘 ABCD를 배우는데 재미를 단단히 붙였다.
녀석은 별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도 제 스스로가 답답해서인지
형들에게 물어 물어서 소문자abcd마저도 싱겁게 외우고 말았다.
이젠 하나, 둘, 셋, 넷을 가르칠 차례이다.
그런데 이 녀석의 독학은 거기서 그쳐 버리고 말았다.
인류가 닭 두 마리의 2와 이틀의2를
같은 2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천 년이 걸렸다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혹시 요 녀석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아빠처럼 매를 맞아 가면서도 배우지 못했던
수학거부반응의 유전자가 남아 있는 것일까?
그러나 사실, 수학에 재주가 있거나 없거나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수학 속에서 살아간다.
더하기(+)빼기(-) 곱하기(×)나누기(÷)라는
네 가지 기본 수학 공식은 인생 속에 숨어서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음은 수학에 재주가 없었던 사람이
생활 속에서 얻은 수학 이야기이다.
***아내는 하고 싶은 말을 2로 나누어(÷) 반 정도만 말하고
남편은 해야 할 말에 곱하기(×)2를 해서 두 배로 말한다.**
보통 남자는 하루에 2만 단어를 말하고
여자는 하루에 5만 단어를 말한다고 알려져 있다.
남자는 바깥에서 2만 단어를 다 써버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여자는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약 3만 단어쯤을 쓰고 나서
2만 단어를 남겨 두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왜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입을 다물어 버리고
왜 아내는 퇴근한 남편에게 이것저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설명이 된다.
아내는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할말을 조금 줄이고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는 버릇을 배워야 한다.
***인생에 짐이 되는 약속은 빼고(-)
생활에 짐이 되는 소유물도 빼어(-)내 버린다.**
차마 면전에서 거절 하지 못해서 받아들인 부탁이나
약속들은 우리들의 기본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다.
크게는 빚보증을 서는 문제부터 작게는 새로 산 고급 카메라를
빌려 주는 것처럼 곤란한 일에 거절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분명한 거절은 필요 없는 기대를 하지 않게 함으로서
오히려 상대에게도 도움이 된다.
작년에 사다놓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운동기구나
유행이 지나버린 밤색코트나 장식용으로 사다 놓은
20권짜리 전집도서는 빼어(-)내어 재활용센타에 보내는 것이 현명하다.
한 친구가 용감한 빼기(-)를 실천한 자기 아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아내는 이사를 오기 전에 손수레 7개 분량의 생활용품을
재활용센타에 기부 했다는 것이다.
화가 난 그는 아내에게 살림을 거덜 낼 일이 있냐며
뭘 갖다 버렸는지 하나하나 말하라고 윽박을 질렀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중에
내가 버렸다고 생각하는 물건이 기억나면 이야기 해보라고 물었다.
그는 단 한개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의 아내의 다음 말이 걸작이었다.
“당신 기억 속에 없는 물건은 당신도 필요 없는 거지요”
***인관관계의 접촉을 늘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더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생활 방식이 다르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공연한 반대자만을 양성하게 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지혜 정도만 머리 속에 넣어도
우리는 훌륭한 이웃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짜기만 했던 내 인생에
농담 잘하는 친구가 들어와 설탕 맛을 내기도 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친구가 들어와 매운맛을 내어 주는 것과 같다.
다양한 친구와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경험은 인생의 묘미다.
새로운 학문, 기술, 문화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내 삶 속에 끊임없이 더해져야 한다.
***취미와 재산과 시간은 나누어(÷)가진다.**
흔히 결혼을 도박이라 한다.
그런데 다른 도박과 달리 둘 다 몽땅 잃을 수도 있지만
둘 다 왕창 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둘 다 왕창 딸 수 있는 비결이란 나누는 것이다.
이웃의 한 사람은 평생 하루도 쉬는 일이 없이 일을 하며
편의점으로는 상상하지 못하는 큰 매출을 올리는
상점을 둘이나 운영하다 암에 걸렸다.
수술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 시에는 아내에게 전 재산을
양도하겠다는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를 듣고
용감하게도(?)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내는 세상을 헛살았다며
이혼 소송과 함께 재산 분할소송을 해서
전 재산의 60%가 아내 몫이라는 결정을 받게 됐다.
아내와 재산을 잃은 남편은 죽음을 앞두고 있고
남편과 과거를 잃은 아내는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취미와 재산과 시간을 나누는 법을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머는 곱하고(×)부풀려서 주위에 퍼뜨려라.**
위대한 인생을 살다간 성인들을 보면서 아쉬운 것이 있다.
그들에게는 유머가 별로 없다.
위대한 인생이라는 간디의 생애도 지루하기 그지없다.
글을 통해 만난 간디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본 것은
물(水)에 대해 지나차게 만병통치약으로 믿고 있었다는 점뿐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인생도 역시,
지극히 따분하고 지루한 부분이 많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성경도 현재의 출판업자가
처음 원고를 대했다면 첫 몇 장은 흥미가 있었겠지만
곧 읽다가 지루해져서 출판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이 전 생애를 통해
흥미진진하고 유머로 가득 찰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운명은
행복과 성공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하는 순간,
얼마든지 유쾌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난의 역사들 되돌아보며
“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하며 추억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주간지 뒤에서 읽어 본 농담을 기억 했다가
아내나 친구에게 부풀려서 전하는 사람은
의젓하고 진중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보다
사실은 더욱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망신을 당하고도 울분에 쌓여 열을 내는 사람보다는
“ 그러면서 또 한번 배우는 거지” 하며 툭툭 털고
일어서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나 외에
주위의 다른 이도 행복하게 만든다.
***내가 아는 행복한 사람, 루이스의 수학세계**
나는 행복한 사람 하나를 알고 있다.
루이스는 은퇴한 75세 할아버지다.
루이스를 만나면서 그분의 행복은 국가의 이념,
자연법칙에 대한 순응, 종교적 확신 또는 지식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논리화된 신조에 의한 행복이 아니었다.
그의 행복은 75세임에도 매 주마다 1백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육체적 정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탁월한 친화력과 유머,
연령과 인종과 재산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는 균형화된 의식 세계에 있었다.
지금도 나를 만나면 독일군인처럼 두 발을 붙여
차렷 자세로 인사를 해서 나를 곤란하게 한다.
내가 인사를 받기 전까지 꼿꼿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어,
주위 사람들에게 둘이 무슨 사이인가
궁금하게 하여 웃음을 터뜨리게 하곤 한다.
그분의 인생은 더할 때 더하고 뺄 때 빼어내고
나눌 때 나누어 가지고 곱할 때 곱한 삶을 사시는 분이다.
만약 그가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서운해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인물 중에는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 나를 감동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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