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
서로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메일을 주고받는 친구가 늦은 답장을 보내왔다.
며칠동안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점봉산 끝자락에서 주말을 보내면서
마주송이풀과 도둑놈의갈고리란 이름을 가진
야생화를 찾아 다녔다는 것이다.
여름엔 백두산에까지 가서 노루귀와 두메양귀비를 보려고
친목계를 들었다며 자랑이다.
철물점을 운영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의외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쫒아 다녔냐 물었더니 두어 달 됐다며
자신의 인생 목표 중에 하나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자세히 물어보니 그에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백가지 목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이름 없는 꽃을 찾아내
자기 아내의 이름 석자를 넣어 주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의 열의로 봐서 올해 안에 “정혜숙남편꽃”이라는
새로운 꽃이 발견 될지도 모른다.
지난번에도 거문도로 스쿠버다이빙을 간다기에
별난 취미가 많구나 생각하긴 했지만
하고 싶은 목록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흥미가 생겼다.
그에게 그 목록을 좀 보자고 부탁했더니
개인적인 것들이 많아서 보여주긴 곤란하다며
나에게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조용히 앉아서 써 보라는 충고를 보내왔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는 자신의 경험을 적어 왔다.
그래서 나는 철물점 철학자의 권고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적기로 했다.
생각보다 여행에 관한 목표가 먼저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낯선 곳에 처음 간다는 것이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 중에
우선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에 나 자신도 놀랐다.
가장 먼저 적어 넣은 것은 레저용 차를 빌려
일 년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사교적인 아내는 일주일이면 몰라도 일 년을 그렇게 다니는 건
거지나 다름없는 생활 아니냐며 질색을 한다.
아는 사람도 없는 곳을 일년이나 다닐 것이 걱정인 여자와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일년 쯤 살고 싶은 남자의 희망이 겹쳐진다.
아들 세 놈과 양 손바닥 크기의 블루몰포나비가 날아다닌다는
코스타리카의 숲속을 쑤시고 다니는 일도 리스트에 적었다
벌레나 도마뱀 잡는 일이라면 녀석들 모두가 해 지는 줄을 모른다.
박제를 하면 한 마리에 십 불이나 받을 수 있는 블루몰포나비를
가방 가득히 잡아오는 꿈을 꾼다.
세계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전통시장은 가장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동양과 서양 여러 나라의 시장 모습을 담은 사진 책을 한 권 만들고 싶다.
배우고 싶은 것도 몇 가지 있다
목공 학원에 등록 하여 목공일을 배우고 싶다.
목수이셨던 할아버지의 피가 이제야 동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술꾼이기도 하셨던 할아버지의 피가 전해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무엇인가 내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강해진다.
사용하지도 않는 공구들을 쓸데없이 사다 모으는 일도 그래서 인지 모른다.
피리 부는 법도 배우고 싶다.
단소는 너무 부드럽고 대금은 너무 점잖다.
피리를 멋지게 불어서 듣는 이를 울릴 수 있는
노래 한 곡을 꼭 배웠으면 좋겠다.
엉뚱한 짓도 몇 개 해 보고 싶다.
이십 미터짜리 아름드리 통 소나무를 백 개쯤 쌓아올려 놓고
초대형 캠프파이어를 해보고 싶다.
불을 확 질러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울화병 가진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윤도현을 불러와서 불놀이야 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키마우스나 곰돌이 인형 옷을 뒤집어쓰고
놀이동산에서 한나절 일을 해보는 목표도 있다.
덥고 힘들다는 말이 있지만 지나가는 아가씨들을
아무나 마음껏 안아 볼 수 있는 기회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처럼 바보 같은 몸짓을 하고 다녀도
눈치를 보거나 창피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뚱뚱한 사람들을 모아 보컬그룹을 만들어
매니저 노릇도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하다.
뚱뚱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보다
여유롭고 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나 보지 못했다
교통경찰 노릇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처럼 섬세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 느낌을 갖기엔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딱지를 떼는 척하며 훈계도 멋지게 해보고
위엄도 부려 보고 선심도 써보고 싶다.
아줌마들의 능청스런 애교도 받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귀 같이 달려드는 사람도 많을것 같아
딱 하루만 해 보았으면 좋겠다.
물감 만드는 공장에 견학을 해 보는 것도 적었고
포경선을 타고 수염고래 잡는 장면을 보는 것도 적었다
철물점 친구 따라 야생화 찾아다니는 동우회에 가입도 하고 싶고
장사익이 찔레꽃을 부르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소망도 적었다.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다는 목표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스카이다이빙처럼 한 집안에 가장으로선 무책임한 소원도 있고
재즈댄스처럼 나이를 무시 할 수 없는 소원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적어 놓은 목표 중에
가장 쉬우면서도 한편 어려운 것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한다고
직접 말을 하는 것이다.
양반의 가문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아버님과
사임당 같은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다.
이후에, 나의 행동이나 의식이 변형된
남성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부모님을 포옹한다거나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계면적은 일이 되고 말았다.
어려서 하지 않은 일을 나이 들어 하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어려운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조금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부엌에 한번 드나든 일이 없던 아버님은
이제는 설거지도 하고 저녁 준비도 하는
순하고 여유있는 노인이 되어 가고 계신다.
시아주버니를 오빠라고 부르는 며느리가 있는 집안을 두고
세상에 경우 없는 사람들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시던 분이
언젠가는 전 남편과 새 남편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파티를 하는 집안에 놀러 갔다 오시기도 하신다.
과장된 권위나 지나친 예절 때문에 잃어버린
가족간에 다감함을 점점 즐기시는 것 같다.
그러니 느닷없이 큰아들이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들
이제는 그렇게 경박스럽다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무한히 사랑하면서도
입안에서 맴도는 말 한마디,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부모님이 돌아 가시기전에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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